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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미카제(神風)특공대의 전술적 성과와 반론
9.1. 군사적 교환비
반면 카미카제의 명중률은 숙련 조종사가 소규모로 동원되었던 1944년 말 필리핀 전역(戰域)에서는 40~50%, 카미카제로 쓸 숙련 조종사마저 고갈되어 꼬꼬마 조종사들을 대규모로 투입했던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14%의 명중률을 기록한다. 350기의 함재기가 출격하여 220기가 격추되고 명중탄은 단 1발밖에 기록하지 못한 1944년 6월의 필리핀해 해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나아 보인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총 1,900대의 특공기가 돌입해 33척의 적함을 격침시켰다고 한다. 일단 자료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침몰한 미군함도 21척 내지 26척에 불과하다는 자료도 있다. 그 밖에 280척 내지 360척에 피해를 주었다. 다만 이 피해도 대부분은 작은 상륙정이다. 그러나 이 자료를 순수하게 믿더라도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는 당연하게도 특공기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특공기만으로 이루어진 편대를 조직했다면 당연히 돌입하기도 전에 모조리 격추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 편대처럼 특공기를 호위하기 위한 편대도 출격했고 자폭이 아닌 폭격만을 위한 항공기도 출격했다.
문제는 여기서 1,900대라는 것은 순수한 특공기만을 의미하는 것이고 호위 전투기 편대와 폭격을 하기 위해 출격한 항공기는 제외한 수치라는 점이다. 애초에 공습의 성과란 투입한 항공기와 손실된 전체 항공기와 적의 피해를 비교해서 따지는 것이지 순수 특공기만의 손실만 계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특공기와 호위기를 합친 전체 일본군의 손실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오키나와에서만 모두 7,830대 이상의 항공기를 손실했다. 약 8,000대의 항공기를 소모품으로 말아먹고 겨우 34척을 격침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단순 비교로도 항공기 280대와 겨우 1척을 맞바꾼 셈이다.
더 중요한 건 격침시킨 34척 대부분이 군함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상륙정들이고, 나머지도 전략적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구축함이라는 것. 정말 위협적인 정규항공모함은 제대로 격침시키지 못했다. 그나마 경항모보다도 못한 호위항모 2척을 격침(USS St. Lo, 사마르 해전; USS Bismarck Sea, 이오지마 전투)시키고 호위항모 1척에 큰 타격을 입혀 자침을 유도(USS Ommaney Bay, 필리핀 탈환전 도중 공격받고 45년 1월 4일 자침)하긴 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도 전혀 남는 장사가 아니다. 항공모함만 100척이 넘어가던(호위항모 포함, 정규항모는 20척 내외) 당시 미 해군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감안하면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자료도 역시 자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미 공군 홈페이지에 의하면 2,800기의 특공기의 공격에 의해 34척의 배가 침몰했다고 되어있다. 반면 일본학 연구자인 Bill Gordon에 의하면 47척이라고 한다. 이런 차이는 수리 중 침몰한 군함도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한다. 그래봐야 오십 보 백 보. 일본군이 뻘짓을 했다는 진실을 뒤엎는 정도는 절대로 아니다.
오키나와 전투 기간 전사한 미군은 12,281명인데 이 중 4,907명이 카미카제에 의해 전사한 해군 함정 승조원, 항공 요원들이다. 이것이 대단한 수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전쟁의 냉정한 전략적/경제적/객관적 측면"에서 이미 이것은 삽질 of 삽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참고로 나치 독일군의 삽질이라고 평가받는 보덴플라테 공세에서 독일군은 연합군기 340기를 격파하고 독일군기 304기를 잃었다. 그럼에도 실패라고 평가받는데 이것과 비교하면 약 8,000기나 손실했다는 건 무엇을 말하겠는가?
수백 톤에서 천 톤이 넘어가는 함정과 5톤이 채 안되는 비행기, 수백 명의 수병과 한두 명의 조종사를 단순 숫자로 비교하면 카미카제가 이득인 거 같지만 실제 전투기제작과 파일럿 양성에 드는 비용을 따져보면 어마어마하다. 값비싼 신형 전함조차 전투기 2~300대의 가격과 비슷하며 조종사는 그 전투기보다 비싸고 오랜시간을 들여서 만드는 인재라 일반적인 수병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1만에 가까운 항공기와 조종사를 들이박아서 소형 함정 몇대와 죽은 조종사의 절반정도의 수병을 죽였다는 건 정말 끔찍할 정도의 삽질이 아닐 수 없다.
