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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Ⅱ -근현대 한국화①』
- ▣허백련▣김은호▣이상범▣변관식▣이응노▣김기창▣박래현▣이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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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Ⅰ-문화재』 https://blog.naver.com/ohyh45/222497140688
▣ 조선시대 회화, ▣ 전적, ▣ 금속·공예, ▣ 조각, ▣ 토기·도자.
『이건희 컬렉션 Ⅱ-근현대한국화①』 https://blog.naver.com/ohyh45/222498664050
▣ 허백련, ▣ 김은호, ▣ 이상범, ▣ 변관식, ▣ 이응노, ▣ 김기창, ▣ 박래현, ▣ 이도형,
『이건희 컬렉션 Ⅲ-근현대한국화②』 https://blog.naver.com/ohyh45/222499693504
▣ 백남순, ▣ 나혜석, ▣ 김종태, ▣ 서동진, ▣ 이종우, ▣ 김중현, ▣ 박상옥, ▣ 김종영, ▣ 권진규, ▣ 윤효중,
『이건희 컬렉션 Ⅳ-근현대한국화③』- ▣박수근, ▣김환기 https://blog.naver.com/ohyh45/222500896165
『이건희 컬렉션 Ⅴ-근현대한국화④』 https://blog.naver.com/ohyh45/222500899707
▣ 이성자, ▣ 이대원, ▣ 권옥연, ▣ 박생광, ▣ 도봉상, ▣ 박영선, ▣ 서진달, ▣ 남 관, ▣ 김 경,
『이건희 컬렉션 Ⅵ-근현대한국화⑤』 https://blog.naver.com/ohyh45/222502492383
▣ 오지호, ▣ 천경자, ▣ 장욱진, ▣ 김흥수, ▣ 류경채,
『이건희 컬렉션 Ⅶ-근현대한국화⑥』 https://blog.naver.com/ohyh45/222502563094
▣ 이중섭, ▣ 이인성, ▣ 이쾌대, ▣채용신,
『이건희 컬렉션 Ⅷ-근현대한국화⑦』 https://blog.naver.com/ohyh45/222503421442
▣ 유영국, ▣ 문학진, ▣ 변종하, ▣ 서진달, ▣ 박항섭, ▣ 문 신, ▣ 박대성, ▣ 임직순, ▣ 신학철,
『이건희 컬렉션 Ⅸ-외국화가작품』 https://blog.naver.com/ohyh45/222504251335
▣ 피사로, ▣ 마크 로스코, ▣ 미로, ▣ 모네, ▣ 달리, ▣ 샤갈, ▣ 르누아르, ▣ 고갱, ▣ 베이컨, ▣ 쿠닝, ▣ 바스키아,
▣ 피카소, ▣ 마그리트, ▣ 리히텐슈타인, ▣ 앤디 워홀, ▣ 트웜블리, ▣ 리히터, ▣ 자코메티, ▣ 로댕,
『이건희 컬렉션 Ⅱ -근현대 한국화①』
《광주시립미술관》과 《전남도립미술관》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미술작품 컬렉션 중 51점을 기증받아 풍성한 문화예술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 작품들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작가들의 작품으로 미술관의 전시·연구 기능을 강화하는데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중 김환기, 오지호, 이응노, 이중섭, 임직순 작가의 작품 등 광주지역에 연고를 둔 작가들의 근현대기 미술작품 총 30점을 기증받았다. 시립미술관은 개관 30주년을 맞는 2022년에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기증된 작품은 전남 신안 출신으로 한국 대표적인 추상화가인 김환기(1913-1974)의 작품 5점, 전남 화순 출신으로 조선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남도 서양화단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오지호(1905-1982)의 작품 5점,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시위 군중을 표현한 ‘군상(群像)’ 시리즈로 잘 알려진 이응노(1904-1989)의 작품 11점, 국민화가로 불리는 이중섭(1916-1956)의 작품 8점, 오지호의 후임으로 조선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남도 서양화단에 영향을 끼친 임직순(1921-1996)의 작품 1점이다.
