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2 화요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1580-1623) 기념일
지혜2,23-3,9 루카17,7-10
종의 자세(Attitude of a Servant)
오늘 복음을 찾아봤더니 영어 성경에는 그 소제목이 ‘종의 자세(Attitude of a Servant)’였고, 한국교회공용번역본에는 ‘겸손히 섬겨라’였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은 예외 없이 주님의 종입니다. 새삼 같은 어원에서 나온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이 우리의 유일한 영성임을 깨닫습니다.
묵상 중 ‘삶은 운명이다’ ‘삶은 순종이다’ ‘삶은 섬김이다’ ‘삶은 의무다.’ 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삶은 이유가 없는 무조건적 살아야하는 지상명령입니다. 사람마다 다른 그만의 고유한 운명이요 하느님의 뜻입니다. 비교하여 우열을 말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삶입니다.
피하거나 요구하지 말고 주어진 삶에 충실한 것이 종의 자세입니다. 종인 우리가 주인인 하느님께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종들인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로움에 대해 어떤 요구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종으로써 자신의 의무에 충실할 뿐입니다. 진정 하느님의 종들은 매사 하느님을 겸손히 섬기며 매사 충실히 순종할 뿐입니다. 비상한 의무도 아닙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내 삶의 자리에 지극히 충실한 것입니다. 이건 겸손도 아니고 그저 당연한 의무입니다. 공치사 할 것도, 과시할 것도, 자랑할 것도 아닌 그대로의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이 주님의 종들인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참으로 큽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이런 종의 자세가 정말 깨끗합니다. 완전히 욕심이 탈색된 무욕의 초연한 삶입니다. 추호의 불평이나 불만도 없습니다. 이런 이가 진정 하느님의 종입니다. 하느님은 진정 이런 종을 사랑하십니다. 비상한 삶을 살아서가 아닌 평범한 제 삶의 자리를 충실히 살아 하느님의 종입니다. 진정 행복의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삶은 의무입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죽음은 마지막 순종입니다. 삶은 섬김입니다. 삶은 행복입니다. 그 유일한 대상은 하느님입니다. 주인이 없는 종이 무의미하듯 하느님 빠진 우리 삶도 무의합니다. 주인인 하느님을 잃으면 종인 우리들의 삶의 중심도 목표도 방향도 의미도 실종입니다. 바로 이런 종의 자세는 우리 분도수도자의 정주영성에도 직결됩니다. 얼마 전 수도원을 방문했던 어느 자매의 평범한 말이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수사님들이 수도원 성전 안 늘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저희에겐 정말 큰 위안입니다.”
수도원을 방문하는 이들의 공통된 고마움의 표현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서 묵묵히, 욕심 없이 주님을 섬기며 종으로 살아가는 정주의 삶 자체가 마음에 안정과 평화, 위로와 치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주님의 종으로서 그 자리에 충실할 때 주님은 그 종들에게 안정과 평화, 위로와 치유를 선사하십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1독서 지혜서의 의인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삶에 항구할 때 깨닫는 진리입니다. 세상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 불쌍해 보이는 주님의 종들 같지만 의인들인 이들은 평화를 누리며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당신 종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십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종들은 진리를 깨닫고, 주님을 믿는 종들은 주님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입니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종들에게 주어지고, 주님께서는 선택하신 당신 종들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정주의 제자리 삶에 항구하고 충실한 당신 종들인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런 주님의 종들의 응답은 화답송 후렴 하나뿐입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을 충실히 섬기는 당신 종들인 우리 모두에게 평화와 기쁨을 선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늘 정주의 제자리 삶에 충실한 주님의 종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