시기상 전력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므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과달카날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군은 통상공격만으로 99대의 비행기를 손실하고 정규 항공모함인 호넷을 격침시키고 엔터프라이즈를 중파시켰다. 이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안습한 수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밖의 다른 요소는 별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카미카제를 대비하기 위해 함재기들이 함대방공에 힘써 오키나와의 공중지원이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이건 카미카제가 아니라 통상공격이라도 마찬가지이다. 8,000기가 통상공습을 해왔다고 생각해보자. 카미카제가 아니라도 지상지원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카미카제의 전술적 효과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공습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커티스 르메이를 여러 장성들이 간신히 제지하고 B-29를 도시폭격을 잠시 돌려 비행장 폭격으로 돌린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카미카제가 특별히 대단해서가 아니라 공습의 규모 자체가 워낙 커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 해군과의 비교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을 지닌 미군이 아니라면 이만한 규모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 또한 통상공격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약간 더 효과적이었다고 해도 그 성과라는 것이 고작 상륙정 몇 척, 구축함 몇 척에 불과했을 뿐이니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었던 짓인지는 알아서 판단하자. 이런 초라한 결과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압도적이기 그지없는 미군의 전력, 비숙련자 집단&쓰다 버린 비행기들을 닥닥 긁어 모은 기체의 성능 등 카미카제 자체의 한계를 감안하면 뻔한 결과였다.
굳이 더 의미를 찾자면, 미 해군 장병들 중 후송되는 전투피로증 환자를 조금 늘렸다는 정도겠지만 사실 이것도 카미카제가 무서워서라기보다 공습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미군에겐 카미카제의 명중률 10여%는 승조원들 눈에 보이는 카미카제 2기 중 1기는 자신의 배로 날아든다는 의미였겠지만 사실 카미카제가 아니라 통상 폭격을 했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2기 중 1기는 자기 배로 폭탄을 떨어뜨리려 했다는 건 마찬가지니까. 물론 미 해군의 전체적인 운용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9.2. 인간 방패
카미카제가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원인은 이런 전술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카드 돌려막기 식 미봉책에 의지함으로써 일본군 스스로 더 효과적인 방법을 망각해버렸다는 점에 있다. 카미카제를 작전으로서 사용한다는 건 조종사의 기량 향상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으며 항공기 발전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확실히 처음 베테랑 조종사들에 의한 카미카제 작전은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급한 일을 막기 위해 미래의 가능성을 팔아버린 일종의 돌려막기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일본군은 "여차하면 카미카제를 쓰면 되니까(...)" 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항공기 발전과 조종사의 기량 향상에 힘을 쓰지 않았다. 카미카제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건 1944년 10월부터지만 작전상으로서의 검토는 1942년 미드웨이 해전부터였고 특공병기가 처음 만들어진 건 1944년 3월이다. 일본의 함상전투기는 끝까지 제로센뿐이었는데 이처럼 기술 발전이 뒤처진 데는 이런 안일한 생각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카미카제 같은 전술에 의지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항공기 기술을 발달시키고 조종사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미군을 막아낼 수 있었을 테지만 일본군은 카미카제에 의지함으로서 이런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해 버렸다.
제군이 나라를 위해 죽을 필요는 없다. 제군은 적들이 자기 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 조지 S. 패튼, 미 육군 제 6사단을 상대로 한 연설 中
반면 연합군에서는 전쟁광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호전적이었던 인물이었던 조지 S. 패튼조차 전술행동에서 적군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는 것 못지않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라는 명언을 남긴 커티스 르메이조차 도쿄 대공습을 야간에 한 이유가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사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아군의 피해는 줄이고 적의 피해는 늘리는 것이 전투, 나아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적에게 확실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면서 아군의 피해는 무조건 발생하는 카미카제는 극히 비효율적인, 아니 절대로 국가라는 인간의 집단이 정식 시스템으로 편재해서는 안 되는 전술이다.