시립미술관은 기존 미술관 소장품으로 유화 작품 1점과 드로잉 작품 2점의 김환기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195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1970년에 제작한 유화 작품 4점과 드로잉 작품 1점을 기증받음으로써 김환기 작품세계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오지호의 작품은 1960-70년대 제작한 풍경 4점과 정물 1점의 유화 작품이 기증됐는데, 기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7점의 유화 작품과 함께 오지호 컬렉션의 깊이를 더해 줄 것이라 기대를 모은다.
임직순의 작품은 1점의 유화작품, ‘문자추상’ 작품을 통해 국제적으로 작가적 위상을 드높였던 이응노의 작품은 ‘문자추상’ 경향의 대작 2점과 ‘군상’ 연작 3점, 그리고 까치와 말, 염소, 닭을 소재로 한 수묵화 5점, 말년에 제작한 수묵담채의 산수화 작품 1점으로 총 11점이 기증됨으로써 5명의 작가 30점의 기증 작품 중 가장 많은 작품이 기증됐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이중섭의 작품은 은색 담배 종이에 그린 ‘은지화’(銀紙畵) 4점과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 4점이 기증됐다.
특히 화구를 살 돈조차 없는 궁핍한 생활 속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렸다는 이중섭의 은지화는 일반적으로 1950년대 초반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번 기증된 4점의 작품 중 3점이 1940년대 작품으로 은지화의 시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전남 출신 한국미술 거장들의 작품 21점을 기증받았다.
주요 기증작 작가는 진도 출신 의재 허백련, 화순 출신 오지호, 신안 출신 김환기, 고흥 출신 천경자 등이다. 이 밖에도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김은호, 유영국, 임직순, 유강열, 박대성 등 총 9명의 작가가 포함됐다.
기증작 가운데 김환기의 ‘무제’는 전면점화(全面點畵)가 시작되기 전 화면을 가로지르는 십자구도의 작품이다. 전남도립미술관 소장품의 품격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천경자의 대표작인 ‘꽃과 나비’, ‘만선’ 등 1970년대 실험을 통해 동양화라는 매체를 넘어서고자 했던 작품도 기증받았다. 흙에 물감을 섞어 종이 위에 바른 ‘만선’은 재료의 텍스처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천경자의 작품 중 흔히 볼 수 없는 재료의 사용법이 눈에 띈다.
5점이 기증된 오지호의 작품 중 ‘풍경’과 ‘복사꽃이 있는 풍경’, ‘잔설’, ‘항구풍경’ 등도 화면 속에서 공기가 순환하는 듯한 특유의 필치가 잘 드러났다.
이당 김은호의 ‘꿩-쌍치도’, ‘산수도 10곡병풍’, ‘잉어’ 등은 그의 부드럽고 섬세한 필치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유영국의 ‘산’, ‘무제’도 산을 소재로 원, 삼각형 등의 기본 조형요소로 환원한 작품 세계를 드러내는 대표작이다.
삼성 컬렉션 기증 전시는 오는 9월 1일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이후 이건희 회장 컬렉션 섹션을 별도로 마련해 많은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즐기며 공유하기를 바랐던 고인의 뜻을 이어갈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기증 작품을 작가 연구의 기초자료로 삼고 미술사 연구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허백련
이건희 컬렉션, 허백련, 『산수화첩』, 전남도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허백련, 『산수화첩』, 전남도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허백련, 『산수화첩』, 전남도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허백련, 『산수화첩』, 전남도립미술관,
▣김은호
김은호 작 『꿩-쌍치도』
김은호,『 매란방』, 1966년, 비단에 채색, 164×7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실제 고 이병철 회장과 김은호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1955년 작 [천녀산화(天女散花)]는 화면 하단에 “이병철 선생이 감상하여 달라”고 적었다. 이병철이 호암이라는 호를 얻은 해인데 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호를 얻기 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1966년작 [매란방]에는 “호암 선생이 감상하여 달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김은호는 1929년에 중국에서 경극배우 매란방(梅蘭芳, 1894~1961)의 공연을 보고 스케치하였던 것을 사진을 참조하여 인물화를 완성하였다.
