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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
제4편 도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Ⅰ. 서 론
지나의 도교는 신선사상이며, 지나는 우리나라와 인접하여 있다. 지나문화의 시조인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족이었고, 이들은 우리민족의 시조인 한인과 한웅보다 후대의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지나에서 언제 누가 신선사상을 최초로 설파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우리나라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 전 한웅천황이 삼신산(三神山)인 백두산에서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에 의하여 신선도를 설파했다는 전거가 있고 근거가 있다.
이를 생각하면 지나 도교의 원류는 당연히 우리민족의 신선도라 추정할 수 있고,
지나에서 도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함은 역수입된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도교가 지나에서 발원되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본 문제는 도교가 우리나라에 역수입된 이래 처음 제기되는 문제이며,
전체 민족의 대다수가 외래종교 신자이다. 외래종교 신자는 민족적 주체의식이 없거나 박약하다.
곧 도교신자는 지나를 정신적 고향, 신앙의 성지, 아버지 나라라고 믿는다.
자기를 낳고 키워준 제 나라는 그 다음으로 친다.
그럼으로써 좀더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지나의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가 지상선경이라 동경하던 삼신산(三神山)이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의 문제, 언제 누구에 의하여 신선도의 경전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는가의 문제를 하나씩 밝혀 나가기로 한다. 끝으로 도교와 신선도의 동일성을 밝힌다.
Ⅱ. 도교인의 이상향인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1. 도교인의 이상향은 삼신산이다
지나의 도교인들이 지상선경이라 동경하였던 삼신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그 어의로 말하면 삼신산이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니고, 삼신을 상징하는 산을 의미하며,
또한 세개의 神山 곧 仙山을 의미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삼신산이란 어떤 산인가?
사마천의 {사기}를 근거로 삼신산의 성립요건을 인출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삼신산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닌다.
둘째, 삼신산은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이다.
셋째, 삼신산은 발해 내지 바다에 있다.
넷째, 삼신산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다섯째, 삼신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여섯째, 삼신산의 초목과 금수는 모두 희다.
일곱째, 삼신산에는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
이상의 성립요건을 충족시키면 그 산이 곧 삼신산이라 할 수 있고,
신선사상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산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2.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삼신산은 발해에 있다고 하였다. 발해는 고대 우리나라이다.
그러므로 삼신산은 우선 우리나라에 있다고 추정할 수 있고, 백두산에서 한웅천황이
신선도를 베풀었으므로 백두산이 우선 삼신산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삼신산의 성립요건에 백두산의 특수성을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삼신산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닌다. 그런데 백두산도 삼신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삼신이란 천일․지일․인일 또는 한인․한웅․한검을 의미하는데, 본서 제1편에서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의 원리에 의하여 신선도가 백두산에서 베풀어졌음을 밝혔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웅천황이 아버지 한인의 뜻에 따라 풍백․우사․운사 등 신관과
3천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백두산정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신시를 베풀었고,
한웅의 아들 한검(단군왕검)이 조선국을 세운 곳이다.
이래서 백두산은 삼신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이 한 가지 사실만을 보더라도 백두산이 삼신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삼신산은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이다. 그런데 백두산에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다.
{부도지}에 '불함삼역(不咸三域)'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함은 백두산을 의미하며,
'그 주(註)에 삼역'은 봉래․방장․영주를 지칭한다고 하였다.
즉 백두산 내에 삼신산이 있다는 것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도 백두산을 논하는 대목에서 봉래는 쑥이 무성하게 자라는 묵정밭
곧 천왕이 내려온 곳이며, 방장은 사방이 일장(一丈)인 각(閣) 즉 소도(蘇塗)가 있는 곳이며,
영주는 못이 섬을 둘러싼 모양 즉 천지(天池)가 나오는 곳이며,
이것들을 말하여 삼신산이라 한다고 하였다. 즉 백두산에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삼신산이란 봉래․방장․영주를 의미하고,
봉래는 금강산, 방장은 지리산, 영주는 한라산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하여 어떻게 해명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인간의 신체에 상단전(上丹田)․중단전(中丹田)․하단전(下丹田)이 있다.
그와 같이 땅에도 상단전․중단전․하단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은 상단전, 한반도는 중단전, 각 지방은 하단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은 중단전에 있는 삼신산이라 할 수 있고,
각 지방에도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금강산․지리산․한라산도 이들 하나 하나는 선산(仙山)이지만
이를 총칭해서 말하면 삼신산인 것이다.
