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시____
연리지
임영석
나무마다 나무들의 말이 있다
그 말들의 뜻을 보면
살아온 이력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어떤 것은 넓은 잎에
어떤 것은 뾰족한 잎에
제 살아온 날의 일을
일기처럼 적고 있다
간혹, 다른 나무끼리
꼭 껴안고서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백 살이든 천 살이든
마음 맞는 눈빛은
나무라 해서 피해갈 수 없는가 보다
그래도 서로가 몸을 맞댄 와중에
어미가 붙여준 이름은 버리지 않는다
임영석 / 1985년 『현대시조』 추천, 1989년 『시조문학』 추천 등단. 시집 『이중창문을 굳게 닫고』, 『사랑엽서』, 시조집 『배경』, 『고래발자국』 외 다수. 제1회 시조세계문학상 수상. 강원문화재단창작기금 수혜. 현재 <스토리문학> 부주간.
∥추천이유____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상징성
정일남
생명을 가진 것은 다 그들끼리의 의사소통의 말이 있을 것이다. 짐승이든 식물이든 다 그럴 것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이 미치지 못해서 듣지 못할 뿐이다. 나무도 저마다 성장해 온 고난을 언어는 없지만, 일기처럼 마음속에 기록한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은 그 일을 모르지만 나무는 그런 일을 한다. 이런 일들은 나무와 나무가 서로 껴안는 작용, 서로 백 년이고 천 년이고 그리운 눈빛으로 다른 이성끼리 껴안고 살아가는 사랑이 있다고 시인은 보는 것이다. 더하여 부부애로 승화하는 연리지란 이름을 부여받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무가 서로 껴안는 사랑을 어찌 인간이 무심히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 삭막한 오늘의 인간 사회를 돌아볼 때 깨침이 왜 없겠는가. 서로 다른 나무와 나무가 눈물겹도록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애정을 무심히 바라볼 수만은 없다. 이 거친 배신의 세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옛적 후한에 채옹이란 사람이 있었다. 효성이 지극해서 어머니가 병으로 누운 지 3년 동안 계절이 바뀌어도 옷 한번 벗지 않았다 한다. 70일 동안 잠자리에 들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자 집 옆에 초막을 짓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풍습과 예법에 따라 극진한 정성을 다 바쳐 섬겼다 한다. 이런 효심이 작용했는지는 모르나 채옹의 집 앞에 자라던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와 가지가 서로 붙어 맞닿아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무가 채옹의 효심에 스스로 감탄한 것일까. 이웃 사람들이 와서 보고 기이하게 여겼다 한다.
연리는 원래 효심을 뜻하는 말이었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서로 엉켜서 하나의 나무가 된 것이 채옹의 효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여겼다. 이것을 보고 옛사람들은 효성이 지극함을 뜻하는 것으로 여겼으나, 그 의미가 후에 바뀌어 남녀 간의 사랑과 부부애를 비유하는 말로 변한 것은 백거이의 장한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부부가 되면서 연리지같이 살겠다던 사랑을 뿌리치고 이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쩌면 인간이 나무의 사랑만도 못한 삶을 자초하는 것은 아닌지. 임영석 시인의 「연리지」를 읊으면서 나무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비교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무의 연리지 같은 사랑이 그리워지는 시대다. 이것이 「연리지」를 추천하는 이유다.
정일남 / 강원 삼척에서 태어났으며 1970년 <강원일보>(시), 1973년 <조선일보> (시조) 신춘문예, 1980년 『현대문학』 시 추천완료. 시집 『어느 갱 속에서』, 『훈장 』 『봄들에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