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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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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천하(天下)의 강병처(强兵處) 조선(朝鮮)의 “장안(長安)=한성(漢城)”[2편]
문 무 추천 2 조회 279 24.01.31 09:5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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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1.31 14:15

    첫댓글 고구려(高句麗)의 "도성(都城)"은 "국내성, 한성, 평양성(장안성)"등 여러 곳에 있었다고 하는데,
    한반도 평양에 이러한 성의 유적지 또는 흔적이 있느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글 해설서 또는 사가들은 말하기를 : "오늘날의 평양 시가지가 만들어진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즉 유적지도 없고, 주춫돌 하나 없고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으니, 북한의 '평양 시가지 내'에 있었던 으로 뭉개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평양성과 똑같은 구조, 시읍, 성(城)과 그 규모등이 똑같았던 곳이 있을까요??
    당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평양성"과 "장안성"이고, 서역 땅에 있다는 "구차국성"입니다.
    *** 즉 "평양성, 장안성, 구차국성"은 "그 성의 축조모습, 성의 길이, 방향, 3중으로 성을 만든 구조까지 똑같고, 성 내의 시읍 또한 똑같았고, 아주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을 "한 유방"의 나라로 연결시키려 한다면 시대적으로 지리적으로 전혀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조선왕조의 역사속에서만이 그러한 연유와 이유가 해설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편"은 바로 이것을 다뤄보려 합니다,

  • 24.02.05 13:41

    성호사설 제30권 / 시문문(詩文門)
    적성(赤城)

    왕자안(王子安)의 시에,

    적성에는 아침해가 비추는데 赤城暎朝日
    푸른 물은 봄바람에 흔들리누나 綠水搖春風

    하였는데, 적성(赤城)이란 장안성(長安城)으로서, 용수산(龍首山)의 흙으로 쌓았으므로 빛이 붉기 때문에 이름한 것이며, 석전(石甎)으로 포개어 만든 것이 아님을 볼 수 있다.
    중국의 성이란 바로 흙을 쪄서 만든 것이 많아서 그 견고함이 돌과 같다.
    그러므로 저 통만(統萬)에서도 징험할 수 있다.
    수 문제(隋文帝)가 장안성이 협소하여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새 도성을 용수산에다 창설하였으니, 옛성은 한(漢) 나라가 성을 경영함으로부터 백 년이 되었고, 물은 다 염분이 많아서 사람에게 너무도 적의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생각건대, 용수산의 흙은 곧 지금의 붉고 차진 점액(黏液)인 것이다.
    赤城者長安城也 用龍首山土築之色赤故云爾非石甎累成可見.
    中國之城多是蒸土為之堅如石.
    故於統萬可驗.
    隋文帝嫌長安城狹小創新都于龍首山 ,舊城自漢營城 ♪八百歲♪ ,水皆醎鹵不甚宜人故也
    意者龍首之土即今之赤埴黏液是也.
    -> 번역은 한나라가 100년을 경영했다고 하는데 원문은 팔백년으로 되어있네요.ㅎㅎ

  • 작성자 24.02.05 21:41

    안녕하세요. "박장순"님!
    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안성(長安城)이라는 말은, 주(周)의 풍과 호경, 진의 함양, 한(漢)의 장안, 수의 도성, 당의 도성등을 몽땅 두리뭉실 나타내는 말이라고 봅니다. 적성(赤城)이란 말과 만리장성을 자새(紫塞)라고 하죠. 황토고원에서 그 재료를 구해 그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삼국사기를 봐도 고구려가 장안성(長安城)을 쌓고, 이곳으로 천도했다고 하였지, 그 장안성을 쌓은 재료에 대해서는 언급된 것이 없습니다. 돌로 쌓든, 흙을 재료로 했든 관계없는 일입니다.
    ➡ 陽原王 [或云陽崗上好王] 八 年【AD 552年】 : 《築 長 安 城 : 장안성(長安城)을 쌓았다.》라고 하였고, 【東史綱目 : 高句麗 陽原王 8년 : 고구려가 장안성(長安城)을 쌓았다.】
    ➡ 平原王 [或云平崗上好王] 二十八年【AD 586年】 : 《高 句 麗, 移 都 長 安 城. 都 平 壤 百 六 十 而 遷 : 》라고 하였다. 【東史綱目 : 平原王 28년 하(夏) 5월 : 高句麗가 도읍을 장안성(長安城)으로 옮겼다. 평양(平壤)에 도읍을 옮긴 지 1백 60년 만에 옮겼다】
    *** 옛 성을 한(漢)나라가 800년을 경영하였다?

  • 작성자 24.02.05 21:45

    이러한 원문의 내용을 보면 : 한(漢)나라가 장안성에 도읍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기록이라고 보아집니다.
    더더구나 한(前漢)은 장안성에서 200년을 보냈지 다른 곳으로 천도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원문의 800년은 심각하게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하세요.

  • 24.02.06 12:41

    항상 문무님께 감사드립니다.
    문무님의 글을 인쇄해서 파일철에 넣어 수시로 보곤합니다.~^&^
    무병장수하셔서 계속 좋은 활동하시길 기원합니다.
    문무님 글을 보는 것이 저의 낙입니다.^^

  • 24.03.07 21:24

    알타이산이 백두산일 경우, 바이칼호수가 경박이며, 이르츠쿠츠가 발해의 상경용천부(흥경)이고, 지금 시베리아연방구(러시아)가 심양(성경)이고, 제가 유튜브에 알타이산은 백두산이라는 주제로 올리고 있는데, 시간나시면 타당성 검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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