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권력자의 어리석은 인사권 행사와 권위 부여는 상상할수도 없는 민중의 희생을 불러오기도 한다.
과거 기독교 역사의 마녀사냥이 그러했다.
15세기 무렵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소위 마녀사냥꾼으로 알려진 하인리히 크레이머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도미니크수도원 부원장 출신이자 독일의 이단심문관으로 악명 높은 하인리히 크레이머의 요청으로 교황은 칙서를 반포하는데 한마디로 크레이머의 마녀조사 보고서를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곧 이제 내가 뒤를 봐줄테니 마녀들을 대놓고 잡아 조지란 뜻이다.
그래서 1486년에 나온 바로 그 유명한 책이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라는 마녀잡는 망치란 책이다. 사실상 마녀가 실존한다고 교황청이 승인해준 셈이었다.
물론 이 책은 나온지 3년만에 교황청이 마녀는 사실이 아니라고 오류를 바로 잡긴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마녀사냥 교본은 삽시간에 유럽전역으로 퍼져버린 상태였다. 게다가 찾는 이들도 많아 18세기에 이르기까지 29쇄가 넘도록 끊임없이 유포되었다.
아니러니하게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에 의한 인쇄술은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것처럼 성경을 보급하는데만 기여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런 끔찍한 마녀사냥 교본을 보급하는데도 일조해 버린 것이다.
사기행각이나 다름없는 크레이머의 책은 이렇게 교황청의 권위를 부여받아 존재하지도 않는 마녀의 존재를 사회가 인정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고 필연적으로 수많은 이들의 무고한 희생을 불러일으켰다.
광적인 마녀사냥은 갈수록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정적 제거와 교회가 부요한 과부들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잡았고 이단심문에 한번 걸려들게 되면 사실상 처참하고 잔인한 고문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것 외에는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교황청의 공식 승인을 받은 허위사실과 거짓정보에 기반한 마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은 후일 교황청이 아무리 오류를 바로 잡고 책을 금지했다 하더라도 오랜기간 유럽전역을 휩쓸어 버렸고 중세 500년 동안 돌이킬수 없는 상흔을 남겨버렸다.
문제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지금 우리의 현실속에서도 동일한 패턴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지몽매한 지도자가 잘못된 정책과 사상을 주장하는 이들을 함부로 등용하는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서 우리 사회전반을 퇴보시키고 있으며 기소권, 수사권을 남용하여 정적을 제거하는 악날한 수단으로 삼고있다.
뿐만 아니라 크레이머와 같은 적폐 언론이 왜곡되이 전달하는 정보를 대통령실이 노골적으로 언급하여 마치 그것이 공공연한 사실인냥 공식 승인 함으로서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무고한 이들을 마녀사냥 하듯이 압제하고 있는 형국이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자본권력과 커넥션이 있는 레거시 미디어의 기만행위에 시민들이 휘둘리지 않도록 지대한 역할을 한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과거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의해 성경과 함께 보급된 것처럼 가짜뉴스가 퍼져나가는데도 일조하게 되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렇게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2000년에 이르러 교황 바오로 2세가 마녀사냥의 과오를 인정하고 교황청 명의로 공식 사과와 용서를 구했지만 죽은자는 이미 말이 없고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기록은 아벨의 피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작금의 현실 앞에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사회 공동체를 위해 그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공헌해온 이들이 정치 검찰과 적폐 언론, 사법부내 부패한 자들의 카르텔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마녀사냥을 당해 제거되어 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껏 너무나 아까운 인물들을 계속 떠나 보내야만 했다. 대표적으로 노무현을 그토록 욕하고 저주했지만 나중에서야 그의 진가를 알아보게된 경우가 그렇다고 본다.
키케로의 말처럼 사후에 승리했던 사람이 생전에 승리했다면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졌을까라고 말해봤자 역사에 가정은 없는 것이고 죽어서 명성을 남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의 사건들을 교훈삼아 지금까지 사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온 이들을 따듯하게 격려하고 위로하며 다시금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아까운 이들을 더이상 마녀사냥의 타깃으로 내주어 속절없이 떠나보내는 이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저들의 기만과 정치적 야욕을 깨어있는 시민들의 강력한 연대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야만 한다.
무엇보다 과거 중세에는 민중의 힘으로 부패한 권력자를 끌어내릴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얼마든지 권력교체도 가능하게되었다.
골고다 언덕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이후 그를 믿는 자들에게 부활로 나타나셨듯이 지금 이 시간 어둠이 깊고 길어질수록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머잖아 빛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