김은호는 미인도에서와 달리 눈썹 숱이 많으며 직선으로 그려지고 눈꼬리도 약간 올라가게 함으로써 남성인 매란방의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의상 표현에서 부드럽고 화사한 색채, 귀갑 문양이 별 모양과 어우러져 현대적인 느낌마저 준다.
김은호 생전에 발간된 화집에서 이구열은 1966년에 중앙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현대동양화 10인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라고 적었다. 2016년 11월 서울옥션블루 경매에 출품된 [매란방]은 화면 좌측에 낙관과 함께 “이당사(以堂寫)”라고 되어 있었다.
동일한 초를 사용하여 제작할 때에도 옷감의 문양을 다르게 표현하는 김은호의 특징을 두 [매란방]의 비교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가난한 집안이었던 김은호는 타고난 재주에 스승인 안중식, 조석진을 만나 좋은 교육 기회를 잡았다.
김은호, 『천녀산화』, 1955년, 비단에 채색, 119.5 × 4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이건희컬렉션 특별전>에 전시된 김은호의 『간성(看星)』, 1927,
Color om Silk, 138㎝ X 86.5 ㎝,
아름다운 미인이 주인공인 미인화는 근대에 와서 크게 유행했는데 때로는 '손끝'의 기교에 치우친 작품이라는 평가받기도 했지만 새로운미술 감상층의 미적 취향을 반영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간성>은 김은호의 현존하는 1920년대 작품으로 희소성이 있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하얗고 평면화된 얼굴의 여인상은 김은호가 일본 유학 이전 선보였던 사실감 있는 얼굴 묘사와는 대조적이다. 크고 헐렁한 듯 보이는 여성의 한복 저고리는 화장, 진동, 배래 등이 모두 길고 넉넉해지는 이 시기의 최신 유행을 반영하고 있다. 김은호는 호분을 바탕으로 청색과 적색의 전통 복식을 묘사했으며, 필선과 음영보다는 색면, 세밀한 문양 표현을 강조했다.
이처럼 잘 짜인 구도와 세련된 기교, 장식적 미감, 부드러운 필선, 화려한 옷감의 사실적인 해석은 회화적 안정기에 들어선 30대 김은호의 기량을 보여 준다. 특히 「간성」은 이용문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떠난 지 2년 만에 제작된 작품이다.
김은호는 양화의 사생 기법을 접목시켜 일본화를 발전시켜온 유키 소메이(結城素明)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다. 실제 이 시기 이후 김은호의 작품에는 일본화단의 새로운 경향이 반영되었다.
조선미술전람회 초기부터 여성 인물상을 출품한 재조선(在朝鮮) 일본인 작가와는 달리 국내 작가는 인물화의 출품이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점차 여성 인물상, 특히 실내 여성 인물의 출품이 증가하게 되는데, 김은호의 승무나 미인도 계열의 실내 여성상이 이러한 경향을 선도하여 관설전람회의 대표적인 미인상으로 자리잡았다.
이와 같이 「간성」은 해방 이전 국내 채색화단과 일본화풍의 관계를 보여주는 김은호의 초기 대표작 중 한 점이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는 ‘이당(以堂)’과 주문방인(朱文方印) 1과(顆)가 남아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간성(看星))]
김은호의 『간성(看星)』, 1927, Color om Silk, 138㎝ X 86.5 ㎝,
'간성'(요즈음은 잘 쓰지 않는 말로 마작으로 그날의 운세를 점치 것을 의미한다.) 마작으로 그날의 운세를 점치고 있는 여인(기녀로 추정). 1920년대에 그려진 작품으로 뒷편에 담배도 보이고 새장에 갇힌 흰 새도 보인다.
