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은 엄마의 위대한 영웅
2023.04.27
‘임영웅은 우리 엄마의 가장 찬란했던 어느 날을 노래해 주는 걸까.’
요즘 육, 칠십대의 부모를 둔 자녀들은 임영웅의 콘서트 일정이 뜨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티켓을 안겨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부모
님의 부탁이 아니라, 생기를 되찾고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한 소녀의 덕질을 힘껏 응원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수 임영웅을 덕질하는 엄마의 팬심은 언 듯 보면 어린 아이돌을 덕질하는 자녀의 팬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덕질에는 긴 삶의 애환 뒤에 되찾은 내 안의 어린 나를 투
영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임영웅에게는 생계를 위해 합정역 7번 출구에서 군고구마를 팔
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손발이 다 터질 정도로 추운 겨울에 옷도 얇게 입고, 나무를 장작 삼
았다가 그 연기 때문에 일대가 야단이 났지만 장사를 위해 외모 꾸미는 것은 포기할 수 없
었다는 그의 넉살과 붙임성 있는 성격은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자신의 젊은 날을 떠올리기
에 충분했을 텐데요. 물론 가족을 위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친자식보다 더 듬직하고
다정스러울지도 모르겠고요.
임영웅의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발라드 감성이 가득하고, 풍기는 느낌은 또 트로트의 정
서를 아예 배제 시키지 않은 드라마 OST도 많이 불렀고,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 심
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 도성의 ‘배신자’ 등 부모님의 화양연화를 떠오르게 만드는 노래
또한 많이 불렀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는데요. 만약, 임영웅이 그동안의 많은 트
로트가수처럼 정통트로트를 불렀다면 자녀는 부모의 팬심을 ‘덕질’로까지 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르는 노래의 다양함이 너무나 조화롭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자주 열리니 우울하고 답답했던 시간은 이제 활력으로 채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덕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덕후전문교실’이 열린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공식카페를 가
입하는 것부터 음원 스트리밍은 기본이고요. 콘서트에서 열심히 흔들 응원봉 사용법과 굿
즈를 구매하는 것까지, 아주 세심하게 다 알려주는 이들만의 커뮤니티는 이제 문화로 자리
잡은 듯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은 임영웅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읽고 싶어서
손녀에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연이었습니다. 크게 프린터 된 가사에 더듬더듬 손
을 짚어가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붙잡지 못하고 가슴만 떨었지
내 아름답던 사람아
사랑이란 게 참 쓰린 거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
내 잊지 못할 사람아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이내 눈가가 촉촉해진 어르신은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노랫말을 부르는 사람이라 임영웅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씀하셨지만 더 뭉클한 건 어르신의 그 아이 같은 모습이었답니다.
임영웅을 덕질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조금 더 그들을 챙기기 시작했는데요. 콘서트장에
모셔다 드리고, 또 모셔 오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선물로 드리게 된 것이죠. 공항에서 손님
을 기다리듯 콘서트장 바깥은 짧은 여행을 끝낸 부모님을 기다리는 자녀들로 붐비기 시작합니다.
기나긴 투병 중에, 살아야겠다는 어떤 계기가 되어주고, 수면제가 아니면 잠을 이루지 못하
던 우울과 무기력으로 점철된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은 너무
나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존재가 허상이 아니라 고운 목소리
로 인생을 위로해 주는 현실의 사람. 그런 임영웅에게 빠진 엄마를 보는 일은 모든 자녀에
게 기쁨이자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삶을 열심히 즐기는 사람은 누가 보아도 행복한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