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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을 오르며
김 선 구
높은 산은 우러러보면 신비함을 느끼게 되고, 낮은 산은 올라가면 사방을 관망해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소요산은 산수가 아름다워 그냥 거닐고 싶은 산이다. 경기도 북쪽 지역에 소재한 산이었다. 일찍이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 매월당 김시습이 이 산을 자주 찾아와서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 불리게 되었다한다. 그 이후 율곡, 성혼, 허목 등 당대의 문인 학자들이 빙문하여 그 절경을 노래하였다. 김시습이 지었다는 시 한수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 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소요산은 규모가 작지만 경기의 금강산으로 부를 만큼 아름다운 명산이었다.
지난 4월 동두천에 살고 있는 아이 집에 갔다가 무심코 소요산을 찾았다. 서울 지하철 1호선 마지막 종착역에서 바로 이어졌다. 백두대간에서 갈려진 한북정맥이 가지에 가지를 쳐서 이어진 산줄기가 동두천 북쪽에서 끝맺음한다. 제일 막내에 해당하는 산이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에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의 여섯 봉우리가 말발굽처럼 원형으로 이어져 내부 골짜기들을 감싸고 있었다. 최고봉인 의상대 높이가 587m이었으나 대부분의 봉우리가 500m이상이어서 형제봉들처럼 보였다. 기암괴석들이 봉우리를 이루어 만물상을 연상케 하고, 깊은 계곡에서는 오묘한 정취를 발산했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여 선녀탕을 만들고, 넘친 물이 흘러 폭포를 이루니 산수가 결합되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했다. 산은 물을 품어주고 물은 즐거운 듯 노래하며 흘렀다.
소요산공원길을 따라 한창 걸어간 다음 산 입구에 들어섰다. 산 속이라 하지만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계속 하여 산중턱에 이르니 소요산자재암(逍遙山自在庵)이라는 절이 나타났다. 요석공주와 인연으로 파계승이 된 원효대사가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초막을 짓고 수행하였던 곳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것이 원효폭포였다. 세찬 물줄기가 낙하하며 절규하고 낙차 한 수면위에 물보라를 일으켰다. 폭포 오른편에 원효굴이 있고, 그 위로 큰 바위에 ‘원효대‘라 하여 앉을 만한 공간을 만났다. 원효가 좌정하여 심신을 달래며 수도하던 곳이다.
여기에 와서 원효대사의 흔적을 더듬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였다.
일찍이 원효스님이 서라벌에 머무를 때 “누가 나에게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느냐. 내 기필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하고 노래하고 다녔다. 이 노래를 들은 태종무열왕은 자루 없는 도끼가 여인임을, 하늘을 떠받칠 기둥은 슬기로운 현자를 뜻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자신의 딸이자 과부였던 요석공주를 원효와 맺어주어 설총을 낳게 했다. 이후 원효는 자신을 소성거사라 하고 속세의 복장을 하고 다니며, 무애가(無碍歌)라는 노래를 지어 마을사람들을 교화하였다. 스스로 행한 파계였지만 중의 신분으로 여인을 가까이 했으니 심적 부담을 피 할 수 없었나본다. 아직 그의 마음속에서 정욕의 티끌을 다 씻어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속죄하는 양 표주박을 두드리고 춤과 노래를 부르며 거침없는 행동을 계속했다. 그런 모습이 좋아서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만 모여들자 광대들의 생계에 지장을 준다고 항의가 들어왔다. 이에 그는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소요산으로 들어와 불도에 정진하였다.
원효에게 파계란 지나가는 한 줌의 바람이었나본다. ‘파계를 하더라도 남 녀 간 정욕의 실상을 깨우쳐 보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는지 모른다. 파계한 다음 불도의 세계에 들어선 스님은 소요산에 들어와서 무섭도록 정진에 주력 하였다. 이에 관음보살이 여인으로 변신하여 그의 수행의 경지를 시험하였다. 비가 내리던 날 밤 약초를 캐다가 길을 잃은 여자가 원효의 초막으로 찾아들었다. 그리고 중생구제의 구실을 붙여 원효에게 접근하여 유혹하였다. 이에 원효가 이르기를 “마음이 생겨서 여러 가지 법을 낳은 것이니(心生則種種法生), 마음이 멸하면 또 가지가지 법도 없어진다(心滅則種種法滅). 나에게는 자재무애(自在無碍, 걸림 없이 자유자재로 행함)한 힘이 있노라” 하고 게송을 읊자 그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져 버렸다. 원효는 그가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알고 더욱 정진하여 덕을 쌓았다. 후에 후학들을 가르치고 훈계 할 생각으로 여기에 절을 지었다. 자재암이란 절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 하였다.
원효폭포 옆에 설치된 다리 속리교(俗離橋)를 지나니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가면 자재암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면 공주봉 방향으로 간다. 공주봉의 높이는 526m로 요석공주를 상징하는 봉우리이다. 원효가 소요산에 머무를 당시 요석공주는 설총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조그만 별궁을 짓고 살았다. 마음속의 정인이요 사랑하는 낭군을 찾아 왔건만 바위위에 앉아 목석이 되어버린 원효스님을 보니 아무런 내색도 할 수 없고, 아침저녁으로 치성을 올렸다. 이제 이들은 가족의 개념을 떠나 불제자로서 원효스님의 득도를 기원하였다. 이러한 보살행 원력에 힘입어 요석공주가 소요산의 안주인이 된 셈이다.
