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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若欲占察三世中受報差別者,當復刻木為六輪。
於此六輪,以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十一十二、十三十四十五、十六十七十八等數,
書字記之。一數主一面,各書三面,令數次第不錯不亂。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과보와 선악의 차별을 묻고자 하면 여섯 개의 목륜을 만들어서 한 개의 륜에 네 면 가운데
세 면에는 숫자를 쓰고 한 면은 공백으로 둡니다. 세 면에 1、2、3을 한 륜에. 4、5、6을 한 륜에 씁니다.
한 륜에는 7、8、9를, 한 륜에는 10、11、12를, 한 륜에는 13、14、15를, 한 륜에는 16、17、18를 씁니다.
여섯 개의 륜을 합하면 189가지의 조합이 됩니다. 매 륜에는 네 개의 면이 있고 숫자 하나가 한 면에 쓰여지고
한 면은 공백으로 남겨둡니다. 왜 한 면은 공백으로 남겨두는가 하면 만약 던졌을 때에 세 번 모두 공백에
숫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음과 대상이 모두 드러나지 않는 것이니 곧 구경을 증득한 것입니다.
세 번째 윤상의 숫자는 반드시 차례대로 써서 섞이지 않게 써야 합니다.
세 번째 윤상을 던질 때에 여섯 개를 같이 들고 동시에 던집니다. 세 번을 던져서 매 번 나온 숫자를 기록한 다음
세 번 나온 숫자를 합쳐서 경전에 나온 189가지 종류와 대조합니다. 자신이 던진 합산 숫자와 마음 속에서 물었던
문제와 내용이 상응하는지를 잘보아야 합니다.
當知如此諸數,皆從一數而起,以一為本。如是數相者,顯示一切眾生六根之聚,皆從如來藏自性清淨心一實境界[5]而起,依一實境界以之為本。所謂依一實境界故,有彼無明。不了一法界,謬念思惟,現妄境界,分別取著,集業因緣,生眼、耳、鼻、舌、身、意等六根。以依內六根故,對外色、聲、香、味、觸、法等六塵,起眼、耳、鼻、舌、身、意等六識。以依六識故,於色、聲、香、味、觸、法中,起違想、順想、非違非順等想,生十八種受。
왜 열 여덟이 되는가 하면 18은 안、이、비、설、신、의 六根과 색、성、향、미、촉、법 六塵,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 六識을 대표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합하여 열 여덟이 되고 이것을 18계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각각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윤상에도 열여덟개를 써놓은 것입니다. 또한 18근취법문이라고도 하는데 열 여덟 개가 함께 모여서 나눌 수가 없습니다. 선업、악업、선악업이 어떤 변화를 하더라도 모두 18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럼 18계는 왜 일(一)에서부터 일어나는가? 왜냐하면 一은 근본이고 일부터 더해서 十이 되니 일은 시작하는 숫자이고 十은 마치는 숫자입니다. 그래서 보현보살 십대원은 바로 무궁무진한 원인 것입니다. 一로써 근본을 삼아 일에서부터 十이 되고 백에서 천、만억이 모두 일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一이 무엇인가 하면 一은 곧 일진법계一眞法界이고 일실경계입니다. 일실경계의 본체는 본래 광명을 구족하여 세간의 일체만법을 다 비춥니다. 그러나 무시이래로 한 생각의 不覺으로하여 우리가 본래 구족한 자성청정심인 일실경계에서 무명이 일어나고 무명이 있어서 일체만법에 대해서 밝게 알지못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허망하고 실답지 않은 사량분별이 생겨나고 망령된 경계를 집착하고 탐착하여 각종 업의 인연을 불러옵니다. 육근과 육진이 서로 부딪쳐서 육식이 생겨납니다. 왜냐하면 육식은 색성향미촉법의 육진법 가운데에 어기고 수순하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뜻과 같은 것은 수순하는 것이고 뜻에 안맞으면 어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고추가 먹고 싶습니다. 매운 것을 못먹는 사람에게는 바로 고통이기 때문에 거부하게 됩니다. 먹고 싶은 것은 수순하는 경계이고 먹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어긋나는 경계입니다. 어긋나고 수순하는 두 종류가 뜻과 같은 것은 수순하는 경계는 樂受(좋은 느낌)이고 뜻에 안맞으면 어긋나는 경계는 苦受(괴로운 느낌) 입니다. 어긋나지도 수순하지도 않는 경계는 不苦不樂受(괴롭지도 좋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각 식에는 이 세 가지 느낌이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식에서 열 여덟 종류의 느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若未來世佛諸弟子,於三世中所受果報,欲決疑意者,應當三擲此第三輪相,占計合數,依數觀之,以定善惡。如是所觀三世果報善惡之相,有一百八十九種。何等為一百八十九種?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경계상에 대한 의심을 없애고자 하면 세 번째 윤상을 세 번 던집니다. 그래서 나온 숫자의 합계를 관찰하여 경정에서 말씀하신 지장보살의 가르침과 대조하여 이 숫자가 善인지 惡인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면 삼세의 과보와 선악의 상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선악의 상은 189종류가 있습니다. 그 숫자가 자신이 생각하고 묻고자 하는 것과 상응하는지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모든 법이 끊임없이 돌고 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점찰해서 상응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설사 우리가 189의 마지막 숫자를 던져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세 번 가운데에 오직 3,6,9,12,15,18만이 나타납니다. 세 번 모두 마지막 큰 숫자여야 189가 됩니다. 