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39-40)
본문은 히브리서 11장 4~38절까지 언급된 옛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혹은
믿음을 가지고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시한다.
본문에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으로 번역된 '마르튀레텐테스'(martyrethentes)
는 '증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마르튀레오'(martyreo)의 수동태 과거분사이며,
그것은 어떤 사실의 진실된 모습이라는 인정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특히 11장에서
이 동사는 수동태로만 쓰였다.
여기서 이 표현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여기에 거명된 사람들, 즉 아벨로부터 사무엘 및 여러 예언자들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증인이 하느님 자신임을 알게 한다.
그분께서는 언제든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길을 택하거나 적어도 순교를 각오한
모든 이들을 위해 기꺼이 증인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인정해 주신다. 그러나 믿음을
따라 살지 못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둘째는 믿음의 옛 사람들이 믿음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의 구원에 대해 증거를
받았다는 것이다. 비록 그 실현을 그들이 당대에 보지는 못했으나 그 사실에
관해서는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라는 히브리서 11장 1절의 선언을 상기시킨다.
'약속된 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생전에 메시아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한 사실을 나타낸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전, 곧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죽었던 것이다. 따라서 '얻지 못하였습니다'로 번역된 '우크 에코미산토'
(uk ekomisanto)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갈바리아의 죽음을 통한 하느님과의
친교라는 충만한 축복을 얻지 못하였음을 증거한다.
믿음의 옛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의 성취를 얻지 못하였다는 본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볼 때, 옛 사람들을 위해서는 종국적인 구원은 순전히 미래에 속하여
있고, 우리를 위해서는 그것은 이미 성취되었고,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것이다.
즉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이 이미 성취되었고, 재림을 통한
종국적 구원은 구약의 옛 사람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에게 모두 미래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히브리서는 성도인 우리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영적인
특권들과 비교해 볼 때, 옛 계약 아래 있는 영적 특권들이 열등하다는 사상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충분히 뒷받침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마태11,11)
이것은 현재 성도인 우리가 누리는 영적 특권이 구약 시대의 아무리 놀라운 믿음을
지닌 옛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옛 계약 아래 있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음을 잘 알게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본절은 하느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 구약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좋은 약속을
예비하셨다는 사실을 말한다. 여기서 '내다보셨기'로 번역된 '프로블렙사메누'
(probllepsamenu)의 원형 '프로블레포'(probllepo)는 '전에', '앞에'를 뜻하는
전치사 '프로'(pro)와 '보다'를 뜻하는 동사 '블레포'(bllepo)의 합성어로 '미리보다',
'앞서 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더 좋은 것은 무엇인가?
'더 좋은 것'으로 번역된 '크레이톤 티'(kreitton ti)는 보다 정확히 번역하면
'더 좋은 어떤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과 그로 인한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친교를 가리킨다.
구약의 성도들은 신약의 성도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구원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이것은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계획하신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구약의 성도들이 이 축복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옛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한 구원을 믿음을 가지고 미리 본 반면에,
우리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을 가지고 영접한 것만이 다를 뿐이다. 결국 믿음에
따르는 상급이라는 면에서는 그들이나 우리가 다를 것이 없다.
'우리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본절을 정확히 번역하면,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가
된다. '히나'(hina)가정법 구문'인 본문은 하느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목적 혹은 예비하심으로써 빚어진 결과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것은 우리가 구약의 성도들을 완전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옛 계약 아래 있던 믿음의 옛 사람들은 스스로는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이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 사업을 이루심으로써 믿음의 사람들이 완전함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함께 완전해지는 것이다.
'다 이루어졌다'(요한19,30)라는 십자가상 예수님의 외침과 부활이 있기 전에는
아직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공로와 그 효력이 신약 뿐 아니라 구약의 믿음의
옛 사람들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히브12,23). 그리스도의 구원에
그들도 초대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