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正纪念堂
타이페이에는 中正의 이름을 딴 지명이 많았다. 中正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장제스다. 장제스는 모오쩌둥 공산당에 패배하여 1949년도에 대만으로 밀려나 중화민국의 명맥을 이은 대만의 초대 총통이다. 비교한다면 우리나라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같은 분이다. 장제스는 1932년4월29일,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있었던 윤 봉길 의사의 의거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김구 선생을 보호해 주신 분이기도 하다.
9월10일 날, 우리는 中正區에 있는 중정기념당을 관람했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제일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자유광장 서쪽에 위치한 아치형으로 된 일명 파이팡(牌坊)이라는 정문 이었다. 정문 처마 아래에는 自由廣場이라는 현판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이 현판은 디지털 형식인지 때에따라 현판의 문구가 바뀐다고 했다.
예를 들면 서양 대표단을 맞을 때는 Libropia Squara 로, 중국대륙 대표단을 맞을 때는 자유광장으로 변신하는 등등 말이다. 이 정문은 멀리 중정기념당과 일직선상에 있었다. 광장 좌우에는 전통중국 긍궐식 붉은 기와로 된 웅장한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우측 건물은 국가음악당(國家音樂堂)이고
좌측 건물은 국가희극청(國家戲劇廰)이었다.
자유광장 정문에서 기념당까지의 거리는 꽤나 멀었다. 기념당의 규모가 어마어마 했다. 총 89개의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본당에 이를 수 있었다. 89는 장제스가 세상에서 누린 향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기념당 중앙에는 왕좌에 앉은 장제스의 동상이 있었다. 옛날 황제가 보좌에 앉은 그런 위엄한 모습을 연상케 했다. 동상은 서쪽 자유광장의 정문과
더 나아가 멀리 빼앗긴 서쪽대륙을 하감하고 있었다. 사람은 죽었지만 대륙수복의 꿈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념당에서는 하루 9번씩 근위병 교대식이 진행된다고 했다.
관람객들은 붉은 테이프로 쳐놓은 포지션 밖에서 관람해야 했다.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진행되었다. 그날은 흰 제복차림의 근위병들이 교대식을 했다. 5인1조로 교대하는데 그 교대식이 너무 위엄하고 절도있었다. 처음에는 로봇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관람객들은 교대식 장면을 앞다투어 카메라에 담았다. 기념당 안은 근위병들의 구둣발 소리 외에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숙연 했다.
나라를 모오쩌둥공산당에게 통째로 내어 준 장제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그 생애에 엄창난 과오를 범한 장제스,
그러나 대만인들은 그의 과오를 기억하기보다 그가 대만에 정착시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대만의 부흥,
공산당으로부터 대만을 굳게 지켜준 그 은덕,
대만인들은 그분의 이런 업적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만인들은 대만을 장제스와 영원히 갈라놓을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성인과 같은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