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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 ‘적과 흑’(새로읽는 고전:16)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여전히 아름다운 까닭
프랑스 연애심리 소설의 최고봉,낭만주의 극성기에 사실주의 문학의 문을 연 선구적 작품,풍속묘사에 충실한 1830년대의 연대기,신분의 벽을 넘어 사회와 대적한 한 개인의 모험을 다룬 교양소설…
‘적과 흑’을 정의하는 표현들은 다양하기만 하다.하지만 이 작품은 서가를 장식할 뿐인 지난 시대의 작품이 아니다.외로운 개인이 사회와 만나는 순간 반복되는 현장을 그리고 있는 오늘의 작품이다.
○영웅이란 누구인가
영웅이란 누구를 이름인가? 먼 옛날 사람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 지상에서의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올림포스로 올라간 존재를 영웅이라 했다.태생의 남다름과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의지와 능력으로 필멸라는 인간의 조건을 극복한 신인(神人)을 이름이었다.
그러나 신화의 시대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시대,더 이상 몽상이 허용되지 않는 시대의 영웅은 어떤 존재일까? 섭리일 수 없는 힘이 개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이 세계에 도전장을 던지는 순간 한 인간은 영웅의 몸짓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그 몸짓이 비극을 잉태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불길을 마다하지 않는다면,바로 그가 영웅이 아닌가?
구체제의 엄격한 신분 질서가 복원된 시대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쥘리엥 소렐이 영웅으로 숭배한 것은 나폴레옹이었다.프랑스 본토도 아닌 의지의 섬에서 평민의 신분으로 태어나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온 유럽을 복속시킨 나폴레옹은,자신이 운명의 주인이기를 열망하는 모든 아들들의 생의 목표를 실현해낸 숭배의 대상이었다.오직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적대적이기만 한 세계를 지배했던 한 인물이 왕정복고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영웅이었고,그 우상의 모습처럼 이카루스의 비상을 꿈꾸다 추락한 이야기가 바로 스탕달의 ‘적과 흑’이다.
○출세지상주의와 위선
수줍음을 타는 쥘리엥은 거칠기만 한 아버지와 형들로부터 미움을 사는 소년이었다.그러나 라틴어 성경을 모두 외울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지닌 이 미소년의 내면은 작가 스탕달의 기질처럼,격렬한 열정으로 넘치며,강렬한 감동을 추구하고,방종과 무절제를 옹호하며,공상과 모험에 빠져드는 자기중심적 세계였다.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수 없는 그는 출세하지 못할 바에는 몇 백번을 죽고 말겠다고 되뇐다.결국 순진무구함으로 레날 부인의 모성애를 자극한 소년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혹은 자신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부인의 침실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간다.또 명민한 두뇌로 심리분석에 능한 그는 욕망마저도 출세를 위한 철저한 계산 속의 하나의 항으로 환원하며,도도하기 짝이 없는 후작의 딸 마틸드를 공략해내고 만다.레날 부인과 마틸드 사이에서 진정성과 위선을 넘나드는 사랑의 유희를 마다하지 않은 쥘리엥은 결국 레날 부인의 편지로 이카루스의 비행에 종지부를 찍게되고,격분한 그는 레날 부인을 저격한다.
○타락한 서사시는 아닌지
자신을 브장송의 수도원과 파리의 구체제 정치세력이 획책한 음모의 희생양이라 주장하며,재판정에서 신분질서의 타파를 역설하는 쥘리엥은 결국 감옥에서 레날 부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느끼며 평온한 죽음을 선택한다.자신의 목숨에 연연하기보다는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선택한 것이다.
쥘리엥은 분명 영웅이 아니다.하지만 그가 시도한 이카루스의 비상은 먼 옛날 영웅담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가족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남다른 능력과 그로 인한 시련,신분 상승을 위한 끊임없는 날갯짓,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기존 질서와의 대적 등등.그러나 인류의 구원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를 위한 광란의 질주를 감행하는 쥘리엥의 이야기는 차라리 타락한 서사시라 불러야 할 것이다.
