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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
+ 본 문 : 빌립보서 2장 5절- 11절 (신약 319쪽)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아멘!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나, 신체에 대한 내용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단지 변화산에서 변형하신 예수님의 얼굴 모습을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 고,
하신 말씀과 요한계시록에서 “그 얼굴이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그리고 “그 얼굴은,
해 같고.” 라는 표현을 한 것이 전부입니다.(마태 17:1 / 계시록 1:16, 계시록 10:1)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네게 배우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함을 예수님 자신에게서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세익스피어는 ‘여자의 마음을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다.’ 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그래도 뿌리는 땅에 굳게 박혀 있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 가릴 것 없이 뿌리 채 뽑혀서,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잡초와 같습니다.
이해득실을 따라 지조도 없이, 의리도 없이, 심지어는 신앙도 없이 이리저리 떠다닙니다.
그래서 꼭 부르고 싶은 찬송이 있습니다. /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우리가 마음을 같이하여 사랑하면 행복할 줄 알면서도 마음을 같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와 불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랑을 좋아하고, 자기 우월감, 자기 집착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자신의 처지만을 생각하므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이제 우리 하나가 됩시다.’ ‘우리 마음을 같이하여 사랑합시다.’ 하고,
외쳐도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양보를 한다고 하나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 되는 비결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고 했습니다.
온 가족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온 가족이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온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 교회가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우리가 결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지 않고서도 순전히 인간적인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면,
그 하나 됨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깨집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전혀 품지 않고서,
순전히 악한 일로 하나가 되었다면, 그 역시 오래가지 못하며, 반드시 분열되고 맙니다.
진리의 복음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만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의 마음을 모으고, 서로 양보하면 하나 되고,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 많다고, 한집에 산다고, 하나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고,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만이 하나 될 수 있고,
오래 오래 행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성경의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고 가르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아니며, 예수님께로서 직접 교훈을 듣고 배운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는 식으로 말씀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딱 한 번 인용하였는데 사도행전 20장 35절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했던 사람으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야 부르심을,
받고서야 비로소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체험한 그리스도, 자기가 받은 계시를 중심으로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는 말씀도 그런 면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가 되어 행복하게 하고, 온 성도들로 하나가 되어 부흥하는,
복되고 멋진 교회가 되게 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첫째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6절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근본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온전히 섬기는 종의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6절, 7절 말씀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자기를 비워 사람이 되셨고, 종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인데도, 자신을 비워서, 낮추어서, 임마누엘이 되셨고, 육신을 입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너무 너무나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의 복음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사람이 되셨고, 종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인데, 하나님께서 본래의 형체를 벗고,
그 높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같은 사람의 형체,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와 만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명한 사실 ‘다미안 신부의 전기’ 는 읽어보면, 우리에게 큰 은혜를 줍니다.
신부였던 다미안이라는 분은 평생을 나병환자들과 함께 살다가 죽은 성자입니다.
그가 나병환자들이 사는 몰로카이 섬을 지나가다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전도하기로,
결심을 하고, 많은 구호물자를 가지고 몰로카이 섬을 방문한 후, 여러 해 동안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인 다미안 선교사의 전도에도 나병환자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즐기는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미안은 자신도 그들과 같은 나병환자가 되기를 기도했고, 결국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미안 선교사가 나병환자가 된 그때서야 비로소 마음 문을 열더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나병환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나병환자가 되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를 비워 사람이 되셨고, 종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높은 보좌에 팔장을 끼고 앉아서, 우리 사람들이,
알아서 천국에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만나 주신 분입니다. 그러기 위해 보좌를 떠나 하나님의 본체를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모습으로 “자기를 비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비어” 라는 말은, 한쪽을 얻기 위해 다른 한쪽을 포기한다는 말이요.
죄로 말미암아 우리 사람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본체를 버리셨다는 말이요.
많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힘이 있으면서도 무능한 것처럼 나타나는 것, 이것이 자기를 비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안다고 다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무엇이나 다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보고 싶다고 다 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힘이 있다고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는 돌덩이로 떡덩이로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있으셨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들어 다치지 않도록 수종 들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위에서 뛰어내려, 천군천사를 동원해 원수들을 다 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철저하게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 뜻이었기에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곧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자기를 온전히 비우는 종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자기를 비우고, 온전히 섬기는 종의 마음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온전히 충성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보면,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 예수님은 목숨까지 내어놓고, 죽기까지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나님의 원대로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이 ‘충성된 마음’ 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따르지 않으면 충성이 아닙니다. 천자문에 ‘충성진명’ 이라는 말이 있는데,
충성은 목숨을 다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목숨을 바쳤는데, 남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 의견이 따로 있으나,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곧 충성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9절)
우리는 십자가는 지는 둥 마는 둥 하고, 희생도 조금하고, 덕만 많이 보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보잘 것 없으면서, 상은 많이 받겠다고 욕심을 부립니다.
우리는 작은 것 바치면서도, 미리미리 복은 엄청난 것으로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복종이요. 오직 충성이요. 오직 순종이요.
오직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무슨 덕이나, 상이나, 축복을 받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다만 묵묵히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일을 하고, 칭찬도 받을 수 있지만,
칭찬을 받기 위해서 많이 수고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충성이요. 헌신이 됩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복종했고, 충성했고,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본문 9절부터 11절 말씀에서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빌 9-11절)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우리도 하나님이 높여주실 때까지 스스로 높아지려 하지 맙시다.
무슨 덕이나, 상이나, 축복을 주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복종과 충성과 순종하고,
십자가를 지며 묵묵히 일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첫째로, 내 마음을 비워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과 내 생각을 그대로 지닌 채로는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을 품을 수 없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시기와 질투, 증오, 욕심, 원망 등,
내 마음에 가득 찬 악한 것들을, 회개를 통해서 다 씻어내어, 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생명을 나의 빈 마음에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자주 만나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자주 만나야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 찬송가 463장 4절 / ‘신자 되기 원합니다.’ 다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본받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처럼 닮아 살아서,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가는 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