무릉도원을 그린 세 명의 작가
세 명의 작가가 표현한 ‘무릉도원’이 한 공간에서 걸렸다. ‘한국화의 대가’ 이상범의 ‘무릉도원’(1922)이 전시장 입구 왼쪽에 자리하고, 그것의 정면으로 1세대 여성 서양화가 백남순의 ‘낙원’(1936년경)이 걸렸다. 왼쪽으로 다시 돌아보면 6폭 병풍에 담아낸 변관식의 ‘무창춘색’(1955)을 볼 수 있다.
고운 비단 위에 채색된 이상범의 ‘무릉도원’은 1920년대 초반 안중식의 산수화풍을 그대로 이어받은 작품이다. “근대적 감각을 반영하지 않고 안중식의 초기 청록산수화풍을 계승한 한국적 실경 산수”다. 백남순의 ‘낙원’은 작가가 오산 시절, 전라남도 완도에 사는 친구 민영순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작품이다.
박미화 학예연구사는 “서양의 아르카디아 전통과 동양의 무릉도원, 무이구곡도의 전통을 결합한 것처럼, 동서양이 혼합된 독특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변관식의 ‘무장춘색’은 작가가 전라북도 전주의 완산을 여행하며 그렸다.
최경현 미술사가는 “마을 전체를 뒤덮은 적묵법이나 파선법으로 만든 장대한 이미지, 먹색과 갈색의 차분한 색조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작가의 경외심을 시각화했다”며 “지팡이를 든 노인과 머리에 짐을 얹은 소녀는 현재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그곳이 무릉도원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시각적 장치다”라고 설명했다.
▣이상범
1964년의 일이다. 현대화랑(현 갤러리현대)에 청와대로부터 문의가 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에 차관을 얻으러 간다. 그림 선물을 할까 하는데, 제일 잘 나가는 화가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당시는 서양화보다 동양화가 더 인기 있었다.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이 최고였다.
청와대는 그의 10폭 산수화 병풍을 60만원에 샀다. 당시 최고가였다. 표구한 그림을 전달하기 위해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다. 박 대통령이 그림 속 초가를 가리키며 “우리나라가 아직도 이렇게 못사는 줄 알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했다. 육영수 여사가 “우리 옛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깊이가 있으니 꼭 가지고 가시라”라고 하자 표정이 밝아졌다.
이 일화가 전하듯 1960·70년대 청전의 산수화에는 항상 초가가 보인다. 가로로 긴 화면에는 미루나무가 있는 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하단에는 비스듬히 개울이 흐른다. 길 위에는 짐을 이거나 등에 진 채 집으로 돌아가는 촌부가 있다.
물기를 듬뿍 머금은 필묵으로 언덕과 숲을 부드럽게 펴 바른 뒤 다시 강조하듯 바위와 언덕에 자신이 창안한 ‘청전준’을 써서 먹을 중첩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물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인상주의 회화처럼 멀리서 봐야 형태가 뚜렷해지는 청전의 산수화는 그래서인지 고향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을 건드린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는 청전의 이런 전성기 면모를 보여주는 ‘산고수장(山高水長)’(1966) 등이 당연히 들어있다. 이번 기증을 미술계가 더 반기는 이유는 희귀작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청전 양식’이 해방 이후에 정립되기 전인 20대 시절 초기 화풍을 알 수 있는 산수화인 ‘무릉도원’(1922)이 그것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2일 “유사한 그림의 존재를 알리는 신문기사 등 기록은 있지만 그림이 실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무릉도원’은 동양의 이상향인 복숭아밭 풍경을 10폭 병풍 형식에 담은 청록산수화다.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365~427)이 쓴 ‘도화원기(桃花園記)’를 상상해서 그린 시의도(詩意圖)다. 도화원기 내용은 이렇다. 길을 잃은 어부가 배에서 내려 산속 동굴을 따라 들어갔는데, 동굴 끝에서 어떤 동네가 나왔다.
