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연식이 집 부근의 화순집은 대기자들이 많다.
연식이는 여수에서 일마치고 오느라 늦는다 하고, 예지는 연식한테 연락이 없다고 집이라 한다.
젊은이에게 에약하느냐고 물으니 기계에 가 예약대기를 하라고 한다.
난 촌놈이다.
내 앞으로 7팀이 있다.
바깥 의자에 앉아 한산시를 몇 개 읽고 있다.
자주 읽으면 다섯글자 오언 절구나 율시 정도는 저절로 읽어지겠지.
한참 후 예지가 와 전화로 찾아 일어나니 입구에 와 있다.
나도 모르는 한산시 이야기를 하며 연식이를 기다린다.
한팀 정도 남아있을 무렵 연식이가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온다.
들어가 칼국수를 3인분 주문하는데 일꾼이 많지 않겠느냐 하는데 우린 그대로 3인분 달라한다.
예지는 졸업 후 포천의 무용단에 취업해 일하며 돌봄교실 수업도 한다고 한다.
연식이는 고등학교ㅛ 2학년 때까지 부모님 속이고 기타를 배워 공연도 하며 성적은 꼴찌였다고 한다.
2학년 말에 공부해 사회학과에 들어가 학생회 임원도 했다한다.
그는 야구도 하고 축구도 좋아했다.
지금도 사회인 야구 투수를 하는데 여수에서 지내며는 골프연습장에 부지런히 다닌다 한다.
음식은 엄청 많다.
녹두나물이 많고 아래에 푸른 칼국수가 있고 삼계탕용 정도 되는 하얀 닭덩어리가 있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얇고 작은 피자도 하나 나온다.
절반도 못 먹고 포기한다.
통 먹지 않은 예지는 그래도 많이 먹었다고 한다.
둘 데리고 석봉 미술관이나 들러 다산독서기비도 읽어부고 싶은데
둘 다 찻집에나 가자고 한다.
난 웃으며 난 너희들을 산으로 안내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하고 그들 말에 따른다.
내차로 걸어가는 예지가 위태롭다.
2단 줄넘기를 가장 잘 하고 몸이 날렵한 아이였는데 20 후반의 한창 청년의 걸음이 너무 위태하다.
많이 아파 2개월 휴직했고 일터도 옮기겠다고 한다.
동구저수지를 지나 만연사 마당까지 올랐다가ㅏ 다시 내려온다.
온 지 오랜 주변도 많이 변했다.
다육이와 꽃이 가득한 찻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난 매실차를 마시고 연식이는 차갑게 자몽차를 마신다.'예지는 모과차를 마신다.
나를 도와주셨던 부모님들의 안부며, 우리반 아전대병원 이들의 궁금한 걸 묻는다.
둘 다 공부도 잘했던 아이들인데 정작 반 아이들 기억은 나보다 약하다.
난 전남 작은 학교에서 대부분 한학년 한학급인 학교에서만 근무하다
만연에서 한학년에 7학급인 6학년의 끝 학급을 담임했었다.
하긴 고흥동초에서도 6반까지이긴 했다.
연식이는 영업을 잘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적이 좋아 보너스도 받았다 한다.
예지는 무용보다 기악을 할 걸 이라고 한다.
세종으로 옮겼다는 시원에게 연식이가 전화하는데 받지 않는다.
학교에 근무하는 중이겠지.
내가 먼저 일어나자고 한다.
연식의 차 앞에 멈추니 예지도 내린다.
집앞에 데려다 주겠다 하니 이렇게라도 조금 걷겠다고 한다.
그러라 하고 차를 대원사로 운전한다.
산에 둘러싸인 대원사는 산그늘이 내려온다.
잿빛 옷을 입은 사람들이 웃으며 떼지어 간다.
템플스테이 하는가?
자진원오국사부도를 지나 장군샘을 본다.
차고수앞길로 수관정을 본다..
나무에 걸리 흐릿해진 경구들을 읽어보다 몇 개 찍기도 한다.
황정승의 영각을 지나 큰길을 벗어나 작은 전각들의 문도 열어본다.
황정승과 자진국사는 동향이라 황정승이 지원을 했다는데, 고향은 남원이겠지?????
자연과 문화재를 있는 그대로 내 눈으로 보지 않고 작은 헨드폰 사각형으로 본다.
어리석은 지식인 놀음이다?
첫댓글 대원사와 선생의 인연은 1419년 남원에서 유배되어 근신하시며 경서와 시운을 탐구하던 중 보성 대원사를 참배한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황희정승의 넷째 아들인 직신공이 보성땅에 내려와 살면서 황희정승의 영당을 대원사에 건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