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24/오우아吾友我]내가 나를 벗삼을 수밖에…
잠깐 주춤하던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종이 확산일로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내가 걸려버렸다. 천하에 재수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자가격리 일주일. 아버지는 졸지에 나 때문에 병원 억지입원을 하셨다. 샤워를 하다 갑자기 몰려온 한기에 어쩔 줄 몰랐는데, 사지가 쑤시고 저리는 통에 이틀간 잠을 설쳤다. 그것만 지나면 대부분 괜찮다던데, 나흘째인 오늘은 현기증으로 도무지 무슨 일이든 할 수가 없다. 내일부터는 현저하게 식욕이 떨어진다는데, 진짜 일주일 지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통과의례처럼 괜찮을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아무튼, 어제 오후부터 거실에서 홀로 빈등빈등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빈둥빈둥’보다 ‘흥뚱항뚱’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나는 빈둥빈둥이나 흥뚱항뚱이라는 단어를 사전적 의미와 상관없이 ‘특별히 할 일도 없기에 아무생각 없이 킬링타임(시간 죽이기)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오랜만에 고향집에서 ‘나홀로’세 끼를 먹고 티비도 보며 소파에서 잠을 자는 등 고적함을 즐기고 있다. 밤은 이리공저리공 하여 보냈지만,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주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저 평상시 습관대로 시간만 있으면 집어드는 것이 책일진대, 무슨 걱정인가? 며칠 전 새벽부터 읽어댄 『열하일기 첫걸음』(박수밀 지음, 돌베개 출간, 315쪽, 17000원)이라는 인문교양서를 오후 늦게 통독했다.
이 책은 내가 발견해 구입한 『오우아』라는 책을 읽고 쓴 졸문을 보고 저자가 선물로 보내줬다. 그 인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https://cafe.daum.net/jrsix/h8dk/1192 ‘오우아’는 ‘나는 나를 벗삼는다’는 뜻으로, 코로나 자가격리중 아무도 대면접촉을 못하는 상황인 지금 딱 맞는 말일 듯하다. 그럼, 내가 나를 벗삼을 도리밖에 더 있겠는가? 거기에 또 한 명의 벗은 ‘당근(당연히)’ 책이다. 책 중에서도 고전에 바탕을 둔 인문교양서가 맞춤이다. 저자가 이럴 때 읽으라고 보내준 듯하다.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이 아니던가. 흐흐.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의 저서 『열하일기』안내서이다. 이 안내서 한 권 읽지 않고 곧장 『열하일기』국역본을 펴든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고 이제야 열하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열하일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어도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나부터 ‘호곡장(한바탕 울만한 곳)’이네 뭐네 내용과 그 긴 여정은 대충 들어 알고 있지만, 실제로 국역본 전체를 접해 보지 않았다. 연암의 글은 조선 제일의 문장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극찬을 하는지 나로선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일기日記’치고 이만큼 유명한 일기를 들어보았는가? ‘난중일기’와 ‘안네의 일기’라면 모르겠지만. 혹자는 세계 최고의 기행문이라고도 했다.
그 여정을 대략 살펴보자. 1780년 5월 25일 <진하겸사은을위한별사進賀兼謝恩別使>은 총인원 270명(공식인원 30명)으로 구성돼 말 194필을 갖고 한양을 출발한다. 박지원은 총책임자 박명원의 친척으로 자제군관(반당)이 되어 별사단에 끼는, 인생 최고의 행운을 거머쥔 것이다. 북경에 도착한 것이 8월 1일, 그곳에서 또 청나라 황제가 있는 열하熱河까지 74명이 말 55필을 데리고 출발하여 최종 목적지 도착한 것이 8월 14일. 한양에 돌아온 것이 같은 해 10월 27일이었으니 물경 사개월 동안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그 기간에 연암은 편년체(날짜별 기록)와 기사체(주제별 기록) 등 2부로 기록하여 12책 26권의 문집을 남겼다. 책冊은 오늘날의 권卷과 같은 개념으로 1책에 보통 2-4권이 담겨 있다. 권은 오늘날의 챕터라고 할 수 있을 듯.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볼수록 정말 대단한 여정이 아닐 수 없고, 그것을 또 디데일하게 기록한 연암의 천재성과 창의성에 거듭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제야 좋은 안내서를 제대로 만났으니 열하일기를 본격적으로 읽어볼 욕심이 생겼다. 25년 이상 연암을 연구한 저자에게 다시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인문고전학자인 그는 「연함 박지원의 문예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박지원의 창의적 생각과 시대를 통찰하는 인문정신을 꾸준히 탐구해가며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박지원의 합리적 이성, 이덕무의 온화한 성품, 박제가의 뜨거운 이상을 품는 것이며, 작은 것과 가여운 것에 시선을 두고 그만의 향기를 갖춘 글을 쓰고 싶어한다. 그 소산小産이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오우아: 나는 나를 벗 삼는다』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 『고전필사』 등이며 교육서로는 『기적의 한자학습』 『살아있는 한자교과서』(공저) 『박수밀의 알기 쉬운 한자인문학』 『기적의 명문장 따라쓰기』 등이다. 역서로는 『연암 산문집』 『글로 만나는 옛 생각․ 고전산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