닭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한가롭게 들리고 남녀가 모두 외계인 같은 옷을 입고 평화롭게 사는 마을이었다. 그들은 진(秦)나라의 전란을 피해 그곳에 온 뒤 수백 년 동안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은 어부는 돌아오는 도중에 위치를 표시했지만 결코 다시는 찾아가지 못했다.
청전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화면 오른쪽 아래에 배를 탄 어부가 동굴로 들어가는 장면을 찾을 수 있다. 대각선 방향으로는 어부가 동굴 끝에서 만난 복숭아꽃 흐드러진 마을이 묘사돼 있다. 복숭아꽃의 분홍은 산세의 초록과 대비돼 더욱 화사하다.
‘무릉도원’ 청록산수화는 이상범이 구한말 3대 화가였던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의 수제자였음을 증거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스승 안중식도 ‘도화원기’ 등에서 딴 비슷한 주제의 청록산수화를 남겼기 때문이다.
안중식은 자신의 호 ‘심전(心田)’ 가운데 ‘전(田)’자를 떼서 ‘청전(靑田)’이라고 호를 지어줄 정도로 제자 이상범을 아꼈다.
이상범은 17세에 이왕직(일제 강점기 이왕가와 관련한 사무 일체를 담당하던 기구)에서 운영하는 서화미술회에 들어갔다. 기성 화가들이 교수로 참여한 최초의 근대미술학교에서 두 사람은 교수와 제자로 만났다. 안중식은 이상범이 서화미술회를 졸업한 뒤에는 자신의 운영하는 화숙 경묵당에서 별도로 가르치기도 했다.
이상범은 1920년 불과 23세의 나이로 당대 쟁쟁한 화가들과 함께 뽑혀서 창덕궁 벽화 제작에 참여했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됐던 ‘무릉도원’은 그로부터 2년 뒤 미국 유학파 사업가 이상필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청전이 스승 안중식이 1919년 타계한 이후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이상필은 자신의 서대문 저택인 구 경교장에 기거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줬다. 이상범은 그 넉넉한 후원에 보답하기 위해 6개월 이상 공들여 ‘무릉도원’을 그렸다고 한다.
이상범, 『무릉도원도 10폭 병풍』(1922)의 왼쪽 위에 쓰인 글씨(제발)
‘무릉도원’의 왼쪽 위에 쓰인 글씨(제발)는 그림의 진가를 높인다. 활달한 필치의 이 글자들은 이상범이 아닌 이도영(1897∼1933)이 쓴 것이다. 이도영은 같은 안중식의 문하생이자 대선배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도영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글을 써줬는데, 몇 년 뒤 이 작품을 본 서예가 김태석이 ‘이상범의 그림과 이도영의 글이 더해진 합작’임을 그림 한 편에 밝혀두었다.
사실 서화가로서 이상범의 인생은 언제나 전성기라고 할만 했다. 1920년 창덕궁 벽화 제작에 뽑혔던 그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가 출범한 이래 내리 8회 당선됐다. 최고상인 이왕가상까지 받으며 20대 시절에 이미 ‘스타 작가’로 떴다.
대부분의 대가들이 그런 것처럼 청전 역시 안주하지 않는 작가였다. 전통의 계승자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화풍의 개척자이기도 했다. 청전은 1923년 노수현 등 또래들과 동연사(同硏社)를 조직해 ‘신구화도(新舊畵道)’, 즉 옛것을 토대로 새로운 그림 그리기를 추구했다.
서양화와 같은 사실주의 묘사에 서양의 공기원근법을 시도한 ‘초동’(1926)으로 조선미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즐겨 구사하던 뾰족한 침엽수 대신에 활엽수와 수풀이 있는 부드러운 둔덕을 그림 속에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에 어울리는 표현법을 찾아 독자적인 ‘청전준’을 개발했다.
미술평론가 송희경씨는 “이상범은 60년대 들어서는 추상화 경향을 보이면서 은은한 먹색과 감각적인 필치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자연의 넉넉함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출처 : 손영옥 국민일보 문화전문기자 :< 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 국민일보, 2021.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