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순신이 죽인 왜군의 수는
5만~1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요새는 8만명 정도의 설이 대세라고 하는데...
한산도에서 8천, 명량에서 18,000명, 노량에서 3만 명을 사살!!!
그래서 8만이 대세라고 한다.(많이도 죽였네~)
일본 수군의 수가 8만 명이나 되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조선 수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건이 좋았던 일본 수군은 손실 되는 인원을 즉시
보충하고, 육군을 대규모로 차출하기도 하였다.
23번의 전투에 참가한 일본군의 연 인원은 40만 명, 천 척에 이른다.
(일본 수군의 수가 40만이 아니라 산술적 계산이 그렇다는 소리니 이해 하시길...)
이순신이 일본군의 보급을 바다에서 거의 완전에 가깝게 차단하는 바람에
일본 육군의 절반이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는 사실이다.ㅡㅡ;
지금은 온난화 현상 때문에 한반도의 기후가 아열대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아한대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면화가 본격적으로 재배 되지 않아서 면포를 조선에서 수입하는 상황이었
고, 사실 면 옷을 입을 필요도 없었다.
더군다나 왜 수뇌부는 단숨에 전쟁을 끝낼 생각에, 겨울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제 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 옷에는 이가 많다." 라고 노획한 옷들을 전부 불태우기도 하였다.(일본애들이 목욕은 정말 많이 하기는 했다. 그들 옷차림은 쇗!이었지만...)
제다로 된 겨울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본군은 조선의 동장군에게 무수히 쓰러졌다.
제대로 전투를 하지 않은 제 2군 가토 기요마사의 경우는. 병사의 절반 이상을 추위로 잃었다.
그리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극심한 식량 부족이 야기 되어, 때로는 인육을 먹는 경우도 있었
고 그나마 바다에서 육지로 가지고 온 식량마저도 각지의 조선 의병들이 확! 쓸어버리니...
많은 수의 일본군이 굶주림에 이기지 못하여 조선군에 투항하였다.
투항한 일본군의 수는 천 명에서 수천 명 내외 였다. 게다가 조선은 얘네들을 제대로 써먹었다.(개전 하기도 전에 투항한 왜장이 있다고 한다. 그는 얼마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삼난공신이기도 했다. 누가 이 분에 대해 게시판에 글 좀 올려 주오~)
일본군을 위해 옷과 식량을 가지고 와야 할 일본 수군의 배는
모두 이순신에게 모두 격침되어 일본군의 보급은 마비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이순신이 직,간접적으로 죽인 일본군 수는 15만 명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아무리 봐도 이순신장군을 욕하는 인간들이 이해가 안간다.ㅡㅡ;)
저럴진데... 원균이가 이순신 횽아가 벼르고 기른 거대한 수군세력을 칠전량에 한 방에 올 인!!!
다~ 말아 먹었소이다. 역시 원균이 횽아는 통이 매우 크다!!!
그 누구도 다 꼴아박으래도 꼴아박기 힘든 그전력을... ㅡㅡ;(다시 봐도 원균 횽아를 명장이라고 하는 주장을 개념과 상식을 저~ 멀리 던져 버려도 납득할 수가 없다. 내가 이상한거야? 아니면 원균파가 이상한거야?)
여하튼 이순신 장군이 8만을 죽였다고 어떻게 계산했냐면은
노량해전에서 사살한 적의 수를 책에 따라 200 여 척에서 400 여 척을 분파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당시 조선군의 총 수는 9만 8천 명, 일본군은 8만 명 정도였음.
조선군의 수는 일본군을 능가했지만, 무장이 취약한 의병군이 다수 있었고,
각지의 요새에 분산 배치되어 있어서 일본군을 제압하지 못했다.
일본군은 각지의 왜성에 약간의 분산, 집중 배치 되어 있었는데,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은 3만 명 정도...
시마즈의 왜군 까지 합친 다고 하더라도 많이 봐줘야 5만이 안 되었을 거다.
일본선의 정원이 150~200명 정도 였으니, 노량해전에서 격파한 적은 3만 명 정도라고
추정한다는 것이다.
카페 게시글
동양사
이순신장군에 의해 죽은 왜병의 수...(ㅡㅡ;) 별의 별 연구를 다 하네~
북현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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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33
05.08.31 17:52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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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음-_- 가토 부대가 한일 없이 놀았다는건 좀;; 그렇군요;; 얘네들 북으로 신나게 찌르며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정문부에게 야코먹고 남으로 후퇴하지요. 이때가 가을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반에 투항한 일본장수는 김충선입니다.(일본 이름은 가물가물 하군요;;) 전국시대 당시 철포용병이었던 사야가(賀)패 출신이지요.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수급을 세는 나라였습니까?
원균도 가기 싫었는데 권율한테 불려가서 엉덩이 맞고 왔더랩니다...출동하라고...
그건 자료있지 않나요? 곤장맞았다는거
맞을 때 엉엉 울었을까요? (퍽)
김충선 일본 이름 사야가일 겁니다...
전또 혼자서 죽인수인줄 알았ㅅ브니다 -_-;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의 주력군과 혼자 싸우다시피한 고니시는 일본에선 별볼일 없는 얍삽이 무장으로 평가절하되고, 조선에서 별반 싸울 일도 없었던 가토는 호랑이 한마리 사냥했다고 일본까지 "전설"로 전해지고....솔직히 장수들의 실제 재능과 평판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 -;
가토와 고니시...살아남은자와 죽은자의 차이랄까
양장군님 말씀대로 ㅎ 동군인가 서군인가...겠지요
양웬리님 아뒤보니 은하영웅전설이 생각납니다 참 재미나게 봤는데.
고니시 평가절하되는거야..토쿠가와 막부에 반대편에 서있어서 그런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