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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바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국민 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고려대 교수 최영호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해사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이 선생님의 첫 희곡집 『바다 위에 뜬 별』 문학평론을 할 때 처음 뵈었지요. 무척 부지런히 사신 흔적이 많이 묻어 있습니다. 손꼽아보니 무려 25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보내 주신 책 3권과 한국-중국 북경을 오가며 생활하신 지난 삶의 흔적들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통일의 바다』를 위시해 책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책을 받아든 손이 부끄럽지만, 세 권의 책은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통제사 330년사-한국항일해전사’라는 묵직한 부제가 달린 학술서 『대한해협』엔 역사물을 뒤척인 손길과 그 시간의 깊이가 아득했답니다.
또한, 이런 학술적 성과를 토대로 발품과 지적 근육을 발현해서 과거 통제사로 재임한 209명 한 분 한 분의 삶을 찾아내어 시조 형태로 갈무리한 시조집 『통일의 바다』도 각별했습니다. 이를 우리나라 통제사 만인보(萬人譜)로 봐도 손색이 없을 창작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낸 희곡집 『통영교방』도 함께 보내주셨지요.
제목에 적힌 ‘교방’이란 의미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뜻이 달랐습니다.
‘교방’은 옛날 기녀들에게 가무를 가르치는 관청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이 관청을 통해 길러진 예술과 기예의 품격을 재인식하셨습니다. 이런 각별한 인식과 관심을 나고 자란 고향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예술학교’의 예술교육과 문화의식으로 부활시킬 것도 소리 높여 역설하셨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학교를 늘 가슴속에 깊이 새기며 60평생을” 사셨다는
이 선생님의 심뇌어린 고백에서는 지난한 일상적 삶의 깊이도 느꼈답니다.
통영에서 충무로, 다시 통영으로 고장의 원래 이름을 되찾기까지 통영의 밑자리엔 ‘전통과 예술의 혼’을 지킨 분들의 기백이 있다는 걸 압니다. 전통은 지키되 고착된 꼰대 정신은 타파하려는 자유정신이 통영의 자존심입니다. 말씀대로 “없는 문화 콘텐츠나 개발 가능한 콘텐츠 발굴”도 중요하지만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통영의 위대한 콘텐츠”를 간과하면 안 된다는 이 선생님의 강조와 경고성도 계승해야 할 통영의 자존감과 직결됩니다.
생전에 박경리 선생은 통제사 이순신을 위대한 예술가로 칭송하셨습니다.
통영사람들이 원주 <토지문학관>까지 애써 찾아가 모시려 해도 아니 오시다가
『토지』 집필을 마친 후 직접 통영중앙시장을 찾으셨을 때 하신 말씀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하신 통제사 이순신에 대한 박경리 선생의 말씀을 저는 두 가지로 새깁니다. 그중 하나는 ‘싸워서 이기기보다 이기고 싸워야 한다’는 이순신의 전략입니다. 이순신의 전략은 전술적 차원에서의 전투가 아닙니다. 이 전략에는 예하 병졸들의 짜투리 말 하나, 통영 바다의 물살과 주변의 지형지물, 바다 건너 침략한 왜선의 뾰족한 배 밑창까지 다 포함됩니다. 첨저형 배는 회전반경이 커서 쉽게 돌릴 수 없고 선수선미 포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반면 밑창이 평평한 판옥선은 쉽게 돌릴 수 있어 앞뒤 포의 변경도 수월합니다. 최근 이순신 영화 3부작 중 하나인 <한산>에 나오는 학익진에서도 목격됩니다.
학익진은 판옥선의 장단점을 헤아린 전략이자 연안에서 유리한 전술입니다.
이런 전략은 이미 만들어진 전투 매뉴얼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전술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가장 적합한 전술로 바꾸고 통영바다만의 공간적 특성을 재발굴하여
변화무쌍한 전투에 적용시킨, 그야말로 ‘예술적 차원의 전략’입니다.
오늘날 기술적 테크닉을 뛰어넘는 것이 예술가의 창의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순신과 같은 위대한 장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박경리 선생 자신을 포함해 통영의 후대 예술가들이 나올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정신과 혼이 파괴되는 집안의 사람으로부터는 위대한 예술가가 나오기 힘듭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 미학자 아도르노가 유럽지성계에 던진 말도 그러합니다.
“과연,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문학은 가능한가?”
이 의미심장한 말은 박경리 선생이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통제사 이순신과 같은 장수가 통영을 지켜줬기 때문에
통영에선 수많은 예술가들이 영혼을 다치지 않았고
그분들의 살아있는 예술정신이 각종 창작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선생님의 학술서와 통제사 209명의 삶을 시조로 쓴 서사적 만인보는
통영의 공간적 장소성과 통영에 깃든 심층적 예술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선생님의 책은 참으로 무겁습니다.
책이 무거운 까닭은 책의 물리적 부피나 형태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책에 투영된
이 선생님의 고뇌의 무게 때문입니다.
기억에서 사라지고 잊힌 옛 역사자료를 일별하며 보낸 시간의 무게 때문입니다.
윤이상을 비롯한 여러 통영 출신 예술가들이 물려준 예술적 기량과 품격을
새롭고 창의적인 형태로 심화 확대하려는 이 선생님의 열정의 무게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무거운 책을 받아든 저의 손이 부끄럽습니다.
이런 책의 무게는 제가 살아온 삶을 되짚어보게 합니다.
이국민 선생님! 살아간다는 것은 곧 숨을 쉰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사람의 생명은 날숨과 들숨 바로 그 사이에 있고,
우리의 목구멍[喉]은 그 숨결이 드나드는 통로입니다.
사람들이 생명을 말할 때 ‘목숨’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무릇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저마다의 존재는 살아 있습니다. 문제는 매순간 ‘어떻게 사느냐!’ 입니다.
이 선생님의 책은 이를 자극합니다. 저의 소박한 생각입니다만,
산다는 것은 희망을 자기 손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요?남이 만들어 주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만드는 것이 진짜 희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건이 충족되기까진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아니, 그때가 올 수 있을까요?
모두가 만족할 정도로 오긴 힘들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여건을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이 희망으로 가는 첩경입니다.
한국시인들 가운데 이 선생님처럼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시인은 드뭅니다.
중국의 지성 루쉰[魯迅]이 희망과 관련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희망은 ‘길[道]’과 같은 것이다.
태초에 세상에는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길은 그 뒤에 생긴다.
맞습니다. 길은 앞이 아닌 뒤에서 생기고, 바다는 물길과 물길로 이어집니다.
다만, 앞서 걷는 사람들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있을 때 길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저술한 책을 통해 바라는 이 선생님의 예술정신과 통영사랑도 그럴 거라 봅니다.
나눔의 경계 없이, 아니 나누려 해도 나누어질 수 없는 통영바다처럼,
통영사람들이 추구하는 바가 허물없이 하나로 융합되어 다채롭게 창조될 때
이 선생님이 ‘통일의 바다’를 통해 바라는 바도 심화 확대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껏 걸어온 길을 일일이 증명하려고 애쓰기보다
책을 읽고 느끼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적지 않을 터이니 뚜벅뚜벅 걸으소서.
진짜 희망은 매순간 우리의 삶이 의미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 증명보다 살아감이 더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선생님의 일상적 삶의 경이로움을 위해 멀리서나마 기원하겠습니다.
앞서 낸 두 권의 책과 이번 『통일의 바다』 출간을 함께 축하드립니다.
늘 건안, 건승하소서.
최영호 드림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해사 명예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