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냥 함성처럼 봄이 찾아왔다! 창밖 한그루 매화 꽃잎을 터트리더니 마침내 살구꽃 마저도. 삼월 하순이다! 시간은 벌써 흘러서 삼월도 이제 한 주간 남겨놓았으니 분명 봄이로구나.
저 멀리 중동지방에서인가 1년의 시작을 춘분부터 친다고 들었으니 아마도 그 사람들은 이제 딱 일주일이 지났을지도. 조금씩 커져가는 햇살의 길이라 사실 내 입장에서는 이 춘분으로 새해를 정하는 것도 특별하게 반대할 것은 없는 입장이다.
음력 설이 진짜 설이라고 배웠고 그 다음에는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양력이 절대 맞는 새해라는 그 이야기들과, 그럼에도 또 어느 순간에는 양력은 가짜고 진짜 우리 설은 음력이 맞기 때문에 양력은 쉬는 날도 짧고 음력 따라서 더 긴 연휴를 맞이하였기에 항상 우리 설을 보면서 헷갈릴 수 밖에 없이 살아왔던 그 복잡하고 지난한 나날들이었으니.
봄날이었다. 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저 풍성하고 푸근하고 따사로운 느낌 속에서 봄날을 맞이한다. 바라보다가 문뜩 느낄 때가 있었기에 아마도 봄이라는 명사를 쓰지 않았을까. 삼월이 시작되었으니 이런 흐드러지는 봄꽃들이 마중을 나오는 계절의 초입. 그 꽃들의 잔치 속에서 새로 맞이하는 느낌이길래 혼자서 흠뻑 웃음지으는 이 계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스라이 풀려나가는 개울 물속에 흘낏 보이는 저 올챙이 알들. 사실은 개구리들이 놓았길래 개구리알이었건만 어렸을 적부터 올챙이알이라 불렀기에 더 익숙한 단어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제 보기 힘든 모습들이라 먼저 그 알을 보는 순간에 감격이 밀려옴은 우리 생체에 각인된 진정 고맙고 반가운 모습을 보는 순간들의 그 느낌과 흥겨움일 것이기에 더욱 반가울 뿐이다.
솔직하게 이야기 좀 하면 좋겠다. 최근 서울 근교에서, 개구리알 혹은 올챙이알, 아니면 좀 더 힘들게 이야기를 하여서 도룡룡알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몇 분이나 계실까. 이 이야기를 더듬는 연유는 간다하였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북한산 어느 인적도 드문 호젓한 골짜기에서 우연하게 맞이하였던 거슴거슴한 빛깔의 뭉텅이를 물 속에서 보는 순간, 너무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었으니 아 도룡룡이구나 하였는데 주변 분들이 아 이사람아 올챙이올씨다 하는 그 마음들과 어법이 나의 오랜 옛 기억을 다시 소환하였으니!
게으른 농부도 되지 못한 이 어처구니없는 텃밭 농사꾼은 그래도 봄맞이를 하여야 한다고 농사지을 생각은 하지 않고 담벼락 벽들 그리고 문짝 새로 색칠하면서 맞이할 요량이었구나. 생강나무가 떠오른다. 함께 산행하였던 진품명품에 출연하시는 고서 전무가 선배 한 분이 저 나무를 가리키시며 김유정 선생의 동백나무라 일러주신다. 동백기름~ 쪽동백나무하고 동백나무는 사실 나는 잘 모르는 수준이었길래, 그냥 맞받아친다. 동백기름이 너무 비싸서 옛 어르신들이 대용품으로 이 생강나무 기름도 짜서 바르다보니 아마도 그렇게 동백나무라 부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거의 맞는 이야기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모습에서 작은 뿌듯함도!
