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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삽교석조보살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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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나이든 노인들과 함께하는 등산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경을 써야한다. 산이 너무 높거나 가파르지 않아야 하고 넘어져 다칠 염려가 있으니 바윗길이 아닌 흙길 등산로로 오를 수 있는 산이어야 한다.
그래서 노인 회원들이 대부분인 이 산악회의 총무는 그런 산을 찾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 어렵게 그런 산을 찾아 산행을 정한 후에는 꼭 미리 예비 답사를 하여 코스까지 확인을 하는 것도 노인들을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난 18일 우리 산악회가 찾은 산이 충남 예산에 있는 수암산이었다.
우리들 일행 45명이 탄 버스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곧장 예산 삽교읍 신기리에 있는 수암산으로 향했다. 수암산 아래 세심천 온천 뒷마당에 차를 세우고 등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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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위에서 바라본 예산 들녘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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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산은 한눈에 보아도 나지막한 뒷동산 같은 모습이다. 총무일행이 미리 답사했던 곳이어서 길도 좋고 경사도 완만하여 노인들도 모두 오르겠다고 한다. 일행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노인은 87세, 50대는 4~5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60대 후반에서 70대 노인들이다.
잠깐 오르니 ‘예산삽교보살입상’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방향은 오른 편 개울 건너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나 혼자 빨리 그것을 보고오기로 작정했다. 단숨에 뛰어 개울을 건너 100여개의 계단을 오르니 눈앞에 커다란 석불 한 개가 서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이 보살입상은 보물 508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2개의 돌을 잇대어서 조각한 석불로 머리에는 두건 같은 관(冠)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관 위에 6각으로 된 갓 모양의 넙적한 돌을 올려놓았는데 폭이 좁은 어깨의 윤곽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넓어지지만 양감이 전혀 없이 밋밋한 것이 마치 돌기둥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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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교 덕산온천지구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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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왼손은 몸에 붙이고 아래쪽으로 내리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돌 지팡이 같은 것을 잡고 있는데 양 발 사이까지 길게 내려오고 있었다. 불상은 상당히 키가 큰 거구이면서도 융기와 양감이 거의 없는 돌기둥 형태여서 멋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불상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간략한 신체표현 방법 등이 충남 논산시 은진면에 있는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이나 부여 임천의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과 유사한 양식을 가진 충남지방의 지방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고려시대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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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짜기 건너 높은 산이 가야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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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보살입상을 둘러보고 일행들을 뒤쫓아 부지런히 올라갔다. 뛰다시피 올라가노라니 금방 등과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길은 여전히 완만한 경사에 부드러운 흙길이다. 작은 능선에 올라서니 아직은 서늘한 봄바람에 금방 땀이 식는다.
능선은 높지 않은 곳인데도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좋았다. 골짜기 좁은 평야를 건너 산골짜기에서부터 바라보이는 삽교천의 흐름이 평화롭고 정답다.
그런데 등산객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별로 볼품없는 산이어서 우리일행들만 오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옷차림으로 봐서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산책삼아 올라온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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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암산과 가야산 사이 골짜기의 윤봉길의사 생가와 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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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어디서 오셨습니까?” 40대 중반 쯤의 남녀 5명이 일행인 듯 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희들이요? 서산에서 왔습니다.” “아니, 이렇게 작고 낮은 산을 멀리서도 찾아옵니까?” “그런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는데요?” 그들이 오히려 내게 되묻는다. 내 복장이나 모습도 그들이 보기에 인근 주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네? 저는 서울에서 왔습니다만...” “그것 보세요. 선생님은 우리보다 더 멀리서 오셨네요, 뭘. 산이 꼭 크고 높아야 명산인가요? 이 산 나지막해도 좋은 산입니다. 이 산이 저쪽 용봉산으로 이어져 있는데 용봉산도 높지는 않지만 기암괴석도 많고 정말 멋진 산입니다.” 그러자 일행으로 보이는 여성이 강조하듯 덧붙여 말한다. “낮고 아담해도 명산이구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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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로운 소나무 능선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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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그들은 웃고 떠들며 앞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들 뒤로도 등산객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대전에서 온 사람들은 이 산이 좋아 벌써 10여 차례나 다녀갔다고 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 걸음이 느린 우리일행 노인들 몇이 쉬고 있었다.
“힘드세요?” “작년 다르고 올 다르구먼, 산은 참 좋은 산인데.” 나이가 많은 노인들에게는 만만한 산이 없는지도 모른다. 노인들을 모시고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능선 길옆으로는 수십 년씩 자란 소나무들의 청청한 모습이 보기 좋다. 겨우내 모친 추위와 강풍을 견디고 꿋꿋이 서 있는 소나무 길은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솔 향이다. 이제 머지않아 송순이 돋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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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뒷산인 덕숭산도 지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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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수암산 정상이래야 해발 260m, 정상에는 아담한 정자 하나가 서 있고 돌무더기 두 개가 등산로 입구를 대문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앞쪽으로는 용봉산이 이어지고 정자 기둥 사이로 예산의 넓고 풍요로운 들판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며 불어오는 봄바람에 말라가고 있었다.
들판 가운데 섬처럼 둥그렇게 자리 잡은 작은 동산은 짙은 소나무 숲의 음영에 젖어 있고 밭에서 쟁기질 하는 농부의 이랴! 어허! 밭갈이 소를 모는 소리가 가까이 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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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부근의 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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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근처에서 가장 높은 해발 678m의 가야산이 건너다보이는 골짜기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그 왼편으로는 수덕사의 뒷산인 덕숭산(495m)이 불쑥 솟아 있는데 가야산과 덕숭산, 그리고 용봉산을 아우르는 지역이 덕산도립공원이라고 한다.
“저쪽으로 곧장 가시면 용봉산이 정말 아름답고 멋있다는데 가실 수 있겠습니까?” 노인들에게 물으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우리들은 안돼요. 젊은 사람들이나 다녀와요.” 용봉산은 다음기회로 미루고 산을 내려가기로 하였다.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노인들 몇은 힘이 부쳐 중간에서 쉬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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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부근의 청청한 소나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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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우리들이 내려가는 길에도 마주 올라오는 사람들은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크지도 않고 높거나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산은 아니었지만 넓은 들 한 편에 서 있어 전망이 좋은 수암산은 의외로 찾는 사람들이 많은 산이었다.
산 아래로 내려와 점심으로 먹은 갈낙전골의 맛도 그만이었다. 양도 푸짐하고 맛도 좋아서 모두들 좋아한다. 노인들도 모두 편안한 얼굴들이다. 다음코스는 노인들이 좋아하는 온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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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암산 정상 입구의 대문 문설주 같은 돌무더기 두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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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 나지막하지만 전망 좋은 산, 그리고 맛있고 푸짐한 음식과 산행 후에 온천까지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코스인가. 먼 곳에서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또 하나의 이유가 거기 있는 것 같았다.
“낮고 아담해도 명산이구만유.” 등산길에서 만난 여성등산객의 말이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