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도 잘 하면 돈을 번다.' 얼마전 미국의 모기지 제도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 느낀 함축적인 문구다. 굳이 책을 들추지 않더라도 최근 몇년 동안 "A씨네 집은 3만달러 주고 집을 샀는데 1년만에 10만 달러 넘게 올랐데"라는 식의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으면서 이미 주변에서 체험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외상은 물론 융자를 뜻한다. 융자는 사실 외상의 고급스런 표현에 다름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주택경기 활황이 장기화되면서 특히 변동 주택융자(ARM) 상품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또 실제로 거래돼 왔다. ARM 융자는 바로 외상의 규모를 늘리는 주택융자 방법. 다운 페이먼트는 줄이고 외상의 규모를 늘리면서 부수적으로는 부동산에서 말하는 레버리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그 효과는 2000년대 들어 집 값이 계속 오르면서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러한 ARM 융자가 고의적이지는 않지만 인종차별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식의 기사가 최근 보도돼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출생한 바이어들은 2000년대 초반 ARM 융자를 많이 받은 반면 소수 민족들은 이 보다 한 템포 느린 2004~2005년을 즈음해서 크게 늘어났다"는 내용이 그 골자다.
외상과 융자 문화에 익숙한 미국 태생 바이어들은 2000년대 초반 이미 부동산 시장이 개인의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 과감히 뛰어들었지만 소수계 이민자들은 주춤거리고 다소 늦게 반응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미국 태생 바이어들은 ARM을 적극 이용해 퍼스트 바이어는 최대 액수의 융자를 받아 에퀴티를 눈덩이 처럼 불릴 수 있었고 또 기존 주택 소유자는 세컨드 홈을 마련해 놓았다.
물론 이자의 향배를 단언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록 최근에 ARM으로 주택을 구입했다 하더라도 절대 "손해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구입한 경우에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한 박자 늦은 것 만큼은 사실이다.
한국 역사를 들춰보면 이곳 한인들도 뒤늦게 ARM 융자에 합류한 소수계 이민자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60~70년대 산업근대화 과정에서 유교적인 사고방식 까지 겹치면서 한국에서는 소비는 죄악 저축은 미덕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다.
주택구입 과정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저축을 통한 내집 마련이 일반화돼 있다. 적금 등을 통해 은행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목돈으로 집 값을 지불하는 것이 정석이다.허리 띠를 졸라매서 겨우 40대 쯤에 내 집을 마련하는 사이 성장한 자녀들은 밖으로만 나다니거나 출가할 시기를 맞게 된다. 자녀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키워온 내 집 마련의 꿈은 목적 상실의 허전함에 빠진다.
반면 미국에서는 대부분 외상으로 먼저 주택을 구입한다. 외상이 제도적으로 잘 발달돼 있고 바이어들은 이를 현명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외상을 통해 삶을 먼저 즐긴다.
미국을 소비경제라고 말한다. 전체 경제규모중 60~70%가 소비부문에서 나온다. 소비경제에서는 필연적으로 외상 소비를 제도적으로 장려한다. 이는 미국 제도의 패턴에 가깝다. 그러나 이를 잘 활용하면 생활과 재정이 풍요로워진다.
특히 최근 부동산 경기의 사이클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소비경제와 외상문화를 잘 이해하고 현명하게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