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陶施樂)

[월몽]

도시락(陶施樂)

“이사님, 점심 식사는 어디서 하십니까?”

“저요? 도시락 싸 옵니다.”

“네? 아니 어떻게….”

“왜요? 좀 측은해 보이나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요.”

어느 날 점심 후 오후 일과 시작이 막 될 무렵, 느닷없이 협력업체 모 팀장이 던진 질문이다. 나의 점심에 대한 궁금증이 불현듯 일어났나 보다. 일흔 넘은 내가 젊은이들과 어깨를 함께 하며 일하고 있는 나의 근황에 대한 궁금증은 이것 말고도 더 있겠지만, 나이 어린 사람으로서 더 이상 꼬치꼬치 캐어묻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이 정도 선에서 끝난 것 같다. 그 질문을 듣고 있던 협력사 소장은 한술 더 뜬다. “그러지 말고 어이, oo 팀장! 묻지만 말고 한 번 근사한 곳으로 모셔 점심을 대접하시는 게 어떨까?” 주변에서 한바탕 웃음이 일었다. 오후 일과가 시작할 즈음이라 졸음이 확 달아났다. 특별한 의미의 대화도 아니었지만, 오후의 작업장 분위기가 일신(一新)되는 것 같았다. 이 팀장뿐만 아니라 근로자 모두가 가졌던 궁금증이 확 풀려 속이 시원하였으리라. 그렇게 하여 베일에 가려졌던 나의 비밀 아닌 비밀 하나가 풀렸다.

나는 점심 도시락을 싸간다. 구내식당도 있고 도시락을 주문할 수도 있지만, 나는 손수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싼다. 특별한 반찬은 없이 그저 내가 평소 좋아하고 먹고 싶은 반찬 위주로 준비한다. 대부분 밑반찬은 주로 아내가 만들어 주지만 어떨 땐 내가 요리한 것도 있다. 오늘은 쌀밥, 소고기 장조림, 달걀구이, 멸치볶음, 마늘장아찌, 배추겉절이 등 위주지만, 때에 따라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을 메뉴로 선택하기도 한다. 좀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내 입맛에 맞고 마음도 편하다. 이미 내 몸에 밴 습관이라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내가 나만의 도시락을 고집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1. 습관이 몸에 배었다.

2. 식당 음식과 주문 도시락은 양이 많고 짜고 맵다.

3. 음식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4. 과일과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

5. 과거 학창 시절 자취에 비하면 지금은 식은 죽 먹기다.

6. 분주한 식당보다 자연을 벗 삼아 조용한 분위기에서 천천히 식도를 즐기기 위해서다.

폴란드와 헝가리에 있을 때 해왔던 것이기에 도시락 만드는 것은 몸에 배었다. 그곳에서는 한국 음식 재료 구하기가 여기보다 어려웠지만, 그런대로 아이디어를 구상하여 이것저것 반찬 만든 경험과 훈련이 축적되어 있다. 나의 식사량에 비해 구내식당이나 일반 주문 도시락은 양이 많아 음식을 버리는 경우가 있어 아깝다고 일부러 욕심내서 다 먹다 보면 화장실을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몹시 성가시다. 또한 나만 그런지 몰라도 나의 입맛에 너무 맵고 짠 느낌이 든다. 이런 연유로 나는 나의 양에 맞게 과일과 신선한 채소를 곁들일 수 있어 도시락을 싼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의 자취생활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기만 하면 될 기성 식품이 마트에 가면 널려있을 뿐만 아니라, 식재료도 잘 다듬어져 있어 누구나 요리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 심지어 내 입맛에 맞는 도시락 싸기가 쉽지 않았던 폴란드와 헝가리 같은 곳에서도 능히 해냈는데, 어찌 한국에서 못할 수가 있으랴.

내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경제적으로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또한 계절적으로 얼마나 좋은가. 체감온도도 적당하고 파란 나무와 울긋불긋 봄꽃이 만발한 근린공원에서 식도락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복잡하고 분주한 일반 식당에서 쫓기다시피 할 정도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며 식사하는 것보다 조용한 그늘에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며 식사하니 얼마나 여유로운지 모른다. 우리나라 근린공원 수준은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잔디 위에서 가끔 도시락을 즐겼던 추억을 떠올리면 식감은 더 좋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정자로 피하거나 차 안으로 들어가서 먹으면 운치(韻致)가 더 있다. 추억의 도시락을 혼자 즐기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역시 락고불고(樂孤不孤, 고독을 즐기면 외롭지 않다)의 실천이다. 도시락은 순우리말 단어다. 나는 이 단어를 좀 더 의미 있게 하려고 나만의 한자어로 이렇게 꿰맞추어 그 뜻을 새겨본다. 도시락(陶施樂, 배부른 즐거움을 베푸는 질그릇)이라고. 이 세상에 먹는 즐거움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 있을까. 食道樂….

(2024. 05.14)

[멋진사랑]

우리나이에 일이있고 활동하여 입맛
이 좋다는것은 세상모든것을 다 얻
은것인봐 월몽은 참 복도 많아요

[순우]

월몽은 진정 알뜰한 당신이네요.
귀찮기는 하지만 내 입맛에 맛는 간소한 식사를 즐길 수 있지요. 외식에 길들여진 내가 호주 외교부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상당수의 직원들이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는 걸 보았어요. 시간도 아끼고 식대도 아껴서 휴가비에 보태기 위해서라고 어느분은 얘기하더군요. 실속있는 선택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송백松柏]

월몽의 그런 모습이 부럽네요. 부엌을 점령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