신이 의지와 능력은 주었으되 그것을 실현할 기회를 주지 않고,넘치는 힘은 주었으되 그것을 제어할 자제심과 행동 지침을 주지 않았을 때,영웅일 수 없는 아들은 신과 부모를 원망하며 세계와의 무모한 싸움을 시작해야 하고,타락한 서사시를 써갈 수밖에 없으리라.그러나 그 무모함이야말로 백지 상태로 이 세상에 던져지는 모든 개인이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벌이고 있는 드라마의 원동력이고,곧 생명력의 또 다른 이름 아닌가?
<이건우 서울대 불문학과>
https://naver.me/Fbz1NWJW
스탕달의 적과 흑에 대하여 2 - 적과 흑이라는 제목과 그 시대.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
3) 『적과 흑』이라는 제목
① 복식 : 법관들의 법복 색인 <적>과 수도회의 <흑>이라는 주장.
② 정치적인 의미에서 성직자 계층을 의미하는 <흑>과 쥘리엥의 공화적 지향을 의미하는 <적>이라는 주장.
③ 소설의 모두, 제 1부 5장 쥘리엥이 레날씨의 집으로 가기 전에 잠시 성당으로 들어간다. 루이 장렐(Louis Janrel)이라는 인물의 죽음과 관련시킨 해석: 성당안의 분위기는 이렇다. “모든 유리창은 진홍빛 천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 때문에 햇빛을 받자 더없이 장엄하고 종교적인 성격의 현란한 빛의 효과가 이루어지고 이었다.”… “기도대 위에서 쥘리엥은 읽어달라는 듯이 펼쳐져 있는 인쇄된 종이 하나”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브장송에서 처형당한 루이 장렐의 최후의 순간과 처형의 상보...’라고 적혀있다. 쥘리엥은 생각한다. “그의 이름은 내 이름과 끝 글자가 같구나...” - “교회를 나서다가 쥘리엥은 성수반 곁에서 피를 본 듯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 뿌려놓은 성수였다. “창문에 드리워져 있는 붉은 커튼의 반사가 그것을 피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교회안의 붉은 색과 “피”는 쥘리엥의 비극적 최후를 예언한다는 해석.
④ 신분상의 의미 : 붉은 색 군대 제복을 상징하는 군인신분(또한 쥘리엥의 우상인 보나파르트는 군의 기원을 가진 레지옹 도뇌르를 창시함으로써 그 색깔의 상징적 의미를 극대화했다)의 <적>, 왕정복고 시대 지배세력의 일부인 성직 신분, 수도회의 <흑> : 이쪽이 더 설득력이 크다. <적>의 세계에 대한 당시 청년들의 동경과 잃어버린 환상, 그리고 <흑>의 세계인 현실과의 타협과 야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나폴레옹 1세 제정시대였더라면 쥘리엥은 군인이(적)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왕정복고 시대. 교회가 뒷받침하는 세력의 시대(흑)다.
4) 소설과 그 시대 : 정치소설로서의 『적과 흑』
*문학과 정치 : “1830년 연대기”
“(여기서 작자는 한 페이지를 점선으로 채우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하면 맵시가 없을 것이며 이처럼 경박한 글에서 맵시를 결한다는 것은 곧 죽는 것입니다 하고 발행자가 말했다. - 그러자 작가가 되풀이했다. 정치란 문학의 목에 매단 돌과 같아서 6개월도 안 되어 문학을 침몰시키고 맙니다. 상상력의 흥미 가운데 끼어드는 정치는 연주회 도중의 권총소리와 같습니다. 그 소리는 격렬하지도 못하면서 찢어지는 듯한 소음입니다. 그 소리는 어떤 악기의 소리와도 조화되지 못합니다. 이런 정치는 절반의 독자를 극도로 불쾌하게 할 것이며 아침신문에서 훨씬 더 전문적이고 격렬한 양상의 정치기사를 읽은 다른 절반의 독자를 지루하게 할 것입니다. - 발행자가 다시 의의를 제기했다. 당신의 인물들이 정치얘기를 하지 않으면 그들은 1830년대의 프랑스인들이 아니며 당신의 책은 당신이 주장하듯이 하나의 거울이 되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쥘리엥 소렐이라는 19살 청년이 당대 정치 사회 경제적 현실의 중심을 관통하는 동안 그의 순진한 눈에 비친 사회구조와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젊은이가 그 비루한 사회현실(시골 베르에르, 브장송, 파리라는 3가지 공간, 귀족, 성직, 산업 부르주아, 소시민 등의 계층)과 부딪치면서 세상을 배우고 성숙해 간 끝에 마침내는 23살에 이르러 비극적 최후를 맞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인생학습은 이 청년을 순진함과 맹목으로부터 환멸과 쓰디쓴 세계 인식으로 인도한다. 비천한 집안출신으로 야망에 부푼 이 청년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문득 프랑스 19세기 초 왕정복고 시대 사회 속에 던져진 백지상태의 존재다. 그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역행하는 노인 정치 사회를 고발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것이다. 『적과 흑』은 세계의 가혹함과 그 세계와 대결해야하는 주인공을 등장시킨 19세기 최초의 소설 중 하나다. 주인공 쥘리엥은 모든 능력을 다하여 우뚝 일어서고자 한다.