또 만약 세 번을 던지거나 두 번을 던진 것이 모두 공이라면 세 번째에서 오직 한 개만 1이 나왔다면 가장 큰 숫자를 던지거나 혹은 가장 적은 숫자를 던지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至心으로 지장보살님께 가피를 청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신통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윤상이 바로 지장보살이 우리에게 주는 신통입니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점찰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를 들면 태원이라는 곳이나 어떤 사원에 갈때에 가는 도중에 장애가 있는지 없는 지 가도 되는지 안되는 지를 점찰을 해보아서 윤상에 좋다고 나오면 가도 됩니다. 만약 안좋다고 나오면 가지 마십시요. 그러나 점찰은 선교방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장보살을 염하고 절을 하도록 유도해서 지장보살의 가피를 구해서 업장을 소멸하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점찰선악업보경을 지성으로 신앙하는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와 선악의 업보에 대해서 분명히 알지 못하여 해결하고자 하면 세 번째 윤상으로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점찰을 할 때에는 반드시 앞에서 설명한 지장보살의 가르치신 의례대로 해야 합니다. 선악의 업상은 모두 합하여
189가지 종류로 우리가 묻고자하는 문제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1부터 160까지는 현재에 받는 과보에 대해 보여주고 있고 161부터 170까지는 과거의 과보에 대해 밝히고 있고 171부터 189까지는 미래의 과보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은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선악 업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一者,求上乘得不退。
상승上乘의 원만한 과위를 구하고자 함에 있어서 퇴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二者,所求果現當證。
구하는 신통이나 견사혹見思惑의 번뇌를 구하거나, 혹은 초과初果에서 사과四果까지, 혹은 보살의 信位、行位、住位를 금생에 증득할 수 있습니다.
三者,求中乘得不退。
소승小乘은 성문聲聞이고 중승中乘은 연각緣覺이고 대승大乘은 보살입니다. 중승中乘의 과위를 구하고자 함에 있어서 퇴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四者,求下乘得不退。
하승下乘은 인천의 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세상과 천상계의 복의 과보를 구하여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부처님 법을 배울 수 있고 신심이 퇴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점찰P131~
五者,求神通得成就。
신통이란 타심통、천안통、천이통、숙명통、신족통、누진통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신통을 구함에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점찰해서 윤상이 상응하면 견고한 신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정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六者,修四梵得成就。
사범四梵이란 바로 청정한 범행인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입니다.
七者,修世禪得成就。
세간의 선을 닦아서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세간의 선은 四禪四定을 닦아서 四禪天에 올라가서 네 가지 선정의 과위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八者,所欲受得妙戒。
계를 구하고자하면 참법 기도를 한 후에 이러한 윤상을 얻으면 계체를 얻을 수 있습니다.
九者,所曾受得戒具。
오계、팔계、보살계는 던져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받든지 받기만하면 계를 얻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비구、비구니계를 가르킵니다. 이러한 윤상을 얻으면 이미 계체를 얻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十者,求上乘未住信。十一者,求中乘未住信。十二者,求下乘未住信。
이 뜻은 삼승의 법을 수행하는 데있어서 아직 신심이 구족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十三者,所觀人為善友。
관찰하고자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니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입니다.
十四者,隨所聞是正信。
경이나 논장이나 가르침을 듣고 정법인지 아닌지를 일아보려고 할 때에 이 윤상을 얻으면 정법이니 게속 들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十五者,所觀人為惡友。
관찰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니 그 사람과 가까이 안하는 것이 좋다는 뜻입니다.
十六者,隨所聞非正教。
듣고 있는 가르침이 바른 가르침이 아닌 삿된 법이라는 뜻입니다.
十七者,所觀人有實德。十八者,所觀人無實德。
무실덕無實德과 유실덕有實德은 반대입니다. 實德은 수행력이 있어서 실제로 도덕적인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十九者,所觀義不錯謬。二十者,所觀義是錯謬。
경전에 한 단락을 보고 자신의 이해와 생각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맞는지 틀리는지를 지장보살게 물었을 때 윤상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려줍니다.