다시 나의 작은 마당으로 들어선다. 제일 먼저 반기는 곰취. 정말 어렸을 적 모습은 곰 발바닥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야생성도 강한 녀석이라 잡초 사이에서도 떳떳하게 고개 바짝들고서 휘휘 잎사귀를 펼쳐 나가는 대단한 생존력이라 하겠다. 다섯그루 사다가 심어 놓았는데 관리를 전혀 하지 않다보니 이제도 역시나 새싹은 다섯그루. 아마도 조금 지나면 더 피어 오를 것이고, 구절초는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제일 많이 피어나와야 할 녀석들인데. 농사라봐야 그저 텃밭 수준의 작은 한 다섯평 혹은 조금 그보다 큰 규모이기에 과히 농사랄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법도는 분명 준엄하고 또 내용 또한 충실하여야만 하였길래 먼저 땅고르기는 집사람부터 시작하였다.
좀 더 지나야만 아마도 마당에서 벌어지는 봄날의 축제가 시작될 모습이겠지만 아직은 많이 이른 편이라. 그냥 우리집 좌상이신 벚꽃 또한 몽우리만 몽울지고 아직 꽃도 피치 못하였기에 이 또한 조금 이른 편이었을지. 어떻든 작은 행복은 항상 봄부터 시작되었기에 그 리듬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는 분들은 나는 잘 몰라라였으니!
홀로 맞이하는 봄날, 아니면 함께 마중나가는 산행길에서의 새로운 꽃들, 아마도 모두 다 이 봄을 축복하는 작은 행복일지라도 봄맞이를 함께 하는 마음 속에서 먼저 바라보는 저 제비꽃들의 작은 속삭임들이라니. 마당에서 피면 이깐 것들 하면서 뽑아봄직도 하였겠지만 형형색색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또 새로운 느낌의 봄맞이였었기에 참 이 봄 또한 많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느낌만 슬그머니 느껴본다.
우리나라 남쪽의 저 말도 못하는 가뭄들, 앞으로도 닥쳐 올 그 무수히 많은 환경변화 속에서의 나날의 살림살이와 삶들이 과연 스스로 그리고 또한 앞으로 더 얼마나 반성하면서 내가 이 지구별에 끼친 해악들을 고민하며 풀어 볼 것인가 떠올린다. 아니면 그 자체 마저도 또한 하나의 되바라진 강변일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어떻든 최근의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후손들 앞으로 너무도 우리보다도 더 혹독한 계절의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최소한 변함없는 심정이었으니.
이제 환갑들도 다 넘었고, 저 식물들이 지녔던 오묘한 생존전략일 수도 있는 쥐죽은 듯이 지내다가 한 몇백 년 지난 후에 슬그머니 깨어나면 그 화려한 자태를 또 경험할 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니길래 차라리 훌쩍 떠나보낸 후의 그 모습이 더 가볍고 편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느티나무 앞에서 몸소 떠올린다.
나의 삶은 결단코 이 벚나무 모습처럼 화려하지 않았지만 느지막하고 듬직한 저 느티나무같은 자태로 살고 싶었기에, 그마저도 되지 못한다면 참 한그루 콩나무처럼 그저 광합성이라도 하여서 마침내 이 대지 속에다 질소비료 한 점 남기는 삶이 더 옳지 않았을까 하는 그 심정으로!
원래 제일 쎈 놈은 잡초였다. 그 자라는 속도는 정말 억세고 단단하였으니 차라리 그 모습을 배우고 싶었을지도. 그럼에도 단지 그 잡초라는 단어 속에서 가지는 불손하고 되먹지 못한 이런저런 나쁜 인상들이 또 싫었으며 아마도 그것 또한 과학의 힘이었을지도. 그럼에도 참 배우고 싶었던 저 잡초들의 무한한 생명력 그자체 였으니! 그냥 철학같은 것이 아니라 단지 저 무수히 뻗어나가는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 그것만으로도 존재론이었기에.
내가 지닌 개똥철학은 아직도 풀 한송이 그 깊고 오묘한 조화 속에서 갈피조차 없는 작은 흔들임에 불과하였기에 나는 오늘도 풀꽃들을 바라보며 나의 시 한송이를 더 소중하게 쓰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