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전라도 고창보리밭을 보러 일부러 가려 하는가?
난 우리집 거실, 화분위에 있는 보리밭평원을 매일 보고 있다.
특히 호박순의 더듬이는 자라는 것이 옆에서 보일 지경이다.
보리밭하면 우리세대 어렸을 때 많이 듣던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가 떠오르고,
그러면 문둥이가, 문둥이하면 천형의 시인 한하운이 떠오르고,
한하운하면 교과서에도 실려있었던 '보리피리'와 '파랑새'가 또 떠오른다.
한세인 한하운 그가 누구인가?
함흥갑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1939년 일본세이케이고교 2년 수료, 중국 북경대 축산학과를 졸업하였지만,
17세에 나병 진단을 받았고, 대학시절 S여대생과의 첫사랑은 나병으로 인한 S여대생의 자살로 막을 내렸으며,
그 후 팔도유랑하면서 술집, 다방, 음식점 입구에서 손님에게 시를 써주고 손을 내밀었다. 시를 파는 명동거지였다.
경기도 부평에서는 25년을 살았는데.40세 때 완치된 그는 한평생 나병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데
글로써 뿐만 아니라 신명보육원회장으로서 한센병환자들의 자급자족에도 커다란 힘을 기울였다.
1975년 인천에서 간경화로 영면하고, 김포장릉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는 한하운(본명 한태영),
소록도에 있는 '보리피리'시비는 서있는 시비가 아니고 시비로서는 한국유일의 누워있는 와비이다.
그를 통해 생명존중과 인간사랑의 미학을 느끼고, 그를 탐구하면서 그의 시 '삶'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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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거실 화분에 펼쳐져 있는 푸른 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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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화분위에서 자라고 있는 호박. 매일같이 새롭게 달라지는 더듬이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FDBB425C7B4E0C29)
거실에는 한 겨울에도 항상 환한 봄빛을 느낀다.
삶
지나가버린 것은
모두가 다 아름다웠다.
여기 있는 것 남은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다.
옛날에 서서
우러러보던 하늘은 아직도 푸르기만 하다마는.
이 꽃과 같던 삶과
꽃일 수 없는 삶과의
갈등 사잇길에 쩔룩거리며 섰다.
잠깐이라도 이 낯선 집
추녀밑에 서서 우는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다.
1919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한하운 시인은 건강하고, 부유하고, 사랑받는 아들이었다. 풍족한 집안의 장남이었고 체격도 좋고 머리도 비상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받으며 공부도 많이 했다. 그렇게 전도양양했던 청년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에는 치료법도 없고 걸린 것을 숨겨야 했던 그런 병이었다.
이후로 시인은 계속해서 앓기만 하는 삶을 살았다. 집안의 재산을 잃었고 가족과 이별했다. 학엄과 직장을 잃었고 미래를 잃었다.
손가락을 잃었고 발가락을 잃었고 눈썹을 잃었다. 그렇게 하나씩 떼어 보내고나서 이 시인은 많이도 슬펐겠다. 하지만 그가 쓴 시는 퍽 담담하다. 담담할 뿐만 아니라 명품급 시가 많다. .
한때 명동에서는 시를 파는 거지로 불렸고 남들 눈 피해가며 밤에만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누군가는 멸시의 눈초리도 보냈을 것이다. '삶'을 보면 그런 처량한 신세가 등장한다. 부호의 장남이었던 한 사나이가 남의 집 추녀밑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장면이다.
하늘이며 세상은 변한 것이 없는데 오직 자신만이 변하고 버려진 느낌을 받아 사나이의 마음은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나이는 지나가 버린 것이 모두 다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삶을 소풍으로 인식한 천상병시인과 맥을 같이 하는 느낌이다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이 사나이의 내면은 거칠어지지않고 여전히, 혹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렇게 시인은 홀로 절망과 병을 이겨냈다. 정말 강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