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지식인이 아니다.
물론 많은 잡다한 지식은 필요하다. 그것이 글을 쓰는 재료가 되기도 하고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문학은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소설의 기본 골격 정도는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문적인 지식 보다. 무식할 정도로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아야 한다.
실제로 한글을 막 깨우친 노인들의 시나 글을 보면 놀라울 때가 많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가득 찬 동시를 보면 싱그러움과 함께 번뜩이는 詩心을 본다.
전문적인 지식인이 쓰는 논문은 문학이 아니다.
문학과 같은 점은 문자를 이용한다는 단 한가지 뿐이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수 많은 시인들을 보면,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면서 시낭송회를 열면서 몰려 다닌다.
내가 20 여년전 소설책을 우연히 출간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지방 시인들이 모임에 초대 받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앉아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되지도 않는 자신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집착을 하며 상대가 듣던 말던 떠들고 있었다.
차라리 열심히 살아가는 어판장의 상인들의 이야기가 더 문학이었다.
문학에 대해 떠들 시간에 홀로 집에서 글만 쓰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쓸데 없이 몰려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그들은 시집을 자신의 돈으로 출판하고, 떼거지로 모여 출판 기념회도 개최하고, 참석한 사람들에게 시집을 그냥 나누어 준다.
돈이 없으면 문학도 못한다는 것이다.
비록 책을 내지 못해도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문학적이다.
그들은 문학을 엉터리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책을 내지 않는다. 오로지 인터넷에서 마음 놓고 독자들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대화 하고 싶다.
책을 출판하면. 거의 0.1 핵타의 산림이 파괴된다.
읽지도 않는 책 때문에 환경은 막대한 손해를 보는 셈이다.
책 보다 누구나 가볍게 돈도 들이지 않는 인터넷이 독자들을 상대하기에는 더욱 효율적이다.
혹시, 내가 책을 낸다면. 그것은 묵호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墨湖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