二十一者,有所誦不錯謬。二十二者,有所誦是錯謬。
자신이 독송한 경전이 상응하는지, 왜냐하면 현재 유통되는 경전이 많은 해석이 있기 때문에 지장보살에게 물으면
이 경전을 독송하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알려줍니다.
二十三者,所修行不錯謬。
염불하고 참선하고 관상하는 수행중에 자신이 하고 있는 수행이 잘못된 것이 아니니 계속 수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二十四者,所見聞是善相。二十五者,有所證為正實。
보거나 들은 경계가 좋은 서상이고 증득한 바가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二十六者,有所學是錯謬。
예를 들면 문수보살수행을 할 때에 어떤 때는 황색문수보살、백색문수보살、사자후문수보살、동자문수보살을 관상하는데
관상하는 상이 안맞다는 것입니다. 만약 약사수행을 할 때에 약사여래불을 남색의 몸으로 관상합니다.
남색은 청정을 의미하고 또한 좋은 상이리는 뜻입니다. 약사여래불을 관상할 때에 미간과 목、가슴의 세 곳으로부터
남색 빛이 나와서 자신의 미간과 목、가슴의 세 곳으로 들어온다고 관상합니다. 남색의 기가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들어오면 모든 털구멍으로부터 검은 기가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관상합니다. 매일 매일 이렇게 관상하면 검은 기가 엷은
붉은 색이나 붉은 색 또는 흰색으로 점점 변하다가 마지막으로는 남색으로 변합니다. 그것은 바로 업장이 소멸되어
약사여래불의 가피를 입은 것입니다. 아미타불수행을 할 때에도 아미타부처님의 세 곳에서 붉은 색 빛이 나와서
자신의 미간과 목、가슴의 세 곳으로 들어온다고 관상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들어오면 모든 털구멍으로부터
검은 기가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관상합니다. 후에 엷은 붉은 색이나 붉은 색 또는 흰색으로 점점 변하다가 마지막으로는
순수한 빨간색으로 변합니다. 이러한 관상이 맞는지 안맞는지 점찰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관상법을 수행하는 것이
여법하게 수행하면 약사여래불, 문수보살, 아미타불과 결함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수행하는 것이 틀리면
이 법을 수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二十七者,所見聞非善相。
보고 들은 것이 좋은 상이 아닌 거짓된 상이라는 것입니다.
二十八者,有所證非正法。二十九者,有所獲邪神持。三十者,所能說邪智辯。
“邪智辯”이란 바로 세지변총世智辯聰입니다. 진정한 지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윤상이 나타나면 자신이 말한 것이
진짜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三十一者,所玄知非人力。
“玄”이란 묘하고 불가사의하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불보살의 가피이거나
귀신의 외호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제불보살의 가피입니다.
三十二者,應先習觀智道。
수행을 할 때에 지장보살께서 마땅히 먼저 관상을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십니다. 관상으로부터 지혜가 나와서 비로소
보리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관상을 하는가 하면 관법으로 지혜를 수행하여 반야지를 닦고 반야지를 써서
공을 관하고 일체법이 무상함을 관상합니다. 어떤 것이 공의 진정한 뜻인가 하면 일체법이 무상하고 고정불변의 我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해야 지혜가 증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장보살께서 우리에게 마땅히 지혜를 관하는
수행을 하라고 알려주고 계십니다.
三十三者,應先習禪定道。
“習禪定”이란 두 다리만 가부좌하면 되는게 아닙니다. 선정을 익힐 때에 먼저 방편을 준비하고 몸을 다스리고 다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선정을 배우고 몸을 다스리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좌정하고 앉아서 몸을 좌우로 앞뒤로 움직여서 조절합니다.
몸이 적당히 좌정이 되어 편안하게 느껴지면 장애가 없습니다. 호흡을 골라서 거친 기를 천천히 미세해질 때까지 골라서
호흡이 있는 듯 없는 듯하면 된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마땅히 마음을 한 곳에 안주하여 혼침에 들거나
망상으로 산란하게하지 말고 무엇을 관상하던지 마음을 그 대상에 안주합니다. 예를 들면 화두를 참구하던지 염불을 하던지
마지막에는 能所(나와 대상)가 다 없어져서 점점 공력이 순수해지면 곧 선정에 들 수 있습니다. 선정을 닦을 때는
선지식의 지도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점찰을 해서 이 윤상을 얻으면 지장보살께서 선정을
닦아도 된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三十四者,觀所學無障礙。
여러분들이 이 곳에서 계율을 배우는데 이것이 자신의 수행에 도움이 되는지를 물어보면 윤상이 장애가 없고 매우
좋다고 알려줄 것입니다.