셋째, 삼신산은 바다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바다는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한다.
바다는 태평양이나 대서양 같은 실제의 짠물바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종교의 발상지, 종교의 요람, 선인주처(仙人住處), 수미세계(須彌世界)를 의미하고,
그곳은 과거의 우리나라 고조선을 지칭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2부 제1편 Ⅵ에서 상설하였다.
넷째, 삼신산에 신선이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에 신선이 살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태백산(백두산)은 한웅천황이 풍백․우사․운사 등 선인(仙人)을 거느리고
내려온 곳이며, 단군왕검 선인이 조선국을 세운 곳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도 "백두거악(白頭巨嶽)은 대황중(大荒中)에 튼튼히 자리잡았으니
배달천국의 진산(鎭山)이요, 신인의 오르내림은 실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백두산은 신선이 살았던 곳이다.
다섯째, 삼신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그런데 백두산도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불함산(백두산)의 영주 대여산 자삭방에서 인삼이 나는데,
이는 4삭(2080년)을 경과해야 꽃을 피는 삼근영초로서 이를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한다고 하였다.
실제에 있어서도 백두산에는 산삼씨만 따먹고 사는 인삼조(人蔘鳥)가 있을 정도로
백두산은 산삼의 고장으로서 산삼을 백두산 삼보(三寶) 중의 하나로 친다.
여섯째, 삼신산의 초목과 금수가 희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의 초목과 금수도 희다.
{역대소사}에 의하면 백두산(태백산)의 초목과 금수가 모두 희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 북쪽 기슭에는 백양목이 많고, 흰사슴․흰돼지․흰매들이 지금에도 서식하고 있다.
실재 백두산을 등반하여 보아도 백두산 북쪽의 나무들은 거의 백양목이고
소나무 중에 백송(白松)도 있다.
가을이 되어 산상에서 북쪽의 산밑을 내려다보면 하얗게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그곳을 흐르는 강물 이름을 이도백하(二道白河)․두도백하(頭道白河) 등 백하(白河)라 부른다.
일곱째, 삼신산에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너무나 과장된 나머지 비합리적이고 실제 있을 수 없는 문제이므로 논외로 한다.
이상 외에 백두산이 삼신산임을 반영하는 특수성을 지적하면
본서 제1편 Ⅳ의 4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백두산이 3층으로 되어있다는 점,
삼강일지(三江一池)라는 점, 천지의 좌우에 금선(金線)․옥장(玉漿)․은류(隱流) 등
세 개의 온천과 천지의 동북쪽에 인만(麟巒)․봉만(鳳巒)․벽라(碧螺) 등
세 개의 특수한 산이 있다는 점 등 거의가 3수로 된 점 등이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은 삼신산의 성립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삼신사상을 반영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고,
백두산에서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의 천도에 의하여 신선도가 설해졌다.
그러므로 백두산을 삼신산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태백일사} 신신본기에도 "옛날의 삼신산은 곧 태백산이다. 또한 지금의 백두산이다"라고 하였다.
그밖에도 백두산에 대한 기록이라면 거의 백두산이 곧 삼신산임을 밝히고 있다.
이래서 삼신산이 백두산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는 증거가 제1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Ⅲ. 우리민족의 신선도서가 지나로 전승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선도서(神仙道書)가 지나로 전승되었다는 문제이다.
{도서전집;道書全集}․{음부경;陰符經}․{삼황옥결;三皇玉訣} 서문에 의하면
황제가 신선도서(神仙道書)인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대산(大山)의 천단(天壇)에서 받아갔다고 했다.
삼황내문은 모두 천상의 전서(篆書)로 쓰여졌고 삼백여자가 세권으로 나뉘어졌는데,
상권은 천황(天皇), 중권은 지황(地皇), 하권은 인황(人皇)이었다(이래서 이를 삼황내문이라 한다).
상권에는 신선과 우주론에 대한 것이 담겨 있고,
중권에는 부국안민(富國安民)의 법이 담겨 있으며,
하권에는 강병전승(强兵戰勝)의 술과 천지(天地)․음양(陰陽)․만물의 조화원리가 담겨 있으니,
치국(治國)․제가(齊家)․지신(持身)․불사(不死)의 도(道)는 모두 이 경에서 나온 것이다고 했다.