더 중요하며 근본적인 게 하나 있는데, 당시 일본군 항공대 조종사들, 훈련을 마치고 나서 계급을 뭘로 시작했을까? 당대의 미국과 영국, 심지어, 일본과 팀을 맺었던 독일,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조차 조종사가 되면 최소 부사관 계급, 어지간하면 장교로 임관시켜 줬는데, 일본군은 조종사가 될 당시 계급이 병 계급이면, 어지간해서는 병 계급으로 계속 유지시켰으며, 진급 역시 소태같이 굴었다. 당장 일본군 에이스 파일럿 중 하나인 사카이 사부로가 장교가 되고 나서, 한 말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계급 문제가 왜 중요한지 하면, 작전의 입안, 계획 단계에서 조종사의 발언권이 없는거나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쉽게 표현하면 문자 그대로 상부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거다.
요약하자면 '인명과 장비를 경시하는 군대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명제의 매우 휼륭한 증명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으레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군대의 목적은 불필요한 희생을 줄여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병사들이 궤멸된 군대가 제 일을 못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어디까지나 생존이 있어야 승리가 있다. 저런식으로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떠한 긍정적 결과도 불러올 수 없다.
병사 하나를 죽여 적 몇을 잡느냐 하는 교환비면에서 카미카제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처음부터 그럴 의도로 전담 부대를 만든 것은 비유하자면, 전투 속행에 방해되거나 적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부상병은 버리거나 죽이고 가자는 교리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즉, 내일이 없는 자들의 전쟁. 게다가 전략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하는 야스쿠니에 보냈고, 반면 수뇌부는 전후에 천수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변명도 될 수 없는 싸움방식.
제일 웃긴 사례는 카미카제로 나간 조종사가 자살돌격대신 적 화물선 약점 요격하는데 성공하여 화물선을 반파시키고 귀환했다. 정상적이라면 조종사에게 훈장을 수여하여야 하지만 당시 일본 군부는 이 조종사를 총살시키는 것으로 보답해주었다.
어찌 보면 이 항목의 제목인 인간 방패를 가장 지능적으로, 악랄하게 사용한 예시가 되겠다.
9.3. 전술적 성과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카미카제는 얼마나 미국에 피해를 주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구 결과가 나왔고 미국과 일본 학자들 모두 이에 대한 자료를 내놓았으므로 교차검증도 잘 되어 있다.
호위항모 3척, 구축함 14척, 소해정 3척, 수송선 3척, 상륙정 14척, 화물선 9척, 탄약수송선 1척. 합계 47척. 전함이나 순양함은 물론이고 정작 일본 군부가 기대하고 있었던, 그리고 특공대가 잡아주기를 바랐던 정규항모는 단 한 척도 없다(...). 뭐 후술하다시피, 이미 수십 척의 항모전단을 굴리던 미국 앞에서는 정규 항모 한두 척을 격침시켜도 전황조차 바꿀 수 없었지만(...) 위에서도 언급됐지만, 카미카제로 격침당한 미 해군 정규 항모가 한 척도 없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는데,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운용한 정규 항모들은 격납고가 개방식이다. 즉 애초에 카미카제가 아니라 대형폭탄이 비행갑판에 떨어져도 그 충격은 거의 전부 함체 밖으로 다 새어나간다는 뜻이다.
이 47척이 3,800여 기의 비행기와 파일럿을 100% 확률로 폭사시킨 카미카제 전략에 의한 최종성과다.
이 피해는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투만이 아닌 1944년부터 집계된 카미카제로 인해 격침된 모든 미 군함의 수를 포함한 숫자다. 참고로 일본 연구가인 나가츠카는 49척, 야스노부는 49척으로 미국측 집계보다는 2척이 많으나 큰 차이는 없다. 오키나와의 전투에서 카미카제로 격침된 군함으로 한정한다면 그 성과는 더더욱 초라해진다. 고작해야 구축함 10척, 화물선 3척, 소해정 2척, 상륙정 8척, 수송선 2척에 불과하다.
이 정도 피해는 압도적인 미군이 아니라, 훨씬 전력적으로 떨어지는 영국군이라 해도 별 피해가 아니다. 그나마 의미 있는 건 상선을 개조해 임시땜빵으로 만든 호위항공모함 3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미해군은 항공모함만 100척을 넘었고 정규 항모로만 한정해도 28척이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는 개전시부터 종전시까지 잠시라도 보유한 경항모, 정규항모를 모두 합쳐서 26척 정도였고 그나마도 준공과 손실이 계속됐으므로, 일본군이 동시에 보유한 숫자는 보통 15척 이하 정도에 불과했으며, 카미카제가 본격적으로 행해진 1945년 초에는 6척 정도만 남아있었으며 이마저도 연료 부족과 함체 손상으로 정상적인 활동은 대부분 불가능한 상태였다.