三十五者,觀所學是所宜。三十六者,觀所學非所宜。
여기서 수행하는 것이 상응하는지 아닌지, 만약 상응한다면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三十七者,觀所學是宿習。三十八者,觀所學非宿習。
“宿習”은 과거생에 배웠던 것이어서 한번 배우면 바로 몰입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과거생에 배웠던 것이 아니라면
배울 때에 생소하게 느껴지고 어려워서 쉽게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三十九者,觀所學善增長。
지금 배우는 것이 선근을 증장할 수 있습니다.
四十者,觀所學方便少。
지금 배우고 있는 수행방법이 선교방편이 아니고 잘못된 방법입니다. 선교방편이 아니면 수행에 쉽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계율을 배울 때는 반드시 지범개차持犯開遮를 잘 알아야 합니다.
四十一者,觀所學無進趣。
“無進趣”는 바로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배워도 전혀 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四十二者,所求果現未得。
구하는 과가 현재 얻을 수 없고 미래에도 얻을 수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 얻지못하면 마땅히 더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
만약 극락정토에 왕생을 구하고자 하는데 이 윤상을 얻는다면 왕생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열심히 염불정진을
해서 결정코 왕생을 하겠다는 신심을 내야 합니다.
四十三者,求出家當得去。
출가를 하고자 하면 장애없이 성공할 것입니다.
四十四者,求聞法得教示。
듣기를 구하는 법을 선지식을 만나 그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어떤 법을 배우려고 구하던지 이 윤상을
얻게 되면 지도해 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四十五者,求經卷得讀誦。
구하는 경전을 독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四十六者,觀所作是魔事。
하고 있는 일이 바른 일이 아니고 마구니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四十七者,觀所作事成就。四十八者,觀所作事不成。
구하는 일이 성취할 수 있는 지를 점찰한 것입니다.
四十九者,求大富財盈滿。
부자가 되고자 하는 데 이 윤상을 얻으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五十者,求官位當得獲。
관직을 구하면 이 윤상을 얻으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소원대로 점찰이 안나오면 지장보살 염불을 만 번하면
지장보살의 가피력으로 성취하도록 윤상이 바뀔 것입니다.
五十一者,求壽命得延年。
수명을 연장하기를 구하면 명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五十二者,求世仙當得獲。
신선이 되기를 구하면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五十三者,觀學問多所達。
학문을 배우면서 많이 묻고하면 통달할 수 있습니다.
五十四者,觀學問少所達。
그 학문을 관하여 통달할 수 있는 것이 매우 미미합니다.
五十五者,求師友得如意。
스승과 도반을 구하는 일이 뜻과 같이 될 것입니다.
五十六者,求弟子得如意。
제자를 구하는 일이 뜻과 같이 얻어질 것입니다.
五十七者,求父母得如意。
부모에게 구하는 일이 뜻과 같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출가하는 데에 장애를 하지 않고 부모님이 수행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五十八者,求男女得如意。
자녀를 구하는 일이 뜻과 같이 될 것입니다.
五十九者,求妻妾得如意。
현명한 부인를 구하는 일이 뜻과 같이 될 것입니다.
六十者,求同伴得如意。
함께 수행하고 공부할 동반이나 혹은 남녀배우자를 구하는 일이 뜻과 같이 될 것입니다.
六十一者,觀所慮得和合。
근심하는 일이 있어서 이 윤상을 던졌으면 근심힐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六十二者,所觀人心懷恚。
관찰하는 사람이 번뇌와 성내는 마음이 강하고 질투가 많으니 알았으면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六十三者,求無恨得歡喜。
원한이 없기를 바라는 일이 서로 환희하게 될 것입니다.
六十四者,求和合得如意。
동업을 하든지 혹은 도반과 함께 수행을 하든지 화합을 구하는 일이 뜻과 같이 될 것입니다.
六十五者,所觀人心歡喜。
관찰하는 사람이 마음이 좋고 항상 환희하게 될 것입니다.
六十六者,所思人得會見。
생각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六十七者,所思人不復會。
죽었거나 혹은 다른 사고가 생겨서 생각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六十八者,所請喚得來集。
손님을 청하든지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으면 그가 올 것입니다.
六十九者,所憎惡得離之。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의 일이 걱정할 것 없이 빨리 떠나갈 것입니다.
七十者,所愛敬得近之。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七十一者,觀欲聚得和集。七十二者,觀欲聚不和集。
모임을 한다든지 원하는 집회가 목적대로 잘되거나 반대의 상황이 될 거라는 내용입니다.
