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베트남 전쟁(Vietnam War, 1955∼1975)
![](https://t1.daumcdn.net/cfile/cafe/214FEA4C5455F14E02)
베이커 작전을 기록한 미육군의 기록물. 보병 25사단 3대대 소속의 미군병사가 사살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전투원의 입에 ‘스페이드 에이스’ 트럼프 카드를 집어넣은 장면이 담겨 있어 문제가 되었다.
미라이 학살의 희생자
퐁니·퐁넛 학살에 희생된 어린이
주베트남 미군 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는 베트남 전쟁에서 수색 섬멸 작전을 기반으로한 소모전을 기본 전략으로 세웠다. 이를 위해 농촌 지역의 주민들은 전략촌으로 소개되었고, 전략촌 이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은 사실상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전투원으로 간주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조사나 재판 없이 혐의를 받았다는 것 만으로 사살되었다. 미국 중앙정보부는 피닉스 전략을 통해 1968년부터 1971년 중반까지 2만 7천여명을 체포하여 2만여명을 처형하였다. 바던 오즈번은 다낭 시민의 2%를 베트콩 용의자로 색출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이를 고발하였다. 1971년 열린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오즈번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리드 : 공산주의자로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구금한 후 심문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오즈번: 심문과정에서 살아남은 구금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 죽었습니다.
리드: 심의나 재판 절차 없이 전원이 죽었단 말인가요?
오즈번: 베트콩에 협조했다는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전원이 처형되었습니다.
이 청문회에서 미국 중앙정보부의 작전 책임자 콜린은 “나는 누구 한 사람도 억울하게 처형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피닉스 전략의 목적이나 효과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증언하였다. 콜린은 2년 후 미국 중앙정보부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동안 미군과 한국군은 민간인 학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미라이 학살, 하미 마을 학살 사건, 퐁니·퐁넛 양민 학살 사건, 빈호아 학살 등이 알려져 있으며 이 외에도 작전지역 내에서 수많은 학살이 있었다.
미라이 학살
미라이 학살은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미라이에서 발생한 미군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대량 학살이다. 347명에서 504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는 모두 비무장 민간인이었으며 상당수는 여성과 아동이었다. 더욱이 몇몇 희생자는 성폭행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시체 중 일부는 절단된 채 발견되었다. 이 사건에는 미군 26명이 가담하였으나 입대한 지 4개월 2주밖에 되지 않은 윌리엄 켈리 중위만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퐁니·퐁넛 학살
퐁니·퐁넛 양민 학살 사건은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 성 디엔반 현 퐁니, 퐁넛 마을 주민들이 대한민국 해병대의 청룡 부대에 의해 학살당하여 70여 명(69∼79명 추정)이 죽은 전쟁범죄이다. 이 사건은 2000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가 진상조사를 벌이면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었다.
퐁니·퐁넛 학살 사건은 전략촌 지역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이었기 때문에 베트남 내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미군 역시 진상 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였지만 한국군 측은 학살이 없었다고 부인하였다. 또한 정부와는 달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표하였고 이에 대하여 나중에도 문제가 몇번 더 대두되기도 하였다.
1979년 11월 우드스탁 공연에서 노래하는 컨트리 조 앤드 더 피쉬 “그리고 자, 하나 둘 셋, 뭘 위해 싸우나? 나에게 묻지마, 내가 그 망할 걸 준 게 아냐. 다음 정거장은 베트남이라네” — 더 “피쉬” 치어/아이-필-라이크-아임-픽신-투-다이 래그의 가사 중에서
베트남 전쟁은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 게임,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수 없이 많이 다루어졌다. 또한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과 미국의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양 쪽 모두 반전 음악이 제작되었고 반공 또는 친공 음악도 만들어졌다.
밴드 《컨트리 조 앤드 더 피쉬》는 1965년〈더 “피쉬” 치어/아이-필-라이크-아임-픽신-투-다이 래그〉(The "Fish" Cheer/I-Feel-Like-I'm-Fixin'-To-Die Rag)를 발표하였다. 이 노래는 미국 내 반전시위를 통해 널리 퍼졌다. 베트남의 작곡가 찐꼼선(Trịnh Công Sơn)은 1965년 중국의 천년 지배, 프랑스의 백년 지배를 지나 이제 같은 동포가 서로 총을 맞대고 싸우는 상황을 비판한 《어머니가 전하는 이야기》 (Gia tài của mẹ)를 발표하였다.
1969년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평화에게 기회를 줘요》(Give Peace a Chance)를 발표하였다.
1969년 지미 헨드릭스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The Star-Spangled Banner를 연주해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를 표시하였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황석영은 대한민국의 베트남 참전을 반성적으로 성찰한 소설《무기의 그늘》을 발표하였다.
클로드 미셀 숀버그가 작곡하고, 니콜라스 아리트너가 연출한 《미스 사이공》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각색하여 배경을 베트남 전쟁 당시 사이공으로 바꾼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무대 위에 실제 헬리콥터, 베트남 전을 상징하는 소총부대, 거대한 호치민 흉상 등장시켰다. 하지만, 아시아계 여성들을 성적인 노리개 감으로 표현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36A5495455F1751F)
![](https://t1.daumcdn.net/cfile/cafe/273F06495455F17510)
![](https://t1.daumcdn.net/cfile/cafe/263660495455F17617)
![](https://t1.daumcdn.net/cfile/cafe/213C75495455F17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