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선유동천(仙遊洞天)
(2022년 7월 30일)
瓦也 정유순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은 후백제를 창업한 견훤(甄萱)의 고향으로 <문경 선유동천>이 있는 곳이다. 가은읍을 중심으로 견훤의 출생과 성장, 전쟁과 관련하여 견훤 탄생 전설이 전해지는 금하굴, 활쏘기와 말 타기 전설이 전해지는 말 바위, 그리고 견훤산성, 근암산성, 희양산성 등 전쟁 관련 유적이 있다. 선유동천(仙遊洞天)의 ‘선유(仙遊)’는 신선이 노는 곳이고, ‘동천(洞天)’은 하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선유동천나들길 표지 입석>
오늘의 출발점은 <이강년기념관> 앞이다. 이강년(李康䄵, 1858∼1908)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운강(雲崗)이다. 문경 출신으로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8대 손이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백부의 집에서 자랐으며, 키가 여덟 자가 넘었고 눈빛은 밝아 위엄이 넘쳐흘렀다. 선생은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어 벼슬길에 올랐으나 1884년 갑신정변 후 물러나 고향에 은거하던 중 동학농민운동 때 문경 동학군의 지휘관이자 문경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었다.
<운강 이강년기념관>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가은읍 도태리에서 창의(創義)하여 친일 앞잡이였던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 등을 생포해 농암(籠巖)장터에서 처단하였다. 그 후 치열한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하다가 1908년 작성전투에서 체포되어 9월에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옥중에서 “한평생 이 목숨 아껴본 바 없었거늘 죽음 앞둔 지금에서야 삶을 어찌 구하려 하냐만 오랑캐 쳐부술 길 다시 찾기 어렵구나. 이 몸 비록 간다고 해서 넋마저 사라지랴”라고 탄식하며 10월 사형 당한다.
<운강 이강년 유물전시관>
<운강 이강년선생상>
선유동계곡은 백두대간의 대야산(大耶山, 931m)을 가운데 두고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 쪽에 각각 있는데 대야산의 서쪽계곡은 괴산 선유계곡이고, 동쪽은 문경 선유계곡이다. 문경 선유계곡은 10km 거리에 펼쳐져있는 길고 화려한 계곡으로 계곡미가 빼어나 문경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계곡의 양 옆에 펼쳐진 깊은 숲과 계류를 덮어버리는 오랜 소나무들이 많아 운치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선유동천나들길 표지석>
문경 선유동천나들길은 <운강 이강년기념관>에서 시작하여 칠우칠곡을 거슬러 올라 칠리계까지이며, 칠우칠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선유구곡으로 이어져서 학천정까지 4km구간을 간다. 학천정에 솔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용추계곡이 나온다. 용추계곡길은 계곡길과 산길을 반복하며 용추폭포를 지나 월영대까지 가서 용추입구로 돌아오는 왕복 4.4km정도로 약10km가까운 거리다.
<배롱나무>
선유동천나들길은 2개 코스로 나뉘어 있다. 1코스 칠우칠곡길은 학천정까지 4km 구간이며, 2코스 선유구곡길은 학천정에서 용추계곡까지 4.4km 구간이다. <이강년기념관>에서 출발하자마자 완장천의 첫 번째 징검다리를 만난다. 비가 와 물이 차면 어쩔 수 없이 완장천을 가로지르는 완장2교를 건너 이곳을 건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완장천 징검다리>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의 시구처럼 괴산과 문경 선유동의 경치는 막상막하로 아름답다. 괴산 선유동이 스케일이 크다면, 문경 선유동은 아기자기하다. 선유동처럼 아름다운 곳을 선인들이 그냥 놔뒀을 리 없다. 괴산 선유동에는 퇴계 이황(李滉)의 흔적이 남아 있다. 퇴계(退溪)는 송면 송정마을에 있는 함평 이씨 댁을 찾아갔다가 괴산 선유동계곡의 절묘한 경치에 반해 아홉 달 동안 머물며 9곡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충북괴산 선유계곡>
문경 선유동은 고운 최치원(崔致遠)이 신선처럼 거닐었다. 고운(孤雲)은 봉암사에 드나들면서 가까운 문경 선유동의 아홉 절경을 찾아 ‘선유구곡’을 새겼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복 정경세, 도암 이재, 손재 남한조, 병옹 신필정 등이 즐겨 찾아 자취를 남겼으며, 근세에 이를 발견하고 시를 남긴 유학자는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 1876~1956)이다.