七十三者,所請喚不得來。七十四者,所期人必當至。
청하고자 하는 사람이 오지 않거나 혹은 바로 올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七十五者,所期人住不來。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다른 곳에 머물고 있어서 이 곳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七十六者,所觀人得安吉。七十七者,所觀人不安吉。
관찰하는 사람이 부모든지 형제자매든지 친구든지 간에 현재 평안하고 좋다거나 반대로 이 사람이 평안하지 않거나 나쁘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점찰 P150~
七十八者,所觀人已無身。
관찰하는 사람이 이미 죽어서 몸이 없다고 하는데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공성의 진리를 증득했거나
혹은 다른 곳에 가서 생을 받은 것입니다.
七十九者,所望見得覩之。八十者,所求覓得見之。
만나기를 희망하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물건이나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八十一者,求所聞得吉語。
법문을 해준다든지 법을 구하는 일이 이익이 되고 매우 길상합니다.
八十二者,所求見不如意。
구하는 일이나 보고자 하는 사람이 마음같이 않고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八十三者,觀所疑即為實。八十四者,觀所疑為不實。
의심하는 일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윤상에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八十五者,所觀人不和合。
앞에서 말한 화합과 반대입니다.
八十六者,求佛事當得獲。
불사를 벌이고자 하는 일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八十七者,求供具當得獲。
매우 곤궁한 사람이 부처님을 믿고 나서 불전에 공양구를 갖추고자 할 때에 지장보살께서는 매우 자비하셔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묻기만 하면 공양구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八十八者,求資生得如意。八十九者,求資生少得獲。
의식에 필요한 돈을 포함해서 일상용품등을 구함에 있어서 뜻과 같이 얻을 수 있거나 완전히 뜻과 같지는 않게 조금
얻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九十者,有所求皆當得。九十一者,有所求皆不得。九十二者,有所求少得獲。九十三者,有所求得如意。九十四者,有所求速當得。九十五者,有所求久當得。九十六者,有所求而損失。九十七者,有所求得吉利。九十八者,有所求而受苦。
수행상에 과를 증득하는 것을 구하든지 재물을 구하든지 무엇을 구하든지 간에 오직 발원을 하기만 하면 지장보살께서
완전히 얻을 수 있는지、성공하지 못하든지、일부분만 얻는지、뜻과 같이 되는지、그렇지 않은지、빨리 되는지、
오랜 시간이 걸려야 되는지、얻지 못하면서 손해만 되는지、얻어서 이익이 되는지、얻지만 고통을 받을 것인지 간에
만족한 대답을 주실 것입니다.
九十九者,觀所失求當得。一百者,觀所失永不得。一百一者,觀所失自還得。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 찾을 필요가 있는지 어떤 사람이 찾아서 가져다 줄 것인지를 윤상에서
대답해주고 있습니다.
一百二者,求離厄得脫難。
액난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一百三者,求離病得除愈。
병고를 여위고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一百四者,觀所去無障礙。一百五者,觀所去有障礙。
유학을 가려하든지 어느 곳에 참방을 하려든지 장애의 인연이 없으니 모두 가도 됩니다.
반대로 나오면 안됩니다.
一百六者,觀所住得安止。一百七者,觀所住不得安。
머무는 사찰이 마음이 편하고 몸이 편안하면 머물고 몸과 마음이 편안치 않으면 떠나냐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마음이 불안한 것이고, 둘째는 말썽을 부리니 호법신장님이 옮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호법신장님이 어떻게 옮기도록 하는 가하면 호법신이 옮기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마음이 머물기를 원하지 않고 누구를 보아도 마음에 안들고 오해만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호법신장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들어서 마음을 편치 않게 하여 떠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一百八者,所向處得安快。一百九者,所向處有厄難。一百一十者,所向處為魔網。
一百一十一者,所向處難開化。一百一十二者,所向處可開化。一百一十三者,所向處自獲利。
가고자 하는 곳이 편안하고 기쁠 것입니다. 곤란이 있고 길상하지 못합니다. 가는 곳이 마구니의 그물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가고자 하는 곳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혹은 가서 중생교화를 잘할 수 있습니다. 가는 곳에서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복을 얻고 지혜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一百一十四者,所遊路無惱害。一百一十五者,所遊路有惱害。
여행하고자 하는 길에서 위험이 없을 것입니다. 혹은 그 반대일 것입니다.
