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28~30,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복음성가 334장(우물가의 여인처럼), 421장(탕자처럼 방황할 때도)
오늘 성 금요일 아침 기도회에 함께 묵상할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지 여섯 시간째쯤 되는 오후 3시에 십자가 위에서 하신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자신이 목마르다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인간에게 갈망이 있다는 것과 그것들을 채워주는 일이 복되다는 점을 가르쳐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주 무대인 팔레스타인의 기후에서는 사람이 경험하는 목마름이 매우 참기 힘이 드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이스마엘을 데리고 집에서 쫓겨갈 때 물 한 가죽부대를 어깨에 매고 떠났으나 떨어졌을 때 그들은 목이 말라 죽을 처지였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은 하늘에서 하갈을 불러서 눈을 열어 샘을 보게 하시고 그들로 물을 마시고 소생하게 해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출애굽한 백성들도 광야에서 목 마를 때마다 격렬하게 불평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맛사의 물을 바꾸어 달디 단 물로 바꾸어주시고, 반석에서 넘치는 생수를 솟아나게 하사 그들로 마시게 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곤 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로뎀 나무 아래서 지쳐서 쓰러졌을 때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물과 떡을 두 번이나 먹여 그를 다시 소생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이 땅에 오셔서 일하실 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육체적 필요에 대하여 늘 민감히 반응하셨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을 보면 늘 불쌍히 여기고 치유해주셨습니다. 벳새다 광야에서는 모인 사람들이 배가 고픈 채로 돌아가는 길에 기진할까 봐 염려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먹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이렇게 십자가 위에서 자신은 이렇게 극한에 도달하는 끔찍한 목마름을 우리를 대신하여 경험하시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것은 고작 시디 신 포도주, 시디 신 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구주는 우리의 모든 목마름을 넉넉히 공급해주시고자 자기 자신은 그토록 비천한 대접으로 만족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주님은 그 때 자기에게 신 포도주를 건넨 사람을 기억해주실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7:48에 보면,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목이 마르다고 말씀하실 때에 그 군병 중에 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기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했는데, 그 남은 사람들은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군병들은 예수님을 여전히 조롱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 한 사람만은 동정심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자 곧장 달려가서 예수님의 목마름을 해소하려고 애쓴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이 내민 동정의 손길을 받아주시어 그 해융에 머금은 신 포도주 물이라도 달게 마셔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 말씀 중에 한 예로 들었던 선한 행위들을 예로 들 때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6,37)
고 하였습니다. 또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
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은 참으로 고귀한 일입니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간절한 육체적, 정신적 필요들을 볼 때 그것들을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적지만 그 필요를 채워주려고 수고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 그러한 이들을 축복하시고 그 상을 반드시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인간의 모든 목마름을 채우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지 육체적 목마름, 육체적 필요만을 느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육체적 필요 외에도 정신적 필요, 영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들은 사실 세상 것 가지고는 절대 채워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로마 군병이 갖다 준 시디 신 포도주 물처럼 잠깐 혀를 속이거나 쓰게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참된 생수는 세상에 없습니다. 재물이나 정욕이나 사람들의 칭찬이나 세상 즐거움 가지고는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을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마치 바다를 향하여 강물이 흘러가고 또 흘러가되 바다를 채울 수 없듯이,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 목마름은 온 세상 전부를 가지고 채우려 해도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 목마름을 채우기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수가 성 여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도차 아침 나절 내내 걸어서 정오쯤에 사마리아의 수가 성 입구에 도착하셨습니다. 그 마을 입구에 있는 우물에 도착하자 예수님은 지치고 목이 말라 그대로 주저 앉으셨습니다. 마침 그 여인이 물을 길러 동네에서 나왔을 때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내게 물을 좀 달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목이 많이 탔기 때문입니다. 그 때 여인은 예수님에게 불친절하게 왜 물을 내게 달라고 하냐고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주었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0,13,14)
그렇습니다. 그 날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면서 추구해왔던 인생의 행복이 남편을 더 바꾼다고 얻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공허함과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채워주시는 은혜의 생수로 심령이 채워질 때 목마름이 완전히 해갈됨을 깨달았고 그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담대히 전도함으로써 그 심령의 목마름이 채워진 것을 증명해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막절 명절 끝날에 성전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신 말씀도 같은 뜻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한복음 7:37~39)
그렇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인간의 그 깊은 갈망을 채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참된 만족을 누립니다. 곧 그리스도와 복음과 성령의 충만함을 추구한 자만이 그 심령의 목마름이 채워지고 그 사람을 통하여 참 생명의 생수가 강물처럼 차고 넘쳐 흘러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그 은혜의 강물에 휩쓸려 행복과 기쁨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저 천국도 바로 그렇게 주님과 성령의 충만을 통하여 참된 만족이 흘러 넘치게 되는 곳입니다. 계시록 7:15 이하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요한계시록 7:15~17)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인간은 평생 목마른 존재입니다. 그의 육체도, 그의 정신과 마음도, 그의 영혼도 늘 목마름에 시달리곤 합니다. 꼭 필요한 것일진대, 이러한 목마름을 주님은 늘 채워주시곤 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간절한 육체적 필요를 가진 자들에게 우리도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돕는 자가 됩시다. 냉수 한 그릇도 헛되지 않고 상을 주신다고 주님께서 약속해주심을 믿고 기꺼이 손을 내미는 자가 됩시다. 그 외에도 인간에게는 수많은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러한 목마름은 세상 것으로는 채워질 수 없습니다. 솔로몬 왕의 경우에도 그가 가진 그 많은 재물과 권력과 수많은 여인과 처첩과 노래하는 남녀와 수많은 종들과 과수원들과 크고 화려한 수많은 건축 사업으로도 채워질 수 없었습니다. 오직 참된 만족은 하나님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의 목마름을 아십니다. 그가 친히 극한의 목마름을 경험하신 것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는 참된 영생수의 근원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를 진실하게 삶의 주인으로 모셔들입시다. 또 그가 보내신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늘 기도하십시다. 오직 주의 성령께서만이 우리 속에 마르지 않는 생수를 공급해주십니다. 차고 넘치는 생수의 강물을 우리 심령과 삶에 부어주실 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목마르다”라고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속에 담긴 의미를 오늘 아침 묵상했습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극한으로 경험하신 주님, 목마를 때마다 주께 나아가오니 우리에게 생수를 부어 주옵소서. 이 아침 우리에게 생수를 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