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모니터링
(작성자 : 모예림 ) (동아리명 : 꿈말사람들 )
(작성일자) 2014년 5월 10일(토)
(문화재명) 풍납토성
(문화재 종류) 사적 제 11호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72-1
(찾아가는 길)
(문화재 관리) 서울특별시 송파구
(문화재 해설)
한강 연변의 평지에 축조된 순수한 토성으로,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이룬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1,500m, 남벽 200m, 북벽 300m 정도이며, 서벽은 1925년의 홍수로 유실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새로 제방을 쌓았으므로 서벽이 완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경기도 광주(廣州)에 속했는데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으며 서울 풍납동 토성이라고도 한다. 둘레 3,740m에 이르는 규모가 큰 평지 토성이었으나 현재는 2,679m 정도 남아 있다. 성벽의 표면은 잔디와 잡초로 덮여 있는데, 내부는 돌이 거의 없고 고운 모래로 쌓아 올렸으며, 외부의 경사면이 2단으로 축조된 흔적이 남아 있다. 북벽의 높이는 약 8m이고, 기초 부분의 너비는 약 30m이다. 동벽 외부가 깊어진 것은 축성용 채사(採砂)로 인한 것 같고, 동벽에 같은 간격으로 뚫려 있는 네 곳은 성문자리인 듯하다.
1925년 대홍수 때 삼국시대의 청동제 초두(鐎斗)가 2개 발견된 뒤 토기 조각들도 많이 발견되었다. 1966년 토성 내 포함층(包含層)의 일부가 발굴되어 선사시대 말기에서 삼국시대에 걸친 토기와 기와의 분포를 알게 되었다. 1996년 토성의 동북쪽 구역의 조사에서는 지표 4m 정도 아래에서 원삼국시대에서 백제 전기의 집터를 비롯해 가락바퀴[紡錘車], 그물추,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주민이 생활하던 주거지로 추정되며, 한강유역에 있는 백제 유적 가운데 최대 규모의 토성 유적이다. 보호구역은 413필지 25만 4,301㎡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송파구에서 관리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풍납토성 [風納土城] (두산백과)
(모니터링 내용)
풍납토성을 쭉 따라 걷다보면 안내판들이 많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그곳에 한성백제왕도길 안내지도라는 안내판있는데 거기에는 안내지도라는 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도는 찾아볼수도 없었다. 거기다가 지도가 있어야 할곳에는 하얀 백지가 있어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안 좋은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또 길을 가다보면 잡초가 무성한 풍납토성을 볼 수가 있다. 잡초를 자르지 않고 계속 방치해 둔 건지 잡초의 길이가 족히 40cm은 넘어 보였다. 또 울타리가 쳐져있는데도 불구하고 동네 주민들이 울타리를 넘어 나물을 캐고 있었다. 계속 걷다보면 마을이 나오는데 마을쪽으로 걸어가면 아무리 시멘트로 덮었어도 풍납토성의 높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마을로 들어가면 경당지구가 있는데 그곳은 정말 사태가 심각했다. 그 넓은 경당지구에 휴지통은 1개밖에 없고 그 마저도 망가져 있어 쓸 수가 없다. 또 식수대에는 나뭇잎이 덮여 위생적이지가 않고 사람들도 거의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의자는 많았지만 페인트로 칠해져 있거나 흔들리는 부분도 있었다. 안내판에도 페인트가 칠해져있고 설명도 많이 부족했다. 풍납토성 두레길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잔디도 적당히 깎여 있었다.
(관련사진)
사진소개1- '한성백제왕도길 안내지도'에 지도가 없는 안내지도판
사진소개2-잡초가 무성한 풍납토성
사진소개3- 풍납토성경당지구역사공원의 훼손된 휴지통,안내판,의자
(소감 및 후기)
이번에 풍납토성을 돈 것은 처음이라서 일단 많이 힘들었다. 풍납토성도 몽촌토성처럼 관리가 잘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울타리를 넘어 잡초를 캐는 모습도 보고 안내판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많이 놀랐다. 거기다가 경당지구 역사공원은 더욱 깜짝놀라게 했다. 그래도 역사공원인데 관리도 제대로 되있지 않고 사람들도 울타리를 넘고 잔디를 밟는 모습을 보니까 고쳐져야 할 부분이 아주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저번과 달리 풍납토성 한 곳만 왔지만 배우는 것도 많았고 보는 것도 많았던 하루이다.
첫댓글 잘했어요. 이렇게 그동안 해왔던 것 계속해서 정리해 올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