<백두대간 대야산>
칠우칠곡(七愚七谷) 제1곡 완심대(浣心坮)로 마음을 씻는 곳이다. 탐방로에서는 사전 정보가 없으면 발견하기 힘들다. 탐방로에서 100미터 정도 내려가면 만날 수 있다. 계곡 중앙 널따란 바위 판 한 구석에 조그맣게 새겨진 浣心坮란 음각 문양을 보면서 굽이쳐 흐르는 계곡물에 마음을 깨끗이 씻으라는 의미 같다.
<완심대-네이버캡쳐>
선유칠곡 제1곡에 해당되는 칠우대(七愚臺)에는 나이순으로 7명의 친구 이름이 새겨져 있다. 칠우(七愚)들은 1884년(甲申)∼1888년(戊子)생으로 우은 김종율, 우석 정세현, 우초 민순호, 우송 김정익, 우포 김양한, 우전 김정진, 우천 김종훈 등 7명이다. 이들 중 우초(愚樵) 민순호(閔舜鎬)는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일어나자, 1896년 1월 이강년을 따라 문경에서 전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았으며, 이강년의 종사(從事)로서 서상렬(徐相烈) 부대와 함께 조령에서 적과 싸웠다.
<칠우대>
칠우칠곡 제2곡 망화담(網花潭)이다. 물 위에 떠 있는 꽃들이 많아서 그물로 건질 수 있다는 의미 같다. 봄이면 칠우칠곡 각 굽이의 꽃잎들이 떠 내려와 이곳에 이르러 맴돌지 아니 하였나 여겨진다. 널따란 바위 옆에 세워진 돌에 網花潭이란 아름다운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찾질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내판의 오른쪽 다리를 건너서 냇물로 내려서면 둥근 바위에 각자가 있다고 한다.
<망화담-안내판촬영>
망화담을 지나면 칠우들이 세운 칠우정(七愚亭)의 터가 있다는 안내판이 있으나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칠우정의 편액은 의친왕 이강(李堈)이 내렸다고 한다. 칠우칠곡 제3곡 백석탄(白石灘)이다. 새하얀 너럭바위를 흐르면서 하얗게 반짝거리는 여울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 같다. 백석탄은 망화담에서 조금 올라가면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 위로 교량이 놓여 있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백석탄-네이버캡쳐>
망화담과 백석탄 사이 길옆의 칠우폭포는 둔덕산 동편 능선에서 발원하여 골자기를 따라 흐르다가 폭포를 이루는데, 평시에는 건폭(乾爆)이며 여름철 우기에만 수량이 많아 폭포를 이룬다고 하나 장마철임에도 물 한 방울 흐르지 않고 절벽만 자랑한다. 길 건너 모우정(慕愚亭)은 칠우들의 옛정이 그리워 지은 정자 같다.
<칠우폭포>
칠우칠곡 제4곡 와룡담(臥龍潭)은 ‘용이 누워서 꿈틀대는 연못’으로 내려오던 시냇물이 이 곳에 이르러 큰 못을 이루면서 넘실거려 마치 용이 누워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라고 한다. 칠우칠곡 제5곡 홍류천(紅流川)은 물살이 천천히 흐르고 있어 붉은 꽃잎들이 물을 가득 메우고 흘러가는 곳이라 홍류천이라 한 것 같다.