一百一十六者,君民惡饑饉起。一百一十七者,君民惡多疾疫。一百一十八者,君民好國豐樂。
一百一十九者,君無道國災亂。一百二十者,君修德災亂滅。一百二十一者,君行惡國將破。
一百二十二者,君修善國還立。
과거에는 한 나라의 주인을 군주라 하였습니다. 현재는 국가를 관리하는 사람을 영도자라고 칭합니다. 영도자와 국민들이 모두 악해서 기근이 들어서 식량이 없게 되고 국가에 질병과 전염병이 돌게 된 것입니다. 영도자와 국민들의 마음이 모두 착해서 천하가 태평하고 오곡이 풍성하고 방방곡곡이 태평성세가 된 것입니다. 국가의 정무를 주관하는 사람이 부도덕해서 백성을 사랑하지 못하고 나라 안에 재앙이 끊이지 않거나 그 반대인 것입니다. 악법을 시행해서 국가가 곧 멸망하게 되거나 반대로 국가의 기반이 튼튼해질 것입니다.
一百二十三者,觀所避得度難。一百二十四者,觀所避不脫難。
재난을 피할 수 있고 혹은 업력에 끌려서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업력이 있으면 인연을 만났을 때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아라한조차도 재앙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 당시에 유리왕이 석가족을 대량학살을 하려했는데 목련존자가 신통력으로 석가족의 오백명 남자아이들을 발우에 담아서 천상으로 보내서 천인들에게 공양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一百二十五者,所住處眾安隱。
머무는 곳이 대중이 평안하고 안정된 곳입니다.
一百二十六者,所住處有障難。
머무는 곳이 이미 길상하지 못하고 장애가 있는 곳입니다.
一百二十七者,所依聚眾不安,
대중이 모여있는 곳이 평안하지 못하고 길상하지 않습니다.
一百二十八者,閑靜處無諸難。
이곳은 수행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어서 어떤 나쁜 인연도 없습니다.
一百二十九者,觀怪異無損害,一百三十者,觀怪異有損害。
우리가 수행하는 곳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어떤 손해가 있을지를 점찰해보는 것입니다.
一百三十一者,觀怪異精進安。
수행하는 사람이 이상한 현상이 만났을 때 이러한 현상에 동요되지 말고 더 열심히 정진해야 그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전독송을 할 때에 다른 소리가 나서 어지럽게 하고 혹은 정상이 아닌 빛이 나서 경전의 글씨가 눈이 부셔서 보이지를 않게 한다든지 이러한 현상을 만나면 상관하지 말고 고요히 좌정하여 잠시 먼저 독송을 멈춥니다. 혹은 금강경의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을 독송하십시오.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독송하면 이러한 괴이한 현상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집착하지 말고 이상한 현상들을 보더라도 괴이하게 여기지 말고 그냥 지나치면 그 괴이한 현상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만약 그 현상을 쫓아가게 되면 갈수록 괴이해져서 수행도 할 수 없게 되고 이후에는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수행하다가 특이하고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면 동요되지 말고 열심히 수행정진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一百三十二者,觀所夢無損害。一百三十三者,觀所夢有所損。
一百三十四者,觀所夢精進安。一百三十五者,觀所夢為吉利。
어떤 사람들은 꿈에 매우 집착합니다. 점찰을 해보면 그 길흉과 손해되고 이익됨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꿈은 가짜입니다.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는 모두 꿈을 꾸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체 행동은 다 꿈입니다. 마땅히 이치적으로 그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괴이한 현상은 사실적인 현상이고 꿈을 꾸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입니다. 낮에 한 생각이 밤에 꿈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꿈이 많으면 마음이 매우 어지럽습니다. 마땅히 마음을 거둬들여 열심히 수행하면 괴이한 현상등 꿈의 경계가 바로 사라질 것입니다.
점찰 P160~
一百三十六者,觀障亂速得離。一百三十七者,觀障亂漸得離。一百三十八者,觀障亂不能離。
장애를 만나서 편치 않을 때에 이 윤상을 얻으면 지장보살께서 곧 벗어날 것이니 번뇌하지 말라고 알려주십니다. 혹은 잠시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혹은 장애가 항상 따라다녀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장애를 벗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요? 지장보살께서는 지장보살 명호를 모시면 차차 벗어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一百三十九者,觀障亂一心除。
마음을 집중해서 수행을 잘하면 장애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점찰선악업보경을 배우면 지장보살님께서 바깥경계에 끄달리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반조하여 일심으로 경계를 없애라고 일러주고 계십니다. 마음이 경계를 따라가면 모든 업장이 드러날 것입니다.