격침이 아닌 연합군의 전체 피해를 집계하면 300~400척 정도, 피해자는 10,000명 정도 된다고는 하지만, 대다수가 수송선이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중소형 함정이었고, 정규 항모를 격침시켜도 전황을 뒤엎기도 모자를 판이므로 사실상 카미카제로 격침시킨 호위항공모함 3척은 별다른 피해조차 아니었다는 소리다.
카미카제의 명중률이나 피해도가 통상 공습보다는 그럭저럭 높지만, 전술적으로는 별반 이득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성과라고 할 만한 교환비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예를 들어 아군 10,000명을 자폭시켜서 10배가 넘는 적들 중에서 105명을 죽이는 전과가 그냥 싸워서 100명을 죽이는 전술보다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가려 뽑은 특공대원의 성공률이 14% 미만이며, 100% 확률로 소멸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만약에, 일본 군부가 그 병력과 인재들을 아껴서,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방향으로 주전략을 편성했다면, 도쿄와 구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하늘을 그토록 허무하게 바라보기만 했을까? 일선 병사들의 치열한 투쟁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카미카제를 정식으로 편제했을 뿐만 아니라, 대대적으로 홍보한 시점에서 일본 군부가 국민들의 생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 전선의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게 제공권을 잃은 것도 연합군 항공 기술과 항공레이더 기술이 발전한 것도 있지만 격전을 거치면서 많은 배테랑 조종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히틀러와 나치도 부랴부랴 노인, 소년, 극소수이지만 여성 파일럿도 양성하여 연합군 전투기를 상대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새내기 파일럿이 처음으로 이륙하여 바로 전선을 나가는 사태였지만, 적어도 이 파일럿들이 전쟁 결과를 떠나서 소중한 국가 자산인 것을 알고 있던 히틀러도 이들에게 항공기 추락 시 필요한 낙하산을 꼭 지급하였고, 일부 공군 장성들은 낙하산 사용 훈련을 받지 않은 새내기 파일럿은 출동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만큼 파일럿을 중요한 인재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카미카제 전법으로 베테랑 파일럿들이 제대로 활약하기도 전에 소멸시켰고 이는 당연히 제공권을 잃는 결말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영국군 항모들도 전쟁 극후반에 카미카제를 당했는데, 갑판 장갑 덕분에 대부분 이를 버텨냈다.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측면이나, 인력을 낭비한다는 측면을 제외하고 보면 일본이 카미카제를 실행한 것도 단기적 관점에서는 나름대로 효율(?) 이랄게 있어서이다.
대전 말 일본의 상황이라면, 카미카제가 아니라 통상적인 공격을 시도했어도 효과는 저조했을 게 뻔하다.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단순히 적함에 들이받는 것보다는 적함의 이동경로를 예측하고 정확히 어뢰를 날려 명중시키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오키나와에서 1,900대의 특공기가 미군 함선 180척에 충돌해 26척이 침몰했고, 이 중 2대의 특공기가 1척의 군함에 부딛힌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격돌에 성공한 숫자 자체는 280대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항공어뢰로 전투함을 상대로 이 정도의 명중률을 내려면, 승무원의 숙련도가 상당히 높아야 하고 손실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말레이 해전 이후 1942년 말까지 미 해군과의 전투에서 일본군 조종사들은 보통 시속 250에서 280km 속도로 항공어뢰를 투하했는데, 숙련된 조종사들이 이 정도 속도로 떨궈도 맞출까 말까하는 수준이었다. 말레이 해전 당시 일본의 육상공격기들은 어뢰 51발을 투발해서 9발이 명중했다. 약 18%의 명중률인데, 이는 오키나와에서 카미카제 공격의 명중률과 대동소이하다.
