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이 사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심히 우려할 만큼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거의 모든 면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물론 배가 항해를 하려면 어느 정도 흔들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파도없는 바다를 어떻게 기대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몸 담고 있는 배가 심히 흔들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치에서는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을 둘러싸고 숱한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해당 사령관이 자신은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듣고 행한 사람은 숱하게 많은데 그런 지시를 내린 사람이 없는 셈입니다. 군대는 전쟁터입니다. 전쟁터에서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그 유령같은 지시를 행하는 군인들이 있다면 그게 군대입니까.
의정갈등은 어떻습니까.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은 이제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번주 있을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실정입니다. 이 나라의 행정을 판사가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흔들리는 사회였으면 정부와 의사들이 싸우는데 그것의 향방을 결정하라고 전혀 관련없는 판사가 나서는 현실이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정부와 의사세계를 전혀 알지 못하는 판사가 내리는 결정에 과연 정부와 의사들이 따를까요. 또 다른 혼란상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요즘 핫한 뉴스인 라인 야후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소프트 뱅크가 일본 정부를 등에 업고 네이버 지분을 헐값에 매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야당은 대일 굴욕외교가 이 사태를 불러왔다는 주장이고 여당은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지만 상황은 아주 좋지 않은 방향으로 향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대통령 부인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 중앙지검장이 전격 교체된 것을 두고도 숱한 의혹과 지적의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특검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검찰 조직도 흔들 흔들하다는 것입니다.
경제도 심하게 흔드리는 것은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그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든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그리고 재정적자는 나라 경제를 심하게 흔들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은 그 심한 코로나 사태때보다 더 힘든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고 아우성입니다. 건설업체들의 돈 구하기 경쟁도 이제 그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PF 부실 우려에 몰린 금융권의 몸사리기로 건설업체들의 줄도산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나라 전반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구석이 없는 상황입니다.
배에는 모두 앵커가 존재합니다.앵커는 닻을 의미합니다. 닻이란 무엇입니까. 배가 정박하고 있을 때 흔들리지 않게 바닷속 깊이 박아두는 장치를 앵커라고 합니다. 배에서 앵커를 내리면 배는 조금 흔들리기는 하지만 표류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등산에서 암벽이나 빙벽을 오를 때 나무나 바위 등에 자일을 매어 안전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앵커라고 합니다. 뭔가 안전을 위해 미리 장치하는 안전장비인 것입니다. 뉴스 보도에서 중구난방으로 왔다갔다하는 흐름을 방지하고 보도의 흐름을 순조롭게 하는 인물을 앵커라고도 합니다. 뉴스 앵커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나라는 왜 이렇게 흔들릴까요. 일부에서는 특정 인물의 무능함과 무책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이 나라 이 사회의 시스템이 성숙하지 못했다고 판단합니다. 특정인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스템은 성숙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 공중파 방송의 경우 사장이 바뀐 이후 급격하게 경쟁력이 추락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그 특정 인물 한사람 때문에 그 공중파 방송의 가치가 추락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영향은 있겠지만 그 아래 조직원들의 역량이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송을 모르는 특정인때문에 방송국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조직원 상당수가 성숙하지 못하고 그런 시스템을 운영할 역량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입니다. 잘못된 것에 저항하지 못하는 의식때문입니다.
나라와 사회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원 구성원들의 일관된 의지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의 성숙함이 있다면 특정인이 윗자리에 온다고 그리고 엉뚱한 지시를 내린다고 조직자체가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구성원들 자체가 굳건한데 위에서 아무리 정을 내리 꽃는다고 그 조직이 허물어지겠습니까. 조금 흠이 날 뿐이지요. 나라와 조직이 흔들린다는 것은 나라와 조직이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무엇이 제대로 된 가치인지를 모르는 것일 겁니다.
앵커란 무엇입니까. 닻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치관입니다. 배가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는 앵커는 바로 배의 자존심이자 가치입니다. 그런 가치가 확립되지 않은 배는 조그만 바람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굳건한 앵커를 보유한 배는 태풍에도 묵묵히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바람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이 사회 이 조직들이 굳건한 앵커 즉 가치관을 확보하고 있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야야 하는 시점입니다. 윗 사람 한 사람이 바뀌고 그의 추종세력으로 자리를 채웠다고 해도 그 조직의 대부분이 중심을 잡고 가치를 존중하면 어떻게 조직이 흔들릴 수 있겠습니까.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이 확고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데 특정 인물이 그 가치를 흔들기는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하는 순간 퇴출되고 말 것입니다.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의 가치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가치 뿌리가 허약한 국민은 조그만 바람과 흔들림에도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피폐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말해 앵커가 존재하지 않는 조직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가치관은 돈으로 권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세월속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국민적 합의속에 만들어지고 굳어진 그 가치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흔들리는 나라와 사회속에 우리는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야야 하는 시점으로 판단됩니다.
2024년 5월 1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