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8~29)
코린토1서 1장 27절과 28절에는 완전히 상반되는 대조적 표현이 선명하게 대구를
이루고 있다. 우선 27절에는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석은 것', 그리고 '강한 것'과
'약한 것'이 각각 대조되고 있다. 그리고 28절에서는 '비천한 것'과'천대받는 것',
'없는 것'과 '있는 것'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반복 대구법을 사용한 문장 기교는 코린토 교인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사도 바오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앞의 27절의 내용을 이어받아 28절에서도, 코린토 교회가 세상에서
비천하고 천대받고 없는 자들로 구성된 교회라고 지적하면서,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선택하셔서 '있는 것들'('타 온타'; 'ta onta'; the things that are)을 무력하게
만드신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무력하게 만드시려고'로 번역된 '카타르게세'(katargese)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치게 하다', '끝내다'라는 뜻을 지닌 '카타르게오'(katargeo)의 가정법으로서
목적절을 이끄는 접속사 '히나'(hina)와 더불어 하느님께서 비천하고 천대받고 없는
것들을 택하신 목적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그것은 있는 자들, 유력한 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신분 따위는 구원을 얻는 데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로 역사 가운데서도 실증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신명7,7) 그분이 보내신 독생성자
예수님께서도 당시 종교 율법적인 사회에서 소외되고 단죄받던 세리들과 죄인들을
선택하셨다.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무시하는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전혀 무능력한 존재들, 곧 인간의 시각으로는 마치
없는 것 같이 무가치해 보이는 자들을 선택하셔서 스스로 능력있다고 여기는 교만한
자들을 무력화 시켰던 것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과 유능한 자들과 가문 좋은 자들은 앞의 27절에서 '부끄럽게
하시려고'란 표현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미 하느님께서 사회적으로 그들보다
못한 자들을 부르신 사건들을 통하여 굴욕을 당했다.
그러나 28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제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력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무력하게 만들다'는 말은 종국적인 멸망의 심판의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는
말로서, 결국에는 그들이 영원히 멸망을 받아 구세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9)
'이것은 ~ 하게 하셨습니다' 로 번역된 '호포스'(hopos)는 '~하기 위하여', '~할
목적으로'(so that ~may)라는 뜻을 지닌 접속사로서, 29절이 앞의 26~28절에서
언급한 하느님의 선택하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여기서 '자랑하지'로 번역된 '카우케세타이'(kauchesetai)는 '자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카우카오마이'(kauchaomai)의 부정 과거형으로서, 동사를 부정하는 부정어
'메'(me; no)와 더불어 사용되어 어떠한 자랑도 있을 수 없음을 명확히 밝혀준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인간도'에 해당하는 '파사 사륵스'(pasa sarx)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도 예외없이' 란 의미이다.
26절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코린토 교인들은 인간적으로 보잘것 없는 처지 가운데서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랑을 일삼으며, 하느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1코린1,12; 3,21).
자신들이 받은 은사들을 잘못 평가하여 이것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영적 교만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이 이런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그들
자신의 겉모습이나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하느님의 주도적 부르심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 그리고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거리끼거나 미천하게 여기는 십자가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은 철저하게 사람들과 사람들의 세상적 지혜를 자랑했다(1코린3,21; 4,7;
2코린10,17). 이러한 형태가 바로 '코린토 교회 내부에서' 횡행했던 것이다.
그들은 세상과 동일하게 세상의 인본주의적 지혜를 자랑하고, 그런 지혜를 기준으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던 복음 증거자들을 평가함으로써 교회내의 분열과 분쟁을
유발시켰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당면 문제에 대해서 인간의 지혜와 질적으로 다른 하느님의
탁월한 지혜를 제시하고, 그 지혜가 사실상 세상의 지혜를 무효화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코린토 교인들의 잘못된 사고 방식을 교정하고자 한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은 하느님 앞에서(before)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in)
자랑해야만 한다(1코린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