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1"의 세계
1. 프랑스의 앙리1세는 구호정치의 선구자이다. 그는 농민들을 중산층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매주 일요일 저녁 밥상에는 모든 농가에 통닭 1마리씩을'이란 구호를 내걸었다.
2. 온천수 1kg중에 유황 1mg 이상을 함유하고 있는 온천을 유황천이라 한다. 탕에 들어가면 짙은 향내를 풍기며,
치료효과도 만성피부병. 천식. 부인병. 신경통. 생식기질환 등 광범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누를 사용해도 거품이 일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은반지 등의은제품은 화학 반응을 일으켜 새카맣게 된다.
유황온천은 피부다 약한 사람에게는 잘 듣지 않는다. 국내의 유황온천지로는 도고, 부곡, 백암온천 등이 있다.
3. 대한민국 여권 1호의 소유자는 음악가 안익태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타이프 용지에 손수 서명한
대한민국 여권 제1호 를 안익태에게 전달하였다.
4. 몸 전체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혀 끝이다. 혀 끝은 1mm 의 간격을 가진 두 개의 점을 정확하게 두 개로 감지해 낼 수 있다.
이에 비해 손 끝은 2mm의 간격이 아니고는 두 개의 점 을 감지하지 못한다.
5. 일반적으로 정상인의 경우 콜레스테롤 섭취는 1일 3백mg 이내로 권장되고 있다.
달걀 노른자 1개에 포함된 콜레스테롤 의 양은 270mg으로 그날 하루 필요량은 달걀 1개로 거의 충족 된다고 볼 수 있다.
6. 프랑스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의 죽음은 참으로 불운한 것이었다.
국왕의 처형은 의회의 투표로 결정 되었는데, 투표일 당일 의사당 관람석을 가득 메운 격렬한 군중들은 온건파 의원들에게 야유와 폭언을 퍼부었기 때문에
이 속에서 사형 반대 투표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투표 결과는 361대 360의 겨우 1표차로 사형이 우세했다. 그나 마 이 1표도 왕당파 의원 모리송이 기권한 것이었다.
그는 신으로 생각하는 왕을 재판할 권한이 자기에게는 없다고 선언하고 기권했다.
결국 1표 때문에 국왕은 처형되었다.
7.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는 매일 버선을 1켤레씩 갈아 신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에 1켤레씩 신어 버리는 버선은 일 년 간 모아 두었다가 나눠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 대상은 종실, 외척,고 관댁 또는 궁인들이었다. 이는 큰방상궁이 골고루 분배했는데 일반 궁녀들은 이것을 얻기가 굉장히 어려웠으며 환영받았다 한다.
그것 은 '저승길이 밝다'는 속신(俗信) 때문이었다.
8. 벌은 꿀 1kg을 채집하기 위해 50만 개의 꽃을 필요하다고 한다. 꽃의 꽃샘에서 화밀을 채집라여
자신의 소화효소로 모양을 바꾸어 저장해 둔 것이 꿀이다.
9. 연애라는 말은 1890년 『여학잡지』라는 월간지를 주관하던 이와모토 요시하루가 번역소설『골짜기의 흰 백합』을
평하면서 'fallen love with' 에 대신하는 말로 처음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연애라는 말이 일본에서 크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본 낭만파 문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기다무라 도오고꾸에 의해서다.
그는 1892년 2월 『여학잡지』에 "연애는 인생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 연애가 있는 다음에 인생이 있을 것이며 연애가 사라 진다면
인생에 무슨 뜻이 있으라."라고 그야말로 그 당시로서는 폭탄적인 글을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나혜석이 공식적인 제1호 사용자이다. 그녀는 동경 유학 시절 그곳 유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잡지『학지광』에 1914년 12월 「이상적 부인」이란 짤막한 글을 발표했는데 그곳에서 연애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 후 이광수가 1916년 12월부터 매일신보에 소설『무정』 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소설에서 연애하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였고
곧 이어 발표한 논설『혼인론』에서 연애하는 말의 사용은 물론 그의 연애관을 전개하였다.
10. 일본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람은 동그란 원을 가장 빨리 알아본다고 한다. 형태별 인지속도를 측정한 결과 원이 1위로 나타났으며,
이어 삼각 형. L자 모양. 사각형. 십자모양. H자 모양. 오각형의 순으로 나타났다.
11. 영어의 팔꿈치라는 낱말 엘보우(elbow)는 길이의 단위인 엘(ell)과 굽다, 휘다라는 뜻의 밴드(bend)가 결합하여 생겼다.
1엘(ell)과 같은 고대의 척도였고, 1큐빗은 팔뚝의 길이, 즉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였다.
일찌기 척도의 기준은 사람의 팔의 길이였으며, 야드(yard)는 영국 왕 헨리 1세의 팔 길이를 바탕으로 정해졌다.
첫댓글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