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오늘 너에게로 들어가는 모든 문을 열어 놓는다
깊은 어둠을 더듬으며
한 뭉치의 적막을 짤랑거린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서 나다
추억의 관절 어디에도 없는 꿈들을 벗어 놓아야 한다
내 기억은
아침이 오기 전에는 치유될 수 없다는데
밤은 의문스런 별들을 지상에 던진다
길도
시간의 촉수를 세우며 느리게 걸어간다
강마저 지상의 뿌리를 찾아 흘러와서는
절름거리며 당신의 이야기로 깊어진다
사람이 가지 않는 곳마다
길은 돋아나고
나는 언제쯤 길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한 뭉치의 적막을 길 끝에 걸어놓고
너라는
길을 찾아, 나는 들어갈 수 없다
붉은 성냥의 그을음으로 만진 손가락마다, 꿈으로 무너지는 집
나는 그 집이 움터 바다가 되는 걸 보았다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 나와 벽을 때리고
먼저 허물어진 곳에 이끼가 끼었다
바다가 되지 못한 꿈들이
불가사리처럼 떼지어 악착악착 달라붙을 때
깊은 벽장에서 불을 당기는 어둠 한 조각
잘 켜지지 않는 안개, 붉은 성냥의 그을음을 만진 손가락마다
축축한 바다 냄새가 났다
멀리 떠난 꿈 하나가 유령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가끔
머리맡에서 바다가 고이기도 했다
심해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물컹물컹 발이 젖는 동안
나는 오래된 우물 하나를 발견했다
들어 올린 두레박이
제 몸보다 큰 입을 벌려 팔뚝을 물어뜯는 밤
잘려 나간 팔뚝처럼 절망하며
집이 들썩거렸다
욕실에 빼곡히 자란 해초는
지붕 위에서 말라가는 불량한 꿈들
젖은 몸으로 큰 창에서 밀려 나오는 파도처럼
오래된 기억이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바다, 그리고 유령의 굴뚝
온갖 꿈들이 지느러미를 달고 유영하는 지붕에서
바다가 흡반 달린 내 발등을 도려내고 있었다
송전에서
그리움이 깊은 사람들은 배를 저어 뭍을 떠나곤 하였다
출렁이는 저수지의 은비늘들
뭍을 떠나는 모든 것들을 실어 나르면서
송전은 더욱더 깊어지고
철썩, 철썩 방죽의 모서리에 푸른 이마를 부딪치며
습한 생각들을 키우곤 하였다
뭍을 떠났던 사람들은
한 식경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배들은 자주 뒤척여서
누구든 배를 매어두어야만 했다
방죽 끝에서부터 안개가 저며오는 밤이면
송전이 물자맥질하는 소리가 들리곤 하였다
그런 밤이면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서걱이다가
간혹 억새밭 가에 올라앉아 후득이다가
끝내 저수지에 뛰어들어 푸드득, 푸드득 물새를 날리곤 하였다
그리움이 깊은 사람들은
뭍을 떠나면서
삐거덕, 삐거덕 송전의 깊은 잠을 깨우곤 하였다
길 위에서
누군들 길을 물어 가겠는가
누가 길을 불러 세우겠는가
수없이 꺾어진 길들이여
나보다 먼저 떠난 길들이여
여기 황망히 서서 흩어지는 구름을 본다
흔적도 없이 바람은 또 그렇게 불어서
나의 등을 때리며 지나간다
어디 마음 둘 곳 있으랴
어디 누울 자리 하나 있으랴
칼날 같은 길이여
밟으면 언젠가 꾸었던 꿈들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다시 적셔지는 길들이여
끊어진 길을 또 다른 길이 이어가고
이어가도 보이지 않는 길
저기 새 떼들 능선을 건너가며 건너오는 길
고개고개 접어들면서
흘러가는 길이여
동트는 수평선 너머까지 나를 부르는 길이여
누군가를 위하여 수없이 마중 나가는 길이여
기어코 다시 돌아오는 길이여
누군가 먼길을 돌아오는지 날이 저문다
돌아와서 짐을 부리고 허리를 펴고 저녁을 짓는지
섬까지 노을에 잠긴다
거기에도
붉은 심장을 가진 사람의 길이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