자재암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행길은 4개의 코스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가는 방향을 같았다. 먼저 하백운대를 거쳐 중백운대로 올라간 다음 각각 다른 코스로 갈렸다. 원효약수라는 작은 샘 앞에는 용기에 물을 담아가려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옆 청량폭포가 시원한 물줄기가 흘려 내리고, 앞에는 독립암이라는 거대한 바위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등산길은 가파랐다. 다행히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안전하게 만들었지만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올라 가다가 쉬기를 반복하였다. 한참 올라가니 숨이 가빠서 잠시 멈춰 계단에 앉았다. 맞은편에 멀리 공주봉과 의상대, 나한대가 차례로 올려다 보였다.
의상대는 의상스님이 머무를 장소를 상징한다. 의상과 원효는 사형제(師兄弟, 같이 공부한 사람) 사이이다. 훗날 원효스님은 의상스님과 함께 불법을 구하러 당나라로 가다가 밤에 해골(骸骨)에 고인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닫고 발길을 돌린다. 혼자서 당나라에 간 의상스님은 화엄교학을 배우고 돌아와서 부석사를 짓는다. 이때 의상스님을 연모했던 선묘낭자의 얘기가 부석사에 전해진다. 스님은 청정한 도리를 지키기 위하여 선묘낭자를 외면했으니, 선묘낭자는 용이 되어 이상스님을 배웅하겠다고 동해바다에 뛰어들고 말았다. 안타가운 일이다. 이상스님도 선묘낭자를 통하여 설총 같은 아들을 하나 두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부석사에 떠 있다는 돌 바위 전설을 접할 때마다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와의 로맨스를 들으며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소요산은 신들의 산책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 의상스님이 나한들과 요석공주를 대동하여 소요하는 곳이다. 상백운대, 중백운대, 하백운대에서는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자재암의 염불소리가 소요산 골짜기를 맴돌 것이다. 밤이면 선녀들이 선녀탕에서 목욕재개하고 부처님을 경배할 것이다. 이 성스러운 불국토를 함부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산에 오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온것이 불경스러웠다.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장비를 갖추어 다시 오기로 하고, 나의 산행은 하백운대에서 멈췄다. 다시 자재암으로 돌아오니 원효대사의 발자취가 더욱 빛이나 보였다.
첫댓글 경기도 소요산 말은 많이 들었는데 가보질 못했읍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것을 알게되었읍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한번 오르고 싶은 마음 간절한 소요산에 대한 상세한 소개 글 감사합니다.
원효스님의 心滅則種種法滅, 自在無碍 란 말에서 여인과의 접촉도 하나의 수행과정인 것 처럼 느껴집니다. 의상스님은 애초부터 여인을 통한 수행법을 멀리했으니 설총 같은 자식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두 스님의 수행법을 보면서 해탈의 경지가 어떠한가를 느끼게 됩니다. 새롭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되어 감사합니다.
글을 쓰시는 분은 한번씩 다녀오실만한 좋은 산인거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소요산, 산이름 절이름 그리고 주변 풍광이 모두 선승들의 삶과 어우러져 재미와 감동을 더하는 글입니다.
갑자기 한 번 가보고 싶은 산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태종 무열왕이 자신의 딸을 원효와 맺어주어 설총을 낳았다니 대승과 공주를 부모로둔 설총은 강수,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3대 문장가라고 하니 태종무열왕도 먼 날을 보고 원효를 사위로 삼았나봅니다. 소요산이 신들의 산책 장소라고 하시니 가고싶습니다.
막내 아드님 만나고 소요산까지 등산하여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것 같습니다. 소요산이 불교와 밀접한 산이고 원효대사가 주석한 산임을 알수있어 감사드리며, 언제한번 같이 올라가 봅시다. 잘 읽었습니다.
소요산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어 갑니다. 시간이 되면 등산을 하고 싶습니다. 원효와 의상은 유명한 고승이지만 각자 부처님께 다가가는 방향은 다른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 불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글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회장님의 글을 '문장'지에서도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해박하신 지식으로 꼼꼼하게 잘 풀어 내시는 글들을 보면서 수필의 깊이도 느끼게 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소요(逍遙)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거닐며 돌아다닌다>인데 이건 세속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명산 소요산은 고승들의 흔적이 새겨진 곳이기에 신들의 산책 장소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 산 언저리라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저가 소요산 산행을 하고 있는듯합니다. 소요산 간접산행 잘하였습니다.소요산과 원효대사에 얽힌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소요산, 저도 친척 집에 갔다가 한 번 지나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 읽어보니 아이들이 힘들다고 보채서 올라가 보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입니다. 선현들의 소요한 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어 집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의 수행법을 보면서 어렴픗이 해탈의 경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소요산 ,주변의 풍광과 선승들의 삶이 어우러저 재미있게 읽었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