一百四十者,觀所難速得脫。一百四十一者,觀所難久得脫。一百四十二者,觀所難受衰惱。
一百四十三者,觀所難精進脫。一百四十四者,觀所難命當盡。
재난을 만난 것이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10년이나 몇 년 걸려야 벗어날 것입니다. 혹은 부딪친 재앙으로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밖에 만나게 된 악연을 반드시 용맹하게 수행정진해야 비로소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악연을 만나서 병이 들거나 생명이 위태롭거나 수명이 다했다고 윤상에 나올 때는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지장보살 명호를 외우거나 참선을 하면 과거생에 빚을 갚고 면할 수 있습니다. 혹은 내 생명으로 중생들을 대신해서 고통을 받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一百四十五者,觀所患大不調。一百四十六者,觀所患非人惱。一百四十七者,觀所患合非人。一百四十八者,觀所患可療治。一百四十九者,觀所患難療治。一百五十者,觀所患精進差。一百五十一者,觀所患久長苦。
所患(소환)이란 현재 앓고 있는 병을 말하는데 지수화풍 사대가 조화롭지 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지대가 지나치면 뼈에 관련된 병이 생기고 수대가 조화롭지 못하면 감기로 콧물이 나오고 화대가 조화롭지 못하면 열이 납니다. 종기가 난다던지 혹이 생깁니다. 풍대가 조화롭지 못하면 심각합니다. 중풍으로 쓰러지거나 미칩니다. 풍대가 심장을 공략하면 이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모두가 사대가 조화롭지 못해서 생기는 병입니다. 이것은 귀신의 장난으로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비인非人몸에 들어와서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생에 인연이 있어서 반드시 정진하여 그에게 회향을 해주어서 가피로 천도해주고 그를 위하여 참회를 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함께 지은 공업共業이 소멸됩니다. 현재 앓고 있는 병이 치료될 수 있습니다. 현재 앓고 있는 병이 치료되기 어려워서 수행정진을 해야만 병이 나을 것입니다. 이 병은 매우 어려운 병이어서 치료되기 쉽지 않아 오랫동안 고생할 것입니다.
一百五十二者,觀所患自當差。一百五十三者,所向醫堪能治。一百五十四者,觀所療是對治。
一百五十五者,所服藥當得力。一百五十六者,觀所患得除愈。一百五十七者,所向醫不能治。
一百五十八者,觀所療非對治。一百五十九者,所服藥不得力。一百六十者,觀所患命當盡。
관한 병은 저절로 치유될 것입니다. 의사에게 보이면 치료될 수 있습니다. 관하는 치료법으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먹고 있는 약으로 병이 빨리 회복될 것입니다. 관하는 병이 없어지고 치유될 것입니다. 현재 주치의는 병을 치료할 수 없으니 다른 의사를 찾아야 합니다. 관하고 있는 치료방법은 잘못된 것입니다. 복용하고 있는 약이 효과가 없습니다. 관하는 병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 148에서 160까지는 모두 병이 나을지 낫지 않을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병에 대한 대답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우리의 병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병이 나는 것은 과거에 지은 살생의 업으로 불러들인 업보입니다. 만약 약을 먹어도 듣지 않고 혹은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리는 등 병이 낫지 않거나 병으로 죽게 되는 상황에서는 바로 지장보살 염불을 많이 해서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구해서 병마를 없애고 조속히 병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정해진 수명이 다했다면 일찍 가서 미련없이 다른 몸으로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극락세계에 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부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현재의 이 육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출가자들은 마땅히 죽음에 대해서 기쁘고 유쾌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이 생에 업장을 갚고나서 다음 생으로 바꾸는 것이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걸림이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해탈자재인 것입니다.
이상 160종류는 모두 금생에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상황입니다. 다음에 열 가지는 바로 과거에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一百六十一者,從地獄道中來。一百六十二者,從畜生道中來。一百六十三者,從餓鬼道中來。
삼악도에서 왔습니다. 방금 악도에서 왔기 때문에 신심이 부족하고 의혹을 일으켜서 진보하기가 어렵습니다.
一百六十四者,從阿修羅道中來。一百六十五者,從人道中而來。一百六十六者,從天道中而來。
아수라계, 인간계, 천상계의 선도善道에서 왔습니다.
一百六十七者,從在家中而來。一百六十八者,從出家中而來。
전생에 재가자였고, 출가한 비구, 비구니였습니다.
一百六十九者,曾值佛供養來。一百七十者,曾親供養賢聖來。一百七十一者,曾得聞深法來。
일찍이 부처님을 만나서 공양을 하였고 일찍이 나한이나 보살을 만나서 공양을 하였고 과거에 심오한 대승의 요의법을 배웠었습니다. 과거에 무엇을 했었는지 이생에는 어떻게 변했는지 미래에 과보는 어떤지 일정하지 않습니다. 운명은 수시로 바뀝니다. 좋았다가 나빠지고 나쁘다가도 좋아집니다. 중생이 성불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도리입니다. 과거는 정할 수 있지만 미래는 정할 수가 없습니다. 아래에 열 여덟가지는 바로 미래를 말하는 것입니다.