여기에 적에게 본격적인 전투초계세력이 존재할 경우 손실률까지 극심해지는데, 산호해 해전에서 18대의 뇌격기가 투발한 어뢰 중 렉싱턴에 2발이 명중했다. 반면, 이 중 10대가 손실되었으므로 명중률은 11%에 손실률은 56%가 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토모나가 공격대에 소속된 10대의 뇌격기가 요크타운에 2발을 명중시켰던 반면, 5대가 격추되고 3대가 파손이 심해 폐기된다. 이 당시엔 일본 해군에 숙련된 조종사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그 조종사들마저도 어뢰를 명중시키기는 힘들었던 반면, 그렇게 맞춰놓고서도 손실이 극심했다. 하물며 대전 말의, 나는 것만 배운 조종사들이 뇌격을 실행해 명중탄을 낸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48대의 뇌격기가 참여했고 이들이 낸 명중탄은 없었다. 반면 손실률은 대략 60~70% 수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44년 말엽에는 미 항공모함의 함재기 중 전투기의 비중이 40%에서 70%까지 확대되어 공중초계능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지속적으로 고갈되어가는 일본의 숙련병 자원들을 경험이 부족한 조종사들이 채워나가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들에게 뇌격을 시키더라도 결과적으로 돌아오는 전과는 사실상 제로가 될 뿐더러 카미카제 공격을 하면 무조건 죽는다 뿐이지, 통상공격을 실행하더라도 어차피 살아돌아오는 조종사는 2~3할 남짓일 뿐이다. 즉 일본이 시간을 끌기 위해 뭐 하나라도 격침시키는 발악을 해보기 위해서는 카미카제가 그나마 해답이었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전부 항공어뢰를 이용한 공격 사례지만, 급강하 폭격 역시 뇌격과 마찬가지로 웬만큼 숙련된 조종사가 아니면 명중을 기대하기 힘든 공격방식이었으므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통상공격을 실행했더라면 돌아오는 조종사는 몇 있었을지언정, 미 해군에 준 손실은 카미카제 공격을 할 때보다 훨씬 적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계산해보면 같은 인력을 소모시킨다고 가정했을 때, 통상공격보다 카미카제로 격침시킬 수 있었던 군함의 숫자가 얼추 4~5배가 더 많다. 문제는 4~5배 많은 숫자가 47척 정도라는 거고, 이 정도는 대전시기 750척에 가까운 함정을 뽑아낸 미군에겐 별 타격도 안 된다.
이처럼 카미카제는 의외로 비용 대 효과가 좋다고 평할 수 있다. 갓 들어온 3류 신입 파일럿과 최강으로 거듭난 미해군과의 싸움이 일본의 전쟁 후반의 현실이었고 카미카제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상대에게 타격을 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결국 카미카제는 그냥 통상공격보다는 그나마 효율적으로 목숨을 사용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카미카제의 특성상 이번 전투에 한정된 효율과 전과일 뿐이었다. 만약 카미카제로 적을 전멸시켜도 일본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장기적인 관점과 승리에 대한 길이 없을 때에는 카미카제가 유용하지만 그러한 상황이라면 항복하는 것이 낫다. 이기지도 못할 개죽음이 효율성이 높다해도 의미가 없다. 시간을 끌고 타격을 줘도 무조건 항복 외의 길은 일본에게 남아있지 않았고 적의 공격에 반격을 해도 진정한 의미의 반격인 미국에게 할 공세에 대해서는 어떠한 답도 없었다.
파일럿의 숙련도가 이미 밑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카미카제의 명중률은 통상공격보다는 높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미 무의미한 공격을 계속한다는 가정 하에서일 뿐이고 전략적 의미 단락에서 후술하겠지만 일본 방위성의 연구자료에서조차 공격이 아닌 전투기에 의한 방공이 차라리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지적한다.
9.4.1. 반론
우선 위 표는 전혀 의미가 없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기들이 전부 미 함대를 공격한게 아니다. 대부분의 항공기는 미드웨이섬을 공습하거나 방공용으로 사용되고 상당수는 출격하지도 못한채 항공모함과 함께 가라앉는다. 정말로 미 함대에 피해를 준 것은 히류에서 발진한 함상폭격기 18기와 뇌격기 10대와 전투기 11대(자료에 따라서 12기)가 전부다. 이 공격이 끝나고 난 후 히류는 격침당하며 이후 근처를 배회 중이던 잠수함 !-168이 발사한 어뢰 중 2발이 요크타운을 감싼 구축함(USS 함만)에 명중했고, 2발이 요크타운에 명중해 격침된다. 따라서 정확히는 고작 39기+잠수함 한척으로 정규항모 1척과 구축함 1척을 잡은 것이다.
