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80]친구들과 공동작업하는 “맛”
남원 서예가 친구가 SOS를 쳤다. 인근에 150평쯤 되는 아로니아밭을 ‘불가피하게’ 샀는데, 아로니아를 같이 따줄 수 있냐는 것이다. “당근”. 하여 순천에서, 남원 아영에서 친구가 어제 아침 일찍 달려왔다. 콩나물해장국을 7시에 먹고 형수(친구의 아내) 포함 5명이 8시부터 달라붙어 따기 시작하는데, 태풍에 절반쯤 떨어졌다해도 ‘무한정’ 달린 통에 ‘끝없는 전쟁’이다. 10시 넘으니 아직은 작렬하는 태양, 비지땀이 흐른다. 하지만, 간간이 고교친구 4명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하는 작업이라 힘든 줄은 몰랐다.
농촌의 일은 정말로 혼자서는 팍팍해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안안팎(내외간)으로 해야 하는 이유이다. 고랑에 비닐 멀칭 하나 하려도 혼자 하려면 몇 배 힘이 더 든다. 아로니아를 아시는지? 대부분 루테인을 알아도 아로니아 모르는 친구들도 많으리라. 매일 아침 우유에 생과生果로 갈아마셔도 되고, 아로니아청을 만들어 먹든지, 말려서 갈아갖고 환丸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석 달만 계속 먹으면 눈이 아주 좋아진다고, 실제 먹어보고 돋보기를 안쓰게 된 친구가 역설한다. 그런데 '그놈의 것'이 따서 다듬어 씻고 말리기가 여간 고역苦役이 아니다. 여덟 고랑 100여주가 넘는 아로니아를 둘이 따려면 꼬박 열흘은 넘게 걸리리라. 또한 들어간 품(노력)만큼 어디 팔기도 마땅치 않다. 팔아 소득을 남기려고 그 밭을 산 것도 아니다. 그저 주변 친구들에게 노놔주고 양주兩主가 장복長服하는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없어도 될 일을 ‘사서 고생하는’ 것인데, 농촌에 살려면 최소한 농협에 조합원으로 가입도 해야 하고, 농지원부(농산물품질관리원 등록)를 만들려면 논이든 밭이든 최소 300평은 자기 소유로 있어야 한다. 농지원부 등록을 위해서 매입한 것인데, 해가 갈수록 어쩌지도 못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바람에 ‘계륵鷄肋’같은 처지라고 한숨을 짓는다. 생각해 보라. 무수히 솟아나 밭을 점령해버리는 풀들을 1년에 서너 번은 깎아줘야 제 꼴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익숙치 않은 예초刈草도 해야 하고, 때가 되면 열매도 따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아예 방치할 수도 있겠으나, 시골 농민의 양심良心으로 그게 될 법한 얘기인가. 한 가지 다행한 것은, 농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들어가는 공력工力이 여간 아니니, 이것 하나만 봐도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간으로서 할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겠다. 흐흐.
아무튼, 친구들과 함께하는 공동작업은 고되어도 언제나 재밌다. 백지장도 맞들면 당연히 낫다 하지 않았는가. 귀향을 하여 인근(임순남. 임실-순창-남원)에 가까이 사는 친구가 대여섯 명 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시시때때로 전우애가 아닌 ‘고교 동창애同窓愛’가 제대로 발휘되니까 말이다. 지난번 옥수수 딸 때에도 아영에 사는 친구가 2박3일 숙식을 하며 도와줬으니 망정이니, 정말 힘들 뻔했었다. 남원 송동에서 이장을 하는 친구도 그날 달려와 구슬땀을 흘려줬다. 그러니까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세정細情(농심)’은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런저런 학창시절 추억이나, 누구누구 친구의 동정 얘기에는 언제나 귀가 쫑긋하게 마련 아니던가. 12시가 넘자 날은 계속 뜨거워지고, 작업이야 절반쯤 했을망정, 접어야 할 시간. 밥 먹을 시간이다. 오수 촌동네 맛집에 닭볶음탕을 주문해놓았기에 서둘렀다. 그나저나 남은 것은 어떻게 할래? 이 정도만 도와줘도 감지덕지, 고맙기가 한량없다며 ‘어서 밥 먹으러 가자’는 친구부부. 즐거운 오찬시간이다. 야, 밥 먹고 와 다 끝내주고 가자. 똥 싸고 밑 안닦은 것맹키로 쓰것냐? 어이- 그런 소리 마라. 오전만 해도 훌륭해. 에이-, 찜찜한데. 설왕설래. 멀리 순천에서 꼭두새벽에 달려온 친구는 운전 때문에 한잔도 하지 못하니, 유감이다. ‘막걸리 홀릭’친구는 혼자서 무조건 두 병이다. 우리는 그렇게 ‘착한 일’도 하나 하고, 또 하나의 말년 추억을 쌓은 셈이다. 흐흐.
2시반, 돌아오자마자 낮잠을 한숨 늘어지게 자고난 후, 곧바로 콩밭에 ‘죄없는 풀’들을 싸그리 꼬실느려고 충전분무기를 메고 나섰다. 콩농사는 폭싹 망했어도 그 뒤처리가 더욱 더 속상하게 한다. 풀들이 더 무성하여 멀칭비닐을 싸안으면 도저히 벗길 수가 없기에, 일단 풀들을 죽여 말린 후 비닐을 걷을 생각이다. 이 속상한 마음은 농사를 지어보지 않으면 몇몇이나 알까. 그나저나 이렇게 늦여름은 지나고 있다. 초저녁 깊게 잠든 잠이 깨어보니 오후 11시 반이다. 흐흐. 이제부터 무엇을 하지? 인터넷바둑이나 두면서 이 밤을 샐까? 작가는 암토끼의 유방乳房을 참 앙증맞게도 새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