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페의 글은
2012.10월 20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배 장로님과 스튜디오에서 운동을 하면서
십자가 복음의 정수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배 장로님은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매일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아령 운동을 하고 탁구를 치면서 건강관리를 하였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등 안마를 비롯해서 경혈 지압까지 받았는데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횡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90년대 초에 "십자가를 아십니까"라는 이근호 목사의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은 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대한 이해를 날마다 새롭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라면.....
누구든 1분을 넘기지 못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1분 이상 할 말이 없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우상화된 십자가에 대한 탄식......
못 박힌 십자가 복음에 대한 탄식.....
이데올로기화된 십자가 복음에 대한 탄식.....
악세사리로 부적이 된 십자가에 대한 탄식.....
무속과 기복 신앙의 영매가 된 십자가에 탄식만 늘어 놓아도 세월을 수 놓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복음의 정수에 대한 이야기는
오고 오는 세월 동안 말하여도 끝이없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말씀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히3:1)
십자가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는
바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의 결정체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예수의 고난과 부활, 그 진리의 복음과 구원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업습니다.
오늘날 교회 강단에 십자가 복음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그 말 자체로도 신앙의 타락과 변질을 충분히 대변합니다.
얼마전 CTS 방송에서 강의하시는 범어교회 장영일 목사님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 없는 기독교와 회개하지 않는 회개 기도를 지적하였습니다.
회개의 삶은 따르지 않고 소리만 지르는 회개기도는
하나님이 없는 기독교의 모습이라며 강도높은 성토를 하였습니다.
요즘 십자 복음에 깨어 있는 설교를 듣기 힘든데
가뭄의 단비였습니다.
복음의 상실이라는 암모스 교회를 직시하며 못 박힌 십자가 복음의 탄식으로
십자가 복음의 정수를 간단히 피력하고자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이야기는
눈물 바다를 이루어야됨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악세사리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처형 현장은
하늘이 빛을 잃는 참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사실 그대로 보도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하나님 나라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과 유대 군중들과 관원과 로마 군인들과 심지에 함께 못박힌 강도들에게까지
조롱과 멸시와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함께 눈물로 고통을 나눈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요한과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뿐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다수의 대중보다 소수의 은혜 입은 사람들이 믿음의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맬 깁슨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란 영화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유대인이라고 시사하여
유대인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자신이라고 하여 위기를 넘겼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날 순진무구한 성도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며
가슴치며 통곡하는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증오하고 모욕하여 십자가의 저주를 쏟아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저주한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사악하고 악랄한 악인,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을 만인류의 구세주가 되는 화목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일에
아름다운 헌신을 한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십자가의 저주 아래 있는 자들로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해골의 곶에 거하는 무저갱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스 기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못 박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강력히 경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또 다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못 박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소망에서 영원히 끊어지는 무저갱의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참 성도의 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들과
또 다시 예수님의 복음을 못 박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합니다.
좌로 치우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에 들어가게 되고
우로 치우치면 또다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못 박는 무리들에 속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의 길은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행전은 증거하기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한 한 후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사도들이 선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온 집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성령의 증거, 이것이 성령의 구원 역사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하신 복음의 증거는
곧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의 증거로 받은 믿음의 성도들은
교회가 되었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사도 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구원 역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성령의 증거로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그 자체였습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역사요,
사도들과 바울의 복음 전파로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려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하신 성령의 복음 증거를
믿음으로 받은 사랑의 공동체가 교회요, 예수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받은 성도를
죄에게 종노릇하는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의로 살아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러므로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는
통전적인 십자가 복음 신앙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율법을 소멸하고 믿는 성도에게 평안을 주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으로 확신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세상과 율법의 속박에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의로 자유하는 믿는 성도들에게 평안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세상과 율법의 지배를 받는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영생의 삶이요,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십자가 복음의 강조는
정통교회와 천주교, 유사 기독교와 사이비, 그리고 신천지를 비롯하여 각종 이단들도
기본 베이스로 신앙의 틀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혼합주의를 근본 노선으로 하는 종교 다원주의는
각자 전통의 역사를 고수하면서 성공과 번영을 위한 기복과 무속의 인본주의 신앙으로
종교적 이상을 소통의 미학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배타성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니의 뜻을 신본주의 이상으로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종교간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실존 신앙을 종교적 이상으로 추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철저한 배타성을 가진 신본주의적 본질을 가졌지만
십자가 복음을 실존 신앙으로 못을 박으면 신인협력의 인본주의 구원관으로
불교적인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됩니다.
불교의 스님과 천주교의 수녀가 잘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실존신앙으로 종교적 수행이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십자가 복음의 신본주의 본질도
기복과 무속의 인본주의 탈을 쓰게되면 실존 신앙의 영성을 종교적 광신으로 추구하게 됩니다.
결국 타 종교의 고유한 배타적 정체성은
인본주의 실존 신앙으로 통합되어 종교 다원주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니다.
오늘날 유사 기독교의 창궐은
종교 다원주의를 종교적 유혹의 욕심으로 받아들인 정통 기독교 신앙의 타락입니다.
우상화된 십자가 복음과 실존 신앙으로 채색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병들고 타락하고 오염된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마져
실존 신앙의 인본주의 옷으로 채색한 사탄의 유혹은 종말론적인 신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열정은 십자가의 복음을 또 다시 못 박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은 위험한 진실이 되어
믿음의 진정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현장의 소리와 삶으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포스트 모던 시대를 넘어 울트로 모던 시대의 기독교는
실존 신앙의 성장 촉진제를 맞아 유사 기독교의 모습으로
바알 신앙의 맘모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살아 역사하는 참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십자가 복음은 사라지고
우상화된 십자가를 이데올로기로 섬기는 실존 신앙의 열정으로 광신의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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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베스트 찬양을 검색하다가
연관어로 어느 목사의 공개적인 회개의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단과 사이비라는 비난을 받았던 본질적인 문제를
진리의 복음과 구원의 말씀으로 복음적인 성칠을 하지 않은 것을 실망스럽게 보았습니다.
오늘날 이단과 사이비로 한국 교회는 강단의 설교를 통하여
보수적 신비주의 혼합과 인본주의 무속신앙을 비롯하여 범신론적 신앙에 대한
본질적인 복음의 성찰이 없습니다.
예전에 동료와 십자가 복음에 대한 말씀을 나누다가
자신은 설교를 하면서도 종교 사기꾼이라는 생각을 덜쳐버릴 수가 없다고 하여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지 않고
사역의 보상을 세속적으로 누리는 모습은 종말론적인 신앙의 현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