둘째 필리핀 해 해전에서 미군은 항공모함 15척, 전함 7척, 순양함 21척, 구축함 58의 엄청난 병력을 보냈다. 그전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엄청난 방어망을 구축했고, 당연히 이를 뚫고 명중탄을 날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철통같은 방어망 앞에는 통상 공격이 아니라 카미카제라 해도 명중률에 별반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셋째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미군이 격침당한건 전부 사마르 해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레이테 만 해전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이 전투(사마르 해전에 국한해서)에서는 미군(태피3)이 구리다 함대보다 열세였다. 그리고 사마르 해전에서 격침된 호위항모 1척, 구축함 3척은 전부 함포에 의해서 당한 거다. 카미카제와는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또한 경항모인 USS 프린스턴은 D4Y 스이세이의 급강하 폭격에 의해 격침당했다. 오히려 통상폭격이 여전히 유용한 공격수단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유일하게 호위항모인 USS 세인트 로는 카미카제로 격침되었으나...
호위항모 세인트 로를 카미카제로 격침시킨 것은 세키 유키오 대위이다. 이 사람은 원래 카스미가우라 해군항공대의 비행교관이었으며 레이테 만 전투 당시에는 제36비행대의 지휘관이었다. 당연히 엘리트 조종사이다. 바로 이 사람이 카미카제 출격하기 전에 한 말이다. 좀 더 직역에 가깝게 기술한다.
일본도 끝이야. 나같이 유능한 파일럿을 죽이다니. 나라면 몸통박치기를 하지 않아도 적항모 비행갑판에 50번을 명중시킬 수 있을 자신이 있다. 나는 천황폐하라든가, 일본 제국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야.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가는 거야.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다. 일본이 진다면 아내가 미군에게 강간당할지도 몰라. 나는 그녀를 위해서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 어때 멋지지 않나?
이런 일류 파일럿이었으니 카미카제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는 말이다. 갓 들어온 3류 신입 파일럿이 간단히 카미카제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허상인지 알 수 있다. 카미카제로 제대로 피해를 주려면 급강하 폭격처럼 수직에 가깝게 고각에서 내리 꽂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면 그냥 일류 파일럿이고 이걸 할 수 있다면 급강하 폭격도 당연히 할 수 있다. 일류 파일럿이 하는 카미카제 공격이 분명 위협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어쨌든 들이박으면 파일럿은 전사한다. 그런데 신입 파일럿들은 당연히 이런 기술이 없고, 45도 각도에서 내리 꽂는데 이건 요격하기 딱 좋은 각도에 진입 속도도 낮아서 쉽게 격추당한다는 점이다.
카미카제로 피해를 입힌 다른 사례들도 살펴보자. 먼저 호위항모 어머니오마니 베이(CVE-79)의 경우. 오마니 베이는 1945년 1월 1일 수리가오 해협을 지나 항해하고 있던중 카미카제 공격을 받았다. 신푸 특공대 욱일(쿄쿠지츠)대 대장 카자마 만넨 중위가 이끄는 스이세이 2기가 몰래 접근해 1기는 호위항모 룽가 포인트에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오마니 베이는 2발의 폭탄과 카미카제 돌격을 받았다. 이 중 폭탄 1발과 카미카제로 인한 피해는 갑판에서 그쳤지만, 폭탄 1발이 갑판을 뚫고 격납고 안에 있는 함재기 연료와 유폭해서 폭발. 전사 및 실종 93명, 부상 63명의 피해를 입고 결국 미군이 어뢰로 자침시켰다. 이미 폭탄을 명중시킬만한 기량이 있었고, 격침시킨것도 결국 투하한 폭탄에 의해서 였다.
호위항모 비스마르크 시(CVE-95)의 사례를 보자. 비스마르크 시는 이오지마 전투 중 40mm 대공포좌에 카미카제 공격을 받고 화재가 났으나 이를 진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날아온 통상 공격기 1기(정체는 확실치 않음)가 투하한 폭탄이 후부 엘리베이터에 명중. 함재기, 탄약, 연료가 연이어서 유폭해 사망자 318명과 함께 침몰했다.