그런데 삼황내문을 황제가 대산의 천단에서 지나로 가져갔다고 했다.
그러면 대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대산은 큰산․일산(一山)․환산(桓山)․백산(白山)․백두산과 그 뜻이 통한다.
또 이 산이 있는 곳이 청주(靑州)라 하였는데 청주는 청구(靑邱)이다.
이렇게 본다면 황제가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을 가져간 대산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의 출처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 추정된다는 것이다.
서기 4세기 경 중국의 갈홍(葛洪)이 지은 {포박자;抱朴子} 내편에
"옛적에 황제(黃帝)가 있었는데 동으로 청구(靑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뵈옵고, 삼황내문을 받아갔다"하고,
{태백일사}에도 이르기를
"삼황내문을 자부선생(紫府先生)이 황제 헌원(黃帝 軒轅)에게 주어서
마음을 밝히고 의(義)로 돌아가게 하였다. 선생은 항상 삼청궁(三淸宮)에 계시니 그 궁은
청구국(靑邱國) 대풍산(大風山)의 양지(陽地)에 있다.
헌후(헌원)가 친히 치우(蚩尤)를 조현(朝見)하려고 가는 길에 명화(名華)가 있어 승문(承聞)한 것이다.
경전은 신시(神市)의 녹도(鹿圖)로서 그것을 기록하였다. 나누어 삼편(三篇)이 되었다.
후인(後人)이 추연(推演)하고 가주(加註)하여 별도로 신선음부지설(神仙陰符之說)이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보면 지나인의 기록인 {포박자}의 기록과 우리민족의 기록인 {태백일사}의 기록이
서로 일치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하등의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청구(靑邱)는 어디를 가리키고,
풍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이며, 자부선생은 누구냐 하는 문제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청구는 지금의 만주 요령지방으로서 고대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지역이었다.
풍산(風山)은 백두산의 이칭이라고 안호상은 말한다.
자부선생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의하면 발귀리(發貴理)의 후예이며,
발귀리는 백두산 신시시대(神市時代)의 선인이다.
이렇게 볼 때, 황제가 삼황내문을 가져갔다는 대산과 풍산은 백두산이라 단정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황제에 의하여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교를 황로교(黃老敎)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밖에 신선도서로서 {주역(周易)} 등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서 제3편에서 밝혔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는 증거가
제2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Ⅳ. 도교의 시조는 동이족이다
1. 광성자와 동이족
황제가 공동산(空同山)에서 도를 물었다는 광성자(廣成子)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흔히 광성자를 가공인물 또는 신화적인 인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광성자가 실존인물이라 할 경우, 그는 지나 도교의 창시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시조라 할 수 있고, 지나의 도교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광성자는 실재인물이라 할 경우, 지나족인가 아니면 동이족인가의 문제이다.
위의 기록에는 광성자가 어느 민족인지에 대하여 일체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광성자가 수도하였다는 공동산이 큰 근거가 된다.
즉 공동산이 지나지역에 있는가, 아니면 동이지역에 있는가에 따라
광성자의 민족적 소속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능화는 이수광(李?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과 진자앙(陳子昻)의 시(詩)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공동산(空同山)이 계구(?丘)에 있다 하였는데, 계구가 역시 청구에 있고 요동에 가깝다.
요동은 예로부터 선적(仙跡)이 많은 곳이다" 라고 하였다.
즉 광성자가 수도하던 공동산이 요동에 가까운 곳, 청구에 있다는 것이다.
청구는 우리민족의 고토이다. 그러면 공동산은 고대 우리민족의 지역 내에 있는 산으로서
광성자는 당연히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라 추정할 수 있다.
지나의 신화에 나오는 반고를 비롯해서 지나문화를 개척한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족인데
광성자만이 지나족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광성자는 지나족이라 절대 볼 수 없고, 동이족이라 강력히 추정된다.
광성자가 동이족이라 할 경우 지나 도교의 시원은 당연히 동이족에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근세조선 시대에 쓴 조여적의 {청학집}에 의하면
"한인진인(桓因眞人)은 명유(明由)에게서 수업하였고, 명유는 광성자에게서 수업하였는데
광성자는 상고의 선인(仙人)이다"하여
광성자는 한인보다 지위도 높고 선대의 인물로 취급되고 있다.
