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길, 지금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
양양의 동쪽은 길게 동해와 맞닿아 있고 남쪽의 지경리부터 북쪽 물치리까지 약 44km의 해안선을 따라 한적한 바닷길이 이어진다. 길은 아주 잠깐씩 가뭇없지만 망망한 바다는 늘 곁에 있다. 길이 바다와 나란히 가니 그만큼 낭만적이고 또 운치 있다. 동해안 전체를 보아도 이같이 아름다운 바닷길이 시종일관 이어지는 곳은 양양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양양의 바닷길 가운데 제대로 물이 오른 길이 있다. 양양에 가거든 꼭 걸어봐야 할 바닷길, 바로 ‘헤밍웨이길’이다. ‘몽돌소리길’ 또는 ‘해파랑길 44코스’라 불리는 이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짙고 푸른 바다와 어깨를 맞대고 걷는다. 나와 바다 사이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길이다.
분명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이 이름은 제법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0년 전, 이 길의 한 쪽 끝 지점인 강현면사무소 옆에 ‘마놀린’이란 작은 카페가 있었다. 소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바로 그 ‘마놀린’이다. 먼 바다에 나간 노인 산티아고를 위해 커피를 준비했던 마놀린처럼 애정과 배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손님을 맞이하겠다는 다짐을 이름에 담았다. 서울에서 내려와 터를 잡은 카페 주인 부부는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주로 카페 앞 바닷길을 걸어 후진항까지 산책을 했고, 길 쉼터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단골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어느 날, 길이 끝나는 지점에 ‘헤밍웨이레스토랑’이 있다는 걸 발견한 그들은 ‘이건 필시 하늘의 뜻이야!’ 하며 마놀린과 헤밍웨이 사이의 길을 ‘헤밍웨이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을 좋아하는 여행자들도 점점 늘어났다.
세월이 흐른 뒤 카페 ‘마놀린’은 ‘양양그곳 카페이룸’으로 바뀌었지만 ‘헤밍웨이길’은 점점 더 매력적인 도보여행길로 변해갔다. 커피와 디저트 마니아들 사이에 ‘핫플’이 된 ‘양양그곳 카페이룸’ 때문이기도 했다. 10년 전 카페 마놀린을 만들었던 젊은 부부와 똑같이 닮은 지금의 주인 부부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 헤밍웨이길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자처한다. 그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헤밍웨이’와 『노인과 바다』를 테마로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헤밍웨이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 알리는 일에 열심이고, 그들 스스로 헤밍웨이길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그 길을 걷는다.
헤밍웨이길은 한적한 바닷가 길이지만 특별한 점이 많다. 길을 걷는 내내 가슴이 탁 트일 만큼 거침없는 바다가 펼쳐지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은 압도적이다. 시작점부터 끝까지 편안한 데크 길이어서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또 전체 길이 2.3㎞, 30분 정도로 부담 없는 산책길이다. 헤밍웨이길은 후진항 쪽 몽돌소리길 전망대에서 양양그곳 카페이룸이 있는 강현면사무소 앞까지만, 양 끝에 있는 설악해수욕장부터 물치항까지를 포함해도 상관없다. 그 거리까지 합해도 3.7㎞, 1시간이면 여유롭다. 길의 중간에는 정암해수욕장이 있고, 그 옆에 『노인과 바다』를 테마로 한 헤밍웨이파크가 있다. ‘산티아고’와 ‘마놀린’ 이름을 단 배 두 척과 원목 그네, 해먹 등으로 꾸며놓은 이곳은 소설 속으로 여행자들을 안내한다. 정암해변이 헤밍웨이파크로 인해 부러 그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또 인증샷 명소이고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헤밍웨이길의 또 하나의 매력은 걷는 즐거움이 있는 길이란 점이다. 길의 한쪽이 7번국도라 차 소리로 시끄러울 듯하지만 동해 바다의 파도소리와 몽돌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그걸 알아채기 쉽지 않다. 길 곳곳 소라 모양의 벤치에 앉아 자그락거리는 몽돌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롭다. 바다 전망대도 최고의 ‘뷰 맛집’이다. 전망대에 올라 ‘하트바위’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카페 ‘양양그곳 카페이룸’안에 앉아 바라보는 바다와 소나무 풍경은 기막힌 절경. 카페 건너편 바닷가 나무그네에 앉으면 더 이상의 쉼이 있을 수 없다. 헤밍웨이길 주변에는 호텔과 펜션, 식당과 카페, 애견펜션도 있고 차박과 일출 명소도 그곳에 있다.
양양여행의 스테디셀러, 양양 오일장 그리고 비치마켓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지닌 양양 오일장. 5일에 한 번씩, 양양 오일장은 끝자리 4, 9일에 열린다. 과거 영동북부 최대 규모라는 명성은 빛이 바랬지만 정선 오일장과 함께 가장 활성화된 장이기도 하다. 양양전통시장과 함께 양양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변함없이 애정하는 곳으로 물건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무엇보다 사람이 많아 장터답다. 송이, 약초, 해산물 등 특산물과 먹거리, 넉넉한 인심까지 날것 그대로의 양양을 느낄 수 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짜에 맞추기 어렵다면 아무 날이건 그냥 전통시장을 찾아도 된다. 떠들썩한 오일장의 분위기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제대로 구색을 갖춘 시골 시장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 유명한 감자옹심이와 장칼국수 한 그릇 맛보는 건 기본, 웨이팅이 지루해도 맛은 최고다.
날짜를 맞춰야 만날 수 있지만 양양에는 또 다른 특별한 시장이 있다. 낙산 인근 후진항에서 열리는 양양비치마켓이다. 작은 항구지만 한 달에 두 번, 주말마다 열리는 비치마켓 덕분에 입소문이 났다. 이곳에 가면 예술가들의 솜씨가 빛나는 멋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한적한 바닷가에 펼쳐지는 아트 마켓에 양양 사람들도, 우연히 들른 여행자들도 모두 놀라고 또 만족하는 곳이다. 시작은 다소 생경했지만, 신선했던 바닷가 장터의 매력에 푹 빠진 여행자들과 셀러들의 참여가 늘면서 마켓은 풍성해지고 있다.
요즘은 마켓이 열리는 날짜에 맞춰 부러 찾는 명소가 되었다. 양양비치마켓은 지난 3월초 ‘어린연어 보내기 축제’가 펼쳐진 남대천에서 ‘리버마켓’이란 이름으로 펼쳐졌다. 후진항에서의 비치마켓 대신 남대천 옆 리버마켓으로, 장소를 바꿨지만 콘셉트는 변함이 없다. 다만 마켓을 여는 시기와 장소가 변동될 수 있으니 사전에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글 이상호(여행작가) 사진 이상호, 안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