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이 사회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계급을 결정한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폴라니의 이러한 주장과 아나키스트들이 얘기하는 공동체의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서는 두 주장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공동체의 자발적 질서야 말로 근원적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는 아나키즘과, 긍극적으로 공동체의 철저한 파괴로 결말이 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저항으로 사회의 자기 보호 본능을 주장하는 폴라니의 주장과는, 많은 부분 일치 시킬 수 있는 지점이 있다.
폴라니의 주장과 아나키즘의 일치하는 지점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한 것은 사회와 공동체 두 명제인데, 두 명제의 구별점과 시작점은 어디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해법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거대한 전환에서, 폴라니는 자유시장은 자연과 사람을 상품으로 만들었던 탓에, 필연적으로 공동체와 자연의 파괴가 수반된다고 했다.
만약, 지금 폴라니가 살아 있다면, 생태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농촌 생명 공동체를 주장하지 않을까?
폴라니 혼령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만약, 쌍용차에 공적 자금이 투입 된다면, 나는 그 돈을 해고된 쌍용차 노동자들의 농촌 정착 자금으로 바뀌게 하고 싶다.
그것이 더 이상 자유시장에서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폴라니가 이야기 하는 사회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나키스트로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