앞의 기록에 의하면 황제가 광성자에게 도를 물었다 하였고, 황제는 치우에게 조현하였다
하였으므로 광성자는 황제나 치우보다 선배라 하더라도 이들 세 사람은 동시대의 인물이다.
치우는 배달국의 제14세 자오지천황으로서 한웅보다 1000여년 이후의 인물이며,
한인보다 4300여년 이후의 인물이다.
따라서 광성자가 한인보다 선배라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를 생각하면 {청학집}의 기록은 지나를 상국으로 받드는 근세조선 시대의 기록으로서
그 시대의 영향에 의하여 쓰여진 곡필이라 할 수 밖에 없고, 진실성이 결여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 노자와 동이족
도교에 있어서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황제는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을 직접 지나로 수입한 인물이고,
노자(老子)는 {도덕경}을 저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황제는 동이족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밝혔다.
문제는 노자가 어느 민족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노자는 주(周)왕실 주사직(柱史職)을 지냈다.
그리고 노자의 후손은 지나에 있어도, 노자의 선조는 지나에 없다.
또한 노자(老子)를 노담(老聃) 또는 이이(李耳)라 하는데
성씨가 노(老)인지 이(李)인지, 아니면 그밖에 다른 성씨인지 하는 것도 확실치 않다.
그런데 {태백일사}에 의하면 노자 이이(李耳)는 그의 성(姓)이 한(韓)씨요, 동이족이다.
즉 "계미(B.C.518)에 노인(魯人) 공구(孔丘)가 주(周)에 가서 노자(老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이의 아버지는 그 성(姓)이 한(韓)이고 이름은 건(乾)이며,
그 선조는 풍인(風人)인데 서쪽으로 관문(關門)을 나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아유타에 이르러
그 백성을 교화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노자의 성은 원래 한(韓)씨로서 동이족이며,
'이이(李耳)'의 '이(李)'는 '목(木)의 자(子)' 즉 동방의 아들이란 뜻이고,
노자(老子)는 늙은 학자라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Ⅴ. 도교와 신선도의 동일성
지나 도교의 원류가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면
그 기본사상이나 숭배의 대상 및 전문용어 등에 있어서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하여야 한다.
이하에서 그 유사성을 몇 가지 지적코자 한다.
1. 기본사상의 동일성
첫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하나님(옥황상제)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신선도는 천일(한늘님)․지일(한울님)․인일(한얼님)의 삼신일체인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도교 역시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 즉 천보군(天寶君)․신보군(神寶君)․
영보군(靈寶君)의 삼존신일체(三尊神一體)인 옥황상제(원시천존)를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옥황상제(玉皇上帝)는 곧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는 신선도의 삼신하나님과 그대로 일치한다.
부전자승격(父傳子承格)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하나'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신선도에서는 {천부경}에 "하나에서 비롯하나 하나의 비롯은 없으니,
하나를 나누면 셋이 되어도 근본은 다함이 없느니라"하여 '하나(一)'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도교에서도 {도덕경} 제42장에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하여 만물이 생성소멸하는 근본원인을 도(道)와 하나(一)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39장에는 "한늘은 하나(一)를 얻어서 맑아지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편안하여지며,
신(神)은 하나를 얻어서 영묘하여지며,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서 가득차게 되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태어나게 되며, 임금은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다스린다.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하나인 것이다" 하여
도교는 도(道)와 마찬가지로 하나(一)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이와 같이 신선도와 도교는 '하나'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셋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만물동근 내지 만물일체사상이다.
신선도에서는 만유의 근본을 '하나'로 보는가 하면, '하나'는 한알→하날의 전음으로서
그 원의는 숫자적 의미의 '하나' 외에 한늘의 영기(생명 에너지)를 의미하는데,
{태백일사}에 "하나의 기(一氣)가 능히 움직여 조․교․치(造․敎․治) 삼화(三化)의 신(神)이 된다" 하여
만유의 근본을 일기(一氣)로 본다.
즉 만유의 근본이 "하나 즉 기(氣)"로서 신선도는 만물동근사상이다.
또한 신선도는 천일․지일․인일의 일체사상으로서 만물일체사상이다.
도교의 경전인 {장자}에도 "사람의 생(生)은 기(氣)의 모임이니, 기가 모이면 생(生)이 되고,
흩어지면 사(死)가 된다. 이와 같이 생사는 같은 무리이니 내 또한 괴로워할 것이 무엇이리요,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니라"하여 만유의 근본을 기로 보고 만유를 평등하게 보고 있다.