최악의 경우에도 패자로서의 고귀한 풍모를 드러낼 것이다. 그의 상상력은 “현실의 철칙”을 배운다. 마음속의 시적 세계화 현실 사회라는 산문적 세계를 보여준다.
쥘리엥 소렐의 모험은 1826년 9월말에 시작하여 1831년 7월말에 끝나고 있지만 작품에는 7월 혁명과 그 결과로 이루어진 칠월 왕조에 관한 언급이 없으므로 이 작품은 1830년에 그 종말을 고한 왕정복고기에 국한된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소설에 붙인 부제 “1830년의 연대기”라는 표현에는 왕정복고라는 역사적 정치적 시대에 대한 작가의 의도적 관심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소설의 주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https://naver.me/xc9UkEYY
스탕달의 <적과 흑> -
스탕달은 이 소설의 제목이 <적과 흑>인 이유에
대해 밝힌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저런 해
석들 중에 '정설'이 존재하는 형국이다.
혹의 상징
소설의 곳곳에서 검은색은 주인공 쥘리엥의 신분과 그가 처한 상황을 상징한다. 귀족 여인들과의 이런 저런 스캔들에 휘말린 쥘리엥은, 어찌 됐건 사제의 길을 택한 신학도였다.
적의 상징
빨간색이 지니는 상징성은, '정설'의 해석대로라
면, 힌트는 소설의 초반에 제시되어 있다. 어두운
성당 안으로 들어선 쥘리엥이 성수대에 담긴 성수
가 핏빛을 띠고 있는 광경에 전율을 일으키는 장면
이 있는데, 이는 창문의 진홍빛 커튼을 투과한 빛
이 성수대를 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피
의 혁명을 상징하는 하나의 복선이었다는 것. 쥘
리엥은 왕정복고를 꾀하는 기득권에 저항한 공화
주의자이다.
이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실직자가 되어버린
스탕달 자신의 처지이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나
폴레옹 이외에 자주 언급되는 또 다른 인물이 바
로 볼테르이다. 루이 16세로부터 자신의 왕국의
무너뜨린 주범으로 지목당한…. 스탈당은 계몽주
의의 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렇다고 왕
정복고의 시도 그 자체를 비판한 성향도 아니다.
몽매한 민중을 위한 상류층의 각성을 촉구한 입
장, 민중을 대변하지는 않았지만, 민중의 편에 서
서 민중을 사랑하긴 했던, 귀족적 삶을 추구한 낭
만주의자였단다.
실상 스탕달에게는 민중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정
체가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상관없는 문제였던 듯
하다. 그러나 당대 상류층은 그저 자신들이 잃어
버린 특권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었고, 스탕달은
없었다.
그 취지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성경의 신은 아냐. 잔인하고 복수욕에
가득 찬 그 옹졸한 폭군은 아니지. 차라리 볼테
르의 신, 정의롭고 선량하고 무한한 신이겠지."
