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닷새째가 되는 날은 길고도 지루한 하루가 될 거라고 했다. 미국 황량한 서남부 대륙의 진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사막 중에서 가장 건조하기도 가장 더운 곳이기도 하다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있는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으로 들어가는 때문이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사막 지대를 가로질러 달려가야 한다.
사막 서부의 베이커스필드라는 인구 40만의 도시를 출발하여 본격적으로 사막이 시작되는 소도시 바스토우(Barstow)를 거쳐 사막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캘리포니아 주계를 벗어나서 사막의 북부 지역에 자리한 그랜드 캐년의 관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네바다주의 라프린(Laughlin)이라는 곳까지 가는 것이 오늘의 여정. 내일부터 사흘동안 이어지는 그랜드 캐년은 물론 모뉴먼트 밸리, 앤티로프 캐년, 자이언 캐년 등 미 서부의 4대 캐년과 라스베가스 여행지 모두가 오늘 우리가 향하는 모하비 사막 안에 있다는 것은 오늘의 여정을 설명 받는 과정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미국의 내륙 쪽을 여행하면서는 미 중부의 넓고도 거대한 평원에 자리한 것과도 같은 미국 시골의 평범한 마을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내가 익히 여행을 했던 뉴욕, 마이애미, 로스앤젤레스 따위와 같은 대도시가 아닌 다수 미국의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의 모습을 겉으로나마 살펴보았으면 했다. 현대적인 문명 도시가 아닌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보통의 지방 마을을 보고 싶었다. 내가 그런 기대아닌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내가 오래전 재미있게 읽었던 미국의 어느 대중 소설 속의 인상 깊은 한 소절의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미국 중부 캔자스주의 한 작은 타운에서 살고 있는 소설의 여주인공 메리는 그녀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고장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타운은 그곳 사람들과 땅으로부터 솟아나는 그만의 독특한 리듬, 삶의 맥박을 지니고 있어. 우리 미국은 몇몇의 대도시가 아닌 수천, 수만의 작은 마을과 타운으로 이루어진 나라야.(시드니 셀던 지음《신들의 풍차, 1987》중에서)" 메리가 말하는 획일화된 도시가 아닌 미국 본연의 마을이나 타운, 보통의 시골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전원의 평화로움과 고요, 광활함과 여유로움이 있는 곳,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웃이 있고 공동체 문화가 있는 곳이 아닐까 싶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 위의 여러 마을과 타운, 샌프란시스코로부터 메르세드를 거쳐 마리포사로 가는 길, 그리고 오늘 베이커스필드로부터 모하비 사막의 한중간 라플린까지 오는 길 주변에는 멀리에 드문드문 집들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한적한 마을과 타운 자리해 있었다. 외딸지만 사막의 곳곳에 사람들이 포근한 흔적을 만들고 있었고 황량한 사막에 빛을 만들고 있었다. 그랬다. 그 하나하나의 집들 수많은 마을과 타운이 미국이라는 넓고 큰 하나의 나라를 만들고 있었다.
한편 보다 특징적인 것은 주택의 형태가 거의 모두가 단독이라는 점이었다. 다른 도시나 타운에서도 아파트 형태의 주거 시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독 주택 위주의 삶을 사는만큼 그것은 보다 가족 중심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했다. 단독 주택에서 애초부터 홀로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보통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단독 주택을 건사하며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가족 중심으로 살아간다. 미국도 도시화와 산업화의 영향 등으로 대도시에서의 삶은 역시 사람의 홍수 속이지만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고 서로가 낯설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젊은 연령의 나라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랜드 캐년을 향해 가는 길, Barstow라는 소도시의 어느 길목에 [Oggi's SPORTS BREWHOUSE PIZZA]라는 생소한 타이틀의 간판이 걸린 건물을 보았다. 모뉴먼트 밸리로 가는 Flagstaff라는 작은 도시의 한 길가에는 [Sports Bar & Grill]이라는 역시 낯설은 간판의 건물이 있었다.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 모여서 더불어 함께 즐기는 장소라고 한다. 음료를 마시고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꿩도 먹고 알도 먹는 미국 특유의 생활 문화가 아닐까? 이러한 여가 활용의 방식이야말로 미국적 개인주의와 실용주의가 결합된 느슨하나마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미국 지역 공동체 문화의 한 모습이 아닐까도 여겨졌다.
바스토우 타운까지 3시간쯤의 버스 여행 후 점심은 숯불 직화 버거로 이름이 나있다는 Habit Burger Grill이란 곳에서 들었다. 그리고 타운 외곽의 대형 창고형 아울렛에서 모처럼의 여유로운 쇼핑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커다란 쇼핑센터에서는 미국적 특징의 수베니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앞으로의 주요 여행지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에서 그 곳의 특색을 담은 무엇인가를 한 두 점 사는 게 좋을 듯싶었다.
