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
이 글에서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인 프리다 칼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출신의 화가이다. 프리다는 고통의 여왕이라 불리울 만큼 인생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어왔으며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내가 프리다라는 화가를 존경하는 인물로 이 글에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리다는 수많은 고통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 그림들 속에서는 프리다의 고통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서 생겨난 복수심, 분노, 의지 등 살아갈 희망이 느껴진다. 인생의 반이 고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마지막까지 붓을 들고 자신의 의지를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표현한 그녀의 인생은 나뿐만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프리다 칼로라는 화가를 선정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프리다 칼로의 고통과 그녀가 많은 사람들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적어본다. 프리다는 유년기 시절에 오른쪽 다리에 소아마비라는 판정을 받았다. 9개월은 집밖에 나설 수 없었고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친구들이 놀리기 일수였으며 자연스럽게 마비가 온 다리는 그녀의 콤플렉스가 되었다. 평생을 다리때문에 고생하며 궤양 또한 발생하면서 결국 사망하기 직전에는 다리를 절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프리다가 18살이 되었을 때 멕시코 시티에서 버스를 타던 중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는 프리다의 온 몸에 있는 뼈가 으스러지는 정도의 대형사고였으며 그때 당시에 프리다는 의사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판정까지 받았다. 사고와 동시에 프리다와 교제 중이었던 남자친구까지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는 이별을 고하며 그녀는 큰 고통 속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프리다는 병상에 누워있는 채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떄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 자화상인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 이다. 이 그림에는 고통을 겪은 프리다의 모습과는 달리 우아한 모습이 담겨있다. 프리다는 자신이 고통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우며 강인한 사람임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을 당시에 멕시코 정부는 앞으로의 사회를 위해 멕시코 시티를 중심으로 벽화운동을 시작했으며 이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화가가 등장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디에고 리베로이며 프리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인물임과 동시에 프리다의 인생에 가장 큰 고통을 준 인물이기도 한다. 그는 화폐에도 찍힐 만큼 명성 높은 인물이었지만 사생활은 어지럽혀져 있었다. 디에고는 아내가 있음에도 자신의 친구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두 번째 아내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첫 번째 아내와는 이혼을 했으나 그 다음에 바로 프리다를 만나게 되고 그는 다시 두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디에고와 결혼한 프리다는 잠시 그림을 그만뒀었는데, 그 이유로는 디에고의 아내로서 그를 뒷받침하는 데에 신경쓰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디에고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면 자신을 작게 표현함으로써 디에고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리다는 얼마 후 아이를 갖기를 시도했지만 하혈을 하며 큰 고통과 함께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이에 디에고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고 프리다는 그 와중에도 '헨리포드 병원(떠 있는 침대)' 라는 그림으로 고통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디에고는 프리다의 친동생과 바람이 났으며 이에 충격을 받은 프리다는 새로운 그림을 그려 디에고에게 보냈다. 그때 당시 멕시코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뒤 '나는 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이다.' 라고 발언한 사고가 있었다. 프리다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그림인 '단지 몇 번 찔렀을 뿐' 이라는 그림을 그려 '디에고, 너는 나에게 칼로 찌른 듯한 고통을 주었어' 라는 메시지를 담아 보냈다. 그러나 디에고는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고 결국 둘은 이혼하게 되었다. 이 사건 후에 프리다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하나씩 공개하기 시작했고 대중들의 반응도 좋았다. 전시회 제안도 받으며 현재에 와서는 디에고보다 많이 알려질 정도로의 유명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갔지만 다리로 인한 건강 악화로 그녀는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잘 정도의 고통에 시달리다 '수박' 이라는 그림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많은 이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며 생을 마감하였다.
이 글의 제목을 '인생이여 만세'라고 선정한 이유도 마지막 그림 때문이다. '수박'이라는 그림은 다양한 모양의 수박이 그려져 있으며 색 또한 점점 진해지는 형태를 보인다. 이는 그녀가 고통 가득한 인생 속에서 살아갈 의지를 끊임없이 피워낸 긴 인생을 시간순으로 나타낸 듯한 그림이며 수박에는 'viva la vida'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문구는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으로 고통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보여준 그녀의 인생을 가장 잘 나타내기도 하며 여러 사람의 공감을 자아내는 문구이기도 하다. 사실 누구나 시련을 겪게 되면 극복하고 싶고 그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를 직접 표현하고 실천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다는 쓴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딪히며 자신의 인생에 이미 너무 많이 녹아버린 고통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저 문구가 나에게는 간단하게 표현되지 않는 깊은 동기를 부여한 듯했다.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을 나는 받아들이며 지금도, 앞으로도 내 인생은 강하고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다짐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