기득권을 대변하는 당대의 기독교였던 터라, 왕정
복고의 시도 역시 교회세력의 원조를 딛고 이루어
지고 있었다. 사제의 직책을 종교적 소명보다는
사회적 계급으로 인식하고 있는 쥘리엥의 야망이
이 시대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쥘리엥이 하사의
계급에서 황제로 올라선 나폴레옹의 신화를 동경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귀족들은 그런 계
층 이동이 불가능했던 대혁명 이전의 시대로 회귀
를 꿈꾸고 있었다.
<적과 흑>의 첫 페이지는 프랑스의 작은 소도시
인 베리에르가 지닌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해 놓았
는데, 현대소설의 효시가 되는 기법이기도 하단
다. 첫 페이지에 배치한 아름다움의 풍경은, 작은
시골 마을에까지 침투해 있는 권력욕과 부조리에
대한 반동적 장치이다. 주인공 쥘리엥이 사제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그저 시골 목수의 아들로 평
생을 살 수만은 없다는, 신분 상승에 대한 갈망이
다. 그래서 틈틈이 라틴어를 익혔고, 제법 월등한
수준이었기에 베리에르의 시장인 드레날 씨의 가
정교사로 발탁된다. 이 또한 상류층의 과시욕에
서 비롯된 행운이었다. 이 소설의 결말을 어찌 해
석할 것이냐에 따라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
었던 불운이었는지도 모르고….
차라리 볼테르의 신을 믿을 만큼, 그다지 독실한
신앙은 아니었지만, 욕망을 이유로 인간으로서의
도리까지 저버리는 인성도 아니었다. 쥘리엥은 가
정교사로서 성실과 신뢰를 인정받으며, 소도시 나
름의 상류사회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 휘
말린 시장 부인과의 스캔들이, 그가 겪게 될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다. 귀족 출신의 드 레날 부인에
게 결혼은 그저 가문의 이해관계가 얽인 결합에 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교사로 들어온
10살 연하의 청년에게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느
껴버린 것이다. 태생적 신분으로부터 어떻게 벗어
날 것인가에 대한 궁리만 하던, 그러나 귀족계층
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청년에게, 귀족 부인
은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헌신적이
고 지고지순한 그녀의 성품에 쥘리엥도 점차 마음
을 열게 된다.
베리에르를 떠나 파리로 오게 된 연유도, 비극적
결말이 뻔한 그 스캔들로 인해서이다. 그러나 파
리에서도 쥘리엥의 운명을 쥐고 있던 사건은 귀족
여인에 의해 벌어진다. 신학교 교장의 추천으로
드 라 몰 후작의 비서로 들어가게 된 쥘리엥을 사
랑하게 된 후작의 딸이 소설의 후반부를 이끄는 동
력이다. 후작의 배려로 파리의 사교계에 출입하
게 된 줄리엣은, 귀족사회가 권태에 허덕이는 집
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혁명의 트라우마로
인해, 어떤 비전을 늘어놓는 담론 자체가 급진적
이어 보일 수 있다는 피해의식들 사이에는, 진심
을 겉도는 교양의 언어들만 유령처럼 떠돌고 있을
뿐이다. 마틸드는 귀족 사회의 권태에 환멸을 느
끼는 귀족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비서로 채용된
쥘리엥이 지닌 보나파르티스트의 저항정신에 매
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책도 마
침 볼테르의 것이었다.
귀족 사회의 가식엔 진저리를 내고 있던 터, 또한
맹랑한 구석이 있는 마들드였던지라, 쥘리엥은 그
녀의 환심이 자신을 조롱하는 장난이 아닐까를 의
심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진심을 확인한 후에
는 다시 귀족과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변덕이 축
끓듯 한 귀족 처자의 사랑법이었다. 쥘리엥의 저
항정신에 매료된 마틸드는, 때론 쥘리엥에게 굴복
한 자신이 경멸스러워 그를 멀리하기도 하고, 때
론 쥘리엥이 자신에게 굴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도 사랑의 감정이 반감되는 걸 느꼈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쥘리엥은 지고지순했던 레날 부인
과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마틸드를 비교하기 시작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귀족 연인과의 사랑을 신
분상승의 도구로 생각하진 않았다. 쥘리엥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