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
친애하는 돈 씨께.
데이비드 듀크 대통령 선거 캠패인에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버지의 책상에서 데이비드 듀크가 보낸 편지를 발견한 후, 우리 사이는 결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1992년에 『뉴욕 타임스』는 듀크 추종자들을 "인종적 우파"라고 설명했고 『로스앤 젤레스 타임스』는 듀크의 발언을 보도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비백인, 비기독교 민족 집단의 수가 늘면서 미국이 제3세계 국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듀크는 이런 언설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 [言舌~말을 잘하는 재주. 言說~말로써 설명함, 어느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음]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듀크는 그 어떤 주보다 워싱턴주에서 최저 득표를 보였다. 워싱턴주는 공화당원 중 고작 1.16퍼센트가 그에게 투표했는데, 그중 한 명이 아버지였다.
"아빠 이게 뭐예요?" 나는 편지를 집어들고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데이비드 듀크는 백인 우우월주의자 잖아!"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배를 세게 한 방 맞는 듯한 상태라 이 말도 겨우 나왔다.
아버지는 내가 느끼는 협오감을 무시한채, 미국이 지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 데이비드 듀크야말로 나라를 제대로 된 방햐으로 되돌릴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온몸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종차별 폭력이 기억도 있었지만, 이내 내가 가해자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 살 때 일이다,우리 동네 유일한 흑인 소년이 신문 배달하러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에 왔고, 나는 반갑게 문으로 달려갔다. "안녕, 깜**!" 그게 그의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부른다 순간 엄마가 나를 잡아당긴다. "정말 미안해요." 엄마가 아이에게 말한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정말 미안해요, 용서해주세요."
엄마는 내 어깨를 꼭 붙들고 말한다, "그레이스, 누구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야."
"아빠가 그렇게 부르잖아." 나는 나직이 말한다. 아직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타는 듯한 감각이 몸에 퍼져온다.
이 장면을 머릿속에서 되새기노라니,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단어인지 미처 이해하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내 입에 그런 말을 담게 했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고 부끄럽다.
아버지가 그 단어를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는지도, 그 소년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를 기억할까. 인생을 돌아봤을 때 기억나는 편견의 얼굴이 세 살짜리 동양인 소녀의 얼굴은 아닐까. 이어서 더 걱정스러운 생각도 떠올랐다. 혹시 이 소년이 오빠와 같이 고등학교를 다니다 자살한 크리스가 아닐까? 신문배달 소년은 오빠와 거의 같은 나이였고, 오빠가 다니는 고들학교에서 10대 흑인 소년은 크리스 한 명뿐이었다.
만악 내가 크리스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여러 일 중 작은 연결 고리라도 됐다면 어쩌지?
이 기억을 시작으로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엄마를 "몽골로이드"라고 불렀던 기억.
열 살인가 열한 살이었을 때다, 주방에 앉아 있는데 부모님이 다투기 시작한다. "왜 그런 말을 해?" 엄마가 말한다. "그만하라고 했잖아." 아버지는 맞 받는다. "당신이 어느 정도 몽고인종인건 맞잖아?" 그러면서 아버지는 나를 "베이비 몽골로이드"라고 부르며 농담한다.
엄마가 크게 화내며 소리친다. "그 말 쓰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해?" 아버지는 사과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능글맞게 웃는다. "얘 출생 증명서에 그렇게 쓰여 있는데 뭘." 나는 데이비드 듀크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손으로 구겼다. 다시 공기가 폐로 들어가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편지를 아버지에게 던지며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지금 누구더러 그런 얘기를 하는 건데? 아빠 딸이 아시아인이잖아요!"
아버지는 나를 뻔히 쳐다보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게..... 그게 무슨 소리냐? 넌.....넌 흑인이 아니 잖아."
"난 백인도 아니라고!"
아버지는 성인기의 대부분을 아시아에서 보내면서 아시아인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비백인 인종을 모두 종속시키려 하는 백인 우월주의 사명에 의도적으로 눈을 감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