넷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순환론이다.
{천부경}에 "만가지가 가고 만가지가 돌아온다(萬往萬來)"하였고,
{참전계경} 제91사(조)에 "순환이라 함은 형상있는 한늘의 윤회이니,
형상 있는 한늘은 윤회에 일정한 도수가 있어서 조금도 어김이 없느니라"하여
순환론을 말하고 있는가 하면,
제95사에는 "무극이라 함은 돌아서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원기이니 만약에 잠시라도
그침이 있으면 천리가 멸하느니라. 사람이 신의를 기름도 저 무극의 원기와 같으니
털끝만치라도 그침이 용납되면 인도(人道)는 폐하느니라"하여
사람의 도리에도 순환론이 적용됨을 말하고 있다. 즉 신선도는 순환론이다.
{도덕경} 제25장을 보면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도(道)라 이름지었고,
억지로 그것을 대(大)라 부르기로 하였다. 대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여 간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멀리 극도에 이른다. 멀리 극도에 다다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하였고,
제16장에도 "마음을 극도로 허하게 하고 독실히 고요함을 지키면 만물이 아울러 생겨나고
그것들이 그 근원으로 돌아감을 본다. 만물이란 번성하고 번성하면 제 각기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
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도교 역시 순환론이다.
다섯째, 신선도와 도교는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본서 제1편에서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원리에서 음양오행사상이 발원됨을 밝혔다.
또한 제3편에서 음양오행사상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음을 밝혔다.
그런데 도교는 불로장수를 목적으로 함으로써 연단술(煉丹術)과 양생술(養生術)을 닦게 되고,
연단술과 양생술에서는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원리로 한다.
이와 같이 도교 역시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이 역시 부전자승격(父傳子承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교도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이에 대하여 신선도를 모르는 유교학자들은 도교가 유교사상을 수용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고,
도교학자들은 유교가 도교사상을 수용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신선도와 유교, 신선도와 도교는 부자관계격(父子關係格)이며,
유교와 도교는 동복형제격(同腹兄弟格)으로 서로 같은 사상을 동시에 지니게 마련이다.
그래서 도교와 유교는 신선도의 음양오행사상을 지니게 된다.
여섯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조화사상이다.
신선도는 삼극일체(三極一體) 사상으로서 개전일체(個全一體)․선악일체(善惡一體)․
유무불이(有無不二)의 양극일체 내지 조화사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제1편에서 상설하였다.
도교 역시 {도덕경} 제37장을 보면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 말이
도의 양극일체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제41장에서는 "도에 밝은 것은 어두운 듯이 보이고 도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나는 듯이
보이며,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듯이 보이고, 훌륭한 덕은 속된 듯이 보인다. 크게 결백한 것은
욕된 듯이 보이고, 광대한 덕은 부족한 듯이 보이며, 튼튼한 덕은 간사한 듯이 보인다.
바탕이 참된 것은 더렵혀진 듯이 보이고, 크게 모난 것은 모퉁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하고,
제45장에서도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이 보이고, 크게 교묘한 것은 졸열한 듯이 보이고,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말을 더듬는 듯이 보인다"고 하여 도교 역시 양극일체 내지 조화사상이다.
2. 전문용어의 동일성
신선도와 도교는 그 전문용어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하다.
신선도에서는 삼수(三數)가 가장 기본수여서 삼수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
예컨대, 삼일신고(三一神誥)․삼화경(三化經)․삼극일체(三極一體)․삼신일체(三神一體)․삼교일체(三敎一體)․
삼륜(三倫)․삼진(三眞)․삼방(三房)․삼관(三關)․삼문(三門)․삼도(三途)․삼강(三綱)․삼덕(三德)․
천부삼인(天符三印)․삼천도(三千徒) 등이다.
도교에도 삼수로 된 용어가 많다. 이는 부전자승(父傳子承)하는 격이다.
예컨대, 삼존신(三尊神)․삼황(三皇)․삼황내문(三皇內文)․삼원(三元)․삼계(三界)․삼청(三淸)․삼기(三氣)․
삼군(三君)․삼통(三洞)․삼태성(三台星)․삼천공(三千功)․삼화(三華)․삼목(三木)․삼요(三要) 등
삼수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
Ⅵ.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요약 정리하면
1) 우리나라에는 한웅천황이 신선도를 창설했다는 기록이 있다.