一百七十二者,捨身已[11]入地獄。一百七十三者,捨身已作畜生。
一百七十四者,捨身已作餓鬼。
지은 악이 너무 커서 명을 마친 후에 삼악도에 떨어질 것입니다.
一百七十五者,捨身已作阿修羅。
아수라는 천상의 복은 있지만 천인들의 덕은 없습니다. 아수라에는 사람과 흡사하게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상상승의 아수라는 천인들과 자주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惡한 아수라가 있고 鬼神아수라가 있고 축생 아수라가 있습니다.
수라修羅는 모든 세계에 두루 퍼져있습니다.여기서는 천상에 아수라를 말합니다.
一百七十六者,捨身已生人道。
이 생에 몸을 버리더라도 사람 몸을 잃지 않고 다시 인간세상에 태어날 것입니다.
一百七十七者,捨身已為人王。
지장경에서 말하기를 지장경을 한 번만 읽어도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대집십륜경大集十輪經에서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왕이 되어 업을 짓지 않으면 계속해서 상승하여 삼보를 외호할 것입니다.
一百七十八者,捨身已生天道。一百七十九者,捨身已為天王。
이 생에 선업을 지어서 명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났거나 사천왕이나 도리천왕, 야마천왕등으로태어났을 것입니다.
一百八十者,捨身已聞深法。
이 생에 몸을 버리더라도 내생에 심오한 법문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극락세계에 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지구에 태어나면 됩니다. 오대산에는 매일 일만명의 보살이 설법하고 계시고 대라정 주위를 돌면서 청량함을
즐기고 계십니다. 업장이 녹고 공덕이 성숙해지면 일만보살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합류해서 함께 대라정을 돌면서
청량함을 즐길 수 있습니다. 비록 업장이 아직 있다하더라도 마땅히 이같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一百八十一者,捨身已得出家。
내생에는 반드시 출가할 것입니다.
一百八十二者,捨身已值聖僧。
내생에는 성인을 만나서 제도를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금생에 선근복덕을 쌓아서 과위를
증득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一百八十三者,捨身已生兜率天。
내생에는 욕계欲界의 네 번째 하늘인 도솔천에 날 것입니다.
一百八十四者,捨身已生淨佛國。
“淨佛國(청정불국토)”은 극락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께서 설한 淨佛國은 많이 있습니다. 화엄경계에서
“하나의 淨佛國에 시방에 미진수의 청정한 불국토가 들어가고 시방에 미진수의 청정한 불국토에 하나의 淨佛國이
들어가서 서로 간에 원융무애합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一百八十五者,捨身已尋見佛。
내생에는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세계에 나서 아미타불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깊은 신심으로 현재 세계에 상주하고
계신 35불과 자신의 보신가운데 있는 무량한 부처님들을 명을 마치면 곧 자성불이 시방제불과 둘이 아니고
차별이 없다는 것을 볼 것입니다.
一百八十六者,捨身已住下乘。一百八十七者,捨身已住中乘。一百八十八者,捨身已獲果證。
이 업보의 몸을 버리고 나면 초과初果, 이과二果, 삼과三果, 사과四果 내지는 초지初地이상의 보살이 될 것입니다.
一百八十九者,捨身已住上乘。
이 업보의 몸을 버리고 나면대승의 불과의 지위를 증득할 것입니다.
현재의 160개, 과거의 11개, 미래의 18개를 더하면 모두 189종류가 됩니다.
「善男子!是名一百八十九種善惡果報差別之相。如此占法,隨心所觀主念之事,若數合與意相當者,無有乖錯。若其所擲所合之數,與心所觀主念之事不相當者,謂不至心,名為虛謬。其有三擲而皆無所現者,此人則名已得無所得也。
바로 마음 속에 구하고자 하는 일이 189종류의 숫자가운데에서 나오면 본인이 구하는 것과 상응하면 그것을
“主念之事(주로 생각하는 일)”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병에 대해서 말할 때에 나을 수 있는지 없는지 명이 다했는지에
대해서 여실하게 대답해줍니다. 상황을 바꾸고 싶으면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보살님께 수명을 연장해주기를 기도합니다.
만약 생각하는 일과 던져서 나온 숫자가 서로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음이 지극하지 못해서입니다.
지극한 마음이 되지 못하면 점찰하는 과정에서 나온 윤상이 진실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세 번을 던졌는데 다
공백으로 한 개의 숫자도 나오지 않았다면 바로 공성의 지혜인 무소유지無所有智를 얻은 것입니다.
첫댓글 스님 감사합니다.
((()))
이제 안올라 오나요?
윤상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