에식스급 항공모함 벙커힐(CV-17)의 사례를 보자. 벙커힐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카미카제 공격을 받고 대파된다. 벙커힐에 카미카제 공격을 성공시킨건 제3 쇼와공격대 편대장인 야스노리 세이조 중위와 편대원 오가와 키요시 소위 였다. 먼저 야스노리 중위의 제로센이 폭탄을 떨궈서 명중해 제3 엘리베이터 바로 옆 갑판을 관통 그대로 천정을 뚫고 좌측격벽에 구멍을 내고 바다로 떨어져 폭발했다. 이에 야스노리 중위는 그대로 갑판에 돌격 F4U 콜세어 1기와 함께 바다에 추락했다. 이어서 오가와 소위가 폭탄을 투하하고 격돌했으나 카미카제로 인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 500kg의 폭탄이 갑판을 관통하고 격납고의 항공기 연료 탱크와 함께 대폭발. 미군 사망 346명, 실종 43명 실종,부상 246명이라는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보시다시피 이 2명도 폭탄을 항모를 명중시킬만한 기술이 있었으며 결코 폭탄을 명중시킬 줄 모르는 미숙한 초짜 파일럿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작 항모에 큰 피해를 준 것은 카미카제가 아니라 투하한 폭탄이었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의 사례를 보자. 엔터프라이즈에 카미카제 공격을 성공시킨 도미야스 슌스케 중위는 츠쿠바 해군항공대의 비행교관이었으며 1945년 5월에는 신푸특공대 제6츠쿠바대의 대장이었다. 위 7.2. 항목에 자세히 나와있듯이 이 사람도 카미카제 돌입 전에 신묘한 기술로 먼저 폭탄을 명중시켰다. 역시 초짜 파일럿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보시다시피 항공모함 같은 중요 전력에 제대로 피해를 준 카미카제들은 대부분 교관이나 편대장 등 숙련된 조종사들이지 결코 3류 조종사들이 아니었고 이들은 이미 자폭하지 않아도 폭탄을 명중시킬 만한 인재들이었다. 위에서 전쟁 후반기에는 카미카제가 아니면 명중 못시켰다는데 실제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숙련된 이들은 1945년에도 폭탄을 잘만 명중시켰다. 파일럿도 귀중한 인재지만 그중에서도 비행교관급은 더더욱 귀중한 인재이다.그래서 연합군에서는 무리해 가면서도 숙련된 파일럿을 후방으로 돌려 신병 교육에 힘썼다. 이런 인재들을 일개 파일럿으로 정상적인 작전에만 투입한다 해도 상당히 무리한 개념이다. 독일 공군의 경우 이런 후방 배치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서 비행 교관급은 물론이고 장성까지 진급한 장교들도 일선 조종사로 투입해야 했었다. 독일 공군에 격추 수 100대 이상의 슈퍼 에이스들이 수두룩한 것도 사실은 이러한 혹사의 대가였으며 전쟁 말기로 가면 이런 에이스들도 누적된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 둘 격추당해 전사하거나 제공권 장악으로 아예 출격 자체를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카미카제를 하지 않은 독일 공군도 이런 대가를 치뤄야 했다. 하물며 이런 인재들을 일반 작전도 아니고 싹 다 1회용 인간폭탄으로 갈아넣으면 대체 신병 교육이나 항공 작전 지휘는 누가 한단 말인가?
피해 자체도 통상 폭탄이 더 강력하다. 카미카제 공격으로는 대형함의 갑판을 관통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기껏해야 갑판에서 폭발해 불을 내거나, 위 HMS 서섹스의 사례에서처럼 측면 장갑에 흠집만 낼 뿐이다. 반면에 통상 폭탄은 갑판을 관통해 뚫고 들어가 군함 내부에서 폭발하고, 운이 좋으면 함내 탄약고나 함재기, 연료와 유폭할 수 있으므로 정말로 큰 피해를 입힌다.
그리고 어뢰 공격은 함선의 홀수선 아래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기 때문에 카미카제나 통상 폭격보다 훨씬 강력하다. 반대급부로 폭탄보다는 명중률이 훨씬 떨어진다. 숙련된 파일럿이 하는 급강하 폭격은 회피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어뢰는 항적을 보면서 회피하는 것도 가능하다. 당연히 어뢰의 명중률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카미카제는 공격방식이 급강하 폭격과 유사하다. 어뢰의 명중률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흔히 카미카제를 옹호하는 측이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통상공격의 명중률이 너무 낮았다고 하는데 위 전투에서는 방공망 수준이 차원이 달랐으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레이테 만 해전에서 경항모를 통상 공격으로 격침시켰듯이 방공망이 부실하다면 1944년에도 여전히 통상공격은 유효한 공격 수단이었다. 방공망이 강력하면 통상공격이건 카미카제건 명중률이 떨어지고, 방공망이 약하면 통상공격이건 카미카제건 명중률이 올라가는 것이다. 즉, 명중률은 미군의 병력과 방공망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지, 카미카제라고 크게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