바스토우에서 모하비 사막의 한중간에 있는 라플린까지의 바깥 모습은 한결같이 황량한 풍경이다. 가을로 접어든 모래 벌판은 황갈색 내지는 회갈색의 단조로운 색감, 힘겹게 솟아나 자랐던 풀싹은 모두가 사위어 있다. 그래도 초록 Green Desert라고 말하는 모하비 사막에 겨울비가 내리면 봄 한때 녹색 푸르름이 살아난다고 한다. 특히 이 사막의 특징적인 식물인 회전초 텀블위드(Tumbleweed)가 동그란 공 모양으로 자란다. 그리고 갈색 솜사탕 모습으로 마른 뒤 바람이 불면 그 풀은 이리저리 공처럼 굴러다닌다. 사막의 곳곳에서 동그란 이 풀의 무리진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네바다주의 남쪽 끝 지역의 라플린으로 오면서는 캘리코(Calico)라는 이름의 과거 금광이 있던 곳을 들렀다. 서부 골드 러시의 시기에 전성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곳은 채광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서 유령의 도시가 되었던 곳이다. 하치만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한 한 독지가가 옛 모습으로 그곳을 재건한 덕분에 지금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활기를 찾고 있었다. 또 어느만큼을 지나서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병영이 있던 곳의 휴게소를 들리기도 했다. 툭트인 모래 벌판 한 곳인 그곳이 당시의 병영이었던 곳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극한의 환경으로 이름이 나있는 모하비 사막에는 지금도 곳곳에 군사 훈련 캠프가 상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모하비 사막을 깊숙히 들어와서 오늘의 여장을 푼 곳은 인구가 채 1만 명이 넘지 않는 라플린이라는 타운, 라스베가스를 찾기 전 카지노에서 몸을 푸는 곳이라고 한다. 버스가 콜로라도강이 경계를 이루는 아리조나주의 불헤드 시티(Bullhead City)를 다리로 건너 네바다주의 라프린으로 들어서면서는 고층 빌딩에 현란한 네온사인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카지노 도박이 합법화된 네바다주에 속하는 라프린은 카지노 영업이 성업 중인 호텔과 리조트 타운이다. 콜로라도강의 아래쪽 강변에 자리를 잡은 라프린은 이곳으로부터 북동쪽으로 향하는 그랜드 캐년 여행을 시작해서 모뉴먼트 밸리, 앤티로프 캐년, 호스슈벤드, 자이언 캐년 등 서부 지역의 여러 명소를 로아볼 수 있는 캐년 여행의 관문이기도 하다.
맛있는 저녁도 여유있게 즐겼으니 호텔 로비층을 가득 채운 카지노 기계를 돌리고 당겨서 이번 여행의 본전이나 한번 뽑아볼까나? (2023.10.22)
첫댓글 다 같은 지역을 지났어도 사람에 따라 이렇게 멋진 기행문이 되는군요. 오래 전에 방문했지만 글 속에 등장하는 지명을 통해 옛날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후덥지근한 모하비 사막, 잊혀버리기 쉬운 곳을 관광지로 개발한 캘리고 광산, 에어컨 없이는 잠시도 견디기 어려웠던 라플란 숙소, 그리고 양주동이 만연체 감탄사로 기술했던 그랜드캐년을 간다는 기대감으로 하루밤을 설쳤던 "아! 옛날이여"로 돌아가보는시간을 가졌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나는 페키지 여행으로 미 서부여행이
라 기행문을 보니 생소하지는 않아요
단 내가 여행시 death valley는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안내의 설명만 들었
내요
미국이 부러운것은 아파트가 아닌
개인단독주택이라 집집마다 가구
당 파란잔디가 있다는것이지요
미국과 유럽은 정말 축복받은 땅입니다. 저는 지금 유럽에 와서 그걸 절실히 느낍니다. 펑퍼짐한 대지와 옥토 그리고 적당한 기후 등... 왜 유럽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 그답이 바로 나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인들은 유럽과 비슷한 지형과 환경 적응이 엄청 빨랐을 겁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70%가 산악지형이고 농지는 불과 몇 %에 지나지 않으니 정말 어렵게 살았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새삼 느끼지요.
광활한 대지의 풍광을 담은 사진만 봐도 가슴이 뛰고, 영문 모를 설레임이 있습니다.
이제 곧 내가 가본 적이 있는 네바다주의 사막과 캐년, 라스베거스 등이 나오겠군요.
잘 봤습니다.
좋은 여행. 재미 있는 여행기 ㅡ 잘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