<홍류천>
칠우칠곡 제6곡 월파대(月波坮)는 달이 뜬 밤이면 달빛이 이 물살에 비치어 하얀 물결을 이루고 흘러가기 때문에 월파대라 한다. 이곳에서 대(坮)는 바위가 넓게 자리하고 그 옆으로 시내가 흘러가는 곳을 의미한다. 칠우칠곡 제7곡 칠리계(七里溪)는 선유구곡에서 흘러오는 완장천 물이 이 굽이에 이르면 7리를 걸쳐 흐르는 여울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는 뜻 같다.
<월파대>
선유동천의 진짜 절경은 선유칠곡이 끝나는 지점부터 시작된다. 여기 선유구곡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1곡은 안개에 싸인 바위 옥하대(玉霞臺)다. 신선놀음의 시작 점으로 절묘한 이름이다. 이어 호젓한 오솔길을 따르면 희고 큰 반석 위에 올라선다. 수십 명이 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여기가 2곡 영사석(靈槎石)이다. ‘신령한 뗏목 바위’라는 뜻으로 반석을 뗏목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다.
<옥하대>
영사석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그곳 길섶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붙잡는다. 큰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쿡 찍어 놓은 듯하다. 이것이 ‘장군손바위’로 선유구곡에서 수련하던 선인의 자취라고 한다. 다시 계곡을 따르면 거대한 펜션 건물이 나타나는데 주변 환경과 엇박자 같다. 펜션 앞의 계곡이 3곡 활청담(活靑潭)이다. 긴 암반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휘파람을 불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영사석>
활청담 앞에서 다리를 건너 다시 계곡을 따르면 넓은 잔디밭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계곡으로 내려가면 반석인 4곡 세심대(洗心臺)가 나온다. 발 담그며 잠시 쉬었다가 가기 그만이다. 세심대를 지나 다시 길을 나서 우람한 소나무 앞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면 5곡 관란담(觀爛潭), 6곡 탁청대(濯淸臺), 제7곡 영귀암(詠歸岩)이 차례로 나온다.
<세심대>
<활청담-네이버캡쳐>
<관란담>
이어 오솔길이 끝나면서 다시 만나는 계곡은 온통 암반이다. 여기가 선유구곡의 절정인 8곡 난생뢰(鸞笙瀨)다. 여울 흐르는 물소리가 대나무로 만든 악기인 생황(笙簧)이 연주하는 것 같다는 뜻으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8곡 위로 보이는 바위가 9곡 옥석대(玉舃臺)는 ‘옥으로 만든 신발’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난생뢰>
<옥석대-네이버캡쳐>
옥석대 위쪽에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를 기리는 학천정(鶴泉亭)이 자리한다. 학천정 뒤 바위에 새겨진 산고수장(山高水長) 글씨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월영대(月影臺)는 선유동천 나들길의 종점이고 계속 가면 대야산 정상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을 흐르는 맑디맑은 물 위에 달 그림자가 아름답게 드리운다고 해서 월영대라고 한다. 대낮이라 달빛은 없지만 물 위에 비치는 그림자를 달빛 삼아 물속에 몸을 담아 땀을 식히고 대야산 주차장을 향하면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한다.
<학천정-네이버캡쳐>
<월영대>
올라갈 때 지나쳤던 용추를 내려오면서 잠시 들려본다. 용추(龍湫)는 용이 하늘로 솟아오른 곳이라는 전설이 있으며, 용추 양쪽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는 암수 두 마리의 용이 용추계곡에서 머무르고 하늘로 승천하다가 발톱이 바위에 찍혀 그 자국이 신비롭게도 남아있어 이를 용소암(龍搔巖)이라 한다. 용추의 못은 좁으나 깊이가 4미터를 넘을 정도로 깊고 주변의 바위가 매우 미끄러워 통행금지 표시를 줄에 널린 빨래 마냥 주렁주렁 드리워 놓았다.
<용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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