2) 지나 사회에는 지나족이 도교를 창설했다는 기록이 없다.
3) 도교인들의 이상향인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4) 우리나라의 신선도서인 {주역}과 {삼황내문}이 지나로 전승되었다.
5) 지나 도교의 시조인 광성자는 동이족이라 추정되었고, 황제와 노자는 동이족이었다.
6) 도교와 신선도는 그 기본사상에 있어서 서로 동일하였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지나의 도교는 지나족에 의하여 종교화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상적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이며, 그 유파라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도교는 원래 외래종교가 아니라 역수입된 고유종교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도교 신자는 외래종교 신자가 아니라 고유종교 신자라는 것이다.
곧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종교를 신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도교신자는 한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한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강화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국도교가 지나에서 발생한 외래종교라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 처음 전래될 때는 우리민족을 위해 전래됐다.
그래서 그 도관이 한국땅에 한국사람의 재력과 노력에 의해 세워졌다.
그 소유권과 운영권이 지나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에 있다.
그런데 한국도교의 도관에 누구를 모시어 누가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가?
도교가 우리민족을 위해 전래됐다면 우리민족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을 모시고
절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국도교의 도관(道觀)에 자연신인 옥황상제(玉皇上帝)와 문창제군(文昌帝君)과
북두진군(北斗眞君) 외에 태상노군(太上老君)에 도덕경을 저술한 주(周)나라의 노자(老子는
실은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를 믿지 않은 한 지나족인 것이다), 무재신(武財神)에
촉한(蜀漢)의 무장 관우(武將 關羽), 문재신(文財神)에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충신 비간(比干),
오현재신(五顯財神)에도 역시 은나라 주왕의 신하 조현단(趙玄壇)을 중심으로 한 다섯 신하,
당(唐)나라의 선인(仙人) 여조(呂祖), 복건성(福建省) 보전현(?田縣) 임씨(林氏)의 딸 마조(復祖),
곤륜산(崑崙山)의 서왕모(西王母), 지나의 오악(五岳) 중의 하나인 태산(泰山)을 신격화시킨
동악대제(東岳大帝) 등 지나의 민족신들에게 한국사람이 절을 하고 공양한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유컨대,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면서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서는 돌아보지도 않고,
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만을 모시고 섬기는 격이 아닌가?
그러한 종교의식으로 어떻게 민족적 주체의식이 확립되고 강화될 수 있겠는가?
또한 윤리도덕은 건전할 수 있겠는가? 깊이 반성할 문제인 것이다.
또한 한국도교의 도관에 나가면 무엇을 가르치는가?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과 아울러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도 가르치는가?
아니면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는가?
곧 한국의 도관에 나가면 한국사람에게 도덕경․남화경․황정경․참동계 등
지나족의 도장경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한민족의 경전을 가르치지 않고,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이다.
곧 교육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교육대상과 불일치되고 있다.
비유컨대, 고가(高價)의 양약(良藥)이라 하더라도 그 약이 병의 증상이나 원인과 맞지 않는 격이다.
곧 잘못된 처방과 투약으로 병을 치유하자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도교의 신앙과 교육에 있어서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
곧 주인은 손님이 되고, 손님은 주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나도교의 신앙과 교육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첫째, 지나를 신앙의 조국 또는 성지로, 지나족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 우러르고,
제 나라와 제 민족을 그 다음으로 보게 되며, 나아가서 무시하게 된다는 것.
둘째, 그럼으로써 민족적 긍지와 주체의식이 해이되고, 애국심과 애족심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
셋째, 애국심과 애족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윤리도덕을 가르쳐도 그 공효(功效)가 없게 된다는 것.
넷째, 사회는 결국 타락되고 이기주의 사회가 된다는 것.
다섯째, 궁극에 가서는 국가와 민족보다도 나 개인의 신앙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실례를 들면, 고구려는 그 말엽 도교가 극성하게 되었을 때,
도교국가인 당나라 군대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도교신자인 고구려 백성들은 거기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고구려는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나라에게 망하게 되었다.
그와 같이 신앙에 빠지면 이기주의자가 되어
국가와 민족보다도 일신의 영화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한국 도교인들은 역사적 경험을 거울삼아 깊이 반성하고 뉘우쳐야 할 것이다.
<빙혼>
도교 대신에 기독교를 삽입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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