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 (공주사대부설고등학교 학생, 전국청소년정치외교연합 회장)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제8회 재외동포NGO대회 in Sakhalin>이라는 이름으로, <사할린한인 역사기념관 건립>에 대해 논의하고, 사할린한인의 역사와 대면하기 위해 한국․일본․중국동포, 그리고 일본인으로 구성된 38명이 사할린 현장을 찾았다.
참관자들은 사할린 남쪽의 코르사코프부터 남서쪽의 포자르스코예(미즈호 학살 사건. 민간인에 의한 27인 학살 사건), 홈스크, 고르노자보드스크까지. 강제동원이 극심했던 브이코프에서 비포장도로를 7시간을 타고 가야하는 레오니도보(카미시스카 학살 사건. 일본 경찰에 의한 18인 학살 사건), 뽀로나이스크까지.
짧은 일정 동안 아픔의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역사와 대면하고, 진행되고 있는 삶들과 만났다. / 편집자 주 | |
캠페인 소재로 생각했던 사할린 한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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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할린의 눈물을 아십니까' [사진제공 - 뉴스1] |
사할린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올해 4월, 내가 속해 있는 단체의 행사 프로그램으로 캠페인을 정했을 때였다. 무언가 참신하고 도움이 되는 캠페인 소재를 생각하고 있던 중에 사할린 한인 문제는 내가 찾고 있었던 바로 그 소재였다.
캠페인을 하기 위해 사할린 한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 문제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가슴 깊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안타까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마 희망캠페인단의 창설이 아니었다면 사할린에 대한 자료조차 쉽게 얻지 못했을 정도로 연구되고 조사된 사실 역시 많이 부족해보였다.
어떻게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고등학생들은 ‘나라가 힘이 없어서 조난자로 남아있는 이들에게 누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문제를 접근했다. 외교적 상황과 일본의 법적 책임 등을 공부하던 나는 G-20 정상회의까지 개최한 대한민국의 외교력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되었고 현실의 벽이 매우 높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러나 작은 힘이지만 이 나라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힘을 얻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며 활기차게 캠페인을 진행했다. 노래도 개사해서 부르고, 춤도 추며 진행했지만 외국인들만이 관심을 보이는 상황 속에서 몇몇 학생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꿈에서만 그려졌을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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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으로 귀향할 배를 기다리며 눈물이 앞을 가렸을 분들을 생각하니 너무도 먹먹했다." [사진제공-박인규] |
캠페인을 진행한 후 나는 사할린에서 열린 ‘제 8회 재외동포 NGO 대회’에 참가하여 역사의 현장을 마주 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할린에서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이동했던 곳은 망향의 언덕이 있는 코르사코프였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조국으로 귀향할 배를 기다리며 눈물이 앞을 가렸을 분들을 생각하니 너무도 먹먹했다. 희망이 보이는 언덕 위에서 오히려 더 극심한 절망을 느껴 자살하신 분들도 많았을 만큼 가슴이 아픈 곳이었다.
물자 조달을 원했던 일제를 위해, 사할린 개발의 목적으로 남기를 원했던 소련에 의해 두 번 울어야 했던 사할린 한인. 눈물이 아닌 웃음이 남아있는 곳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아련한 기억 속으로 숨어버린 조국에서의 추억이 그들을 그토록 기다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얼굴 사진이 파여져 있는 한인 묘 앞에서 통한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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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다 끝내 조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한인들의 묘는 사할린 전역에 현재 흩어져 있다. [사진제공-박인규] |
기다리다 끝내 조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한인들의 묘는 사할린 전역에 현재 흩어져 있다. 러시아 인들과 함께 스산한 분위기가 감돈 공동묘지에서 유독 얼굴이 파여져 있는 묘들. 자세히 보니 그 묘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인이었다.
한국에 있을 가족들조차 한인들의 생사를 모르는 분들이 많을 텐데… 일생에서의 마지막 흔적인 묘비에 남겨 넣은 사진이 돌로 찍혀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니!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먼 이국의 땅, 사할린에서 그들이 천대받고 힘들게 일했을 생각이 떠올라서 더 보기가 힘들었다. 묘들이 어느 정도 있는지 사할린 전역에 대한 발굴 조사도 더 진행되어야 하는데 그 묘들마다 이런 모습으로 남아있다면 유족들의 마음이 어떠할까. 1세 분들이 아직 많이 살아 계시기를 소망했지만, 그들에게 삶이 죽음보다 더 힘든 것은 아니었을지 걱정이 되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우린 여기서 살아나기가 정말 벅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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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여기서 살아나기가 정말 벅찹니다...” [사진제공-박인규] |
“우린 여기서 살아나기가 정말 벅찹니다...”
홈스크시에서 만나 뵌 몇 안 계시는 한인 1세 할머니의 말씀이다. 무척 정정해보이셨던 할머니의 나이는 아흔을 훌쩍 넘기셨는데, 아직까지 바다에 나가 일을 하고 계시다고 한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시고 어려운 형편에 금방 시집을 가야 했지만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 힘겹게 자식들을 키워내셨다고 한다.
아흔이 넘는 나이로 한국으로 돌아가기에는 여기서 일구어낸 터전과 가족이 있는데, 귀국하지 않으면 나라로부터 쉽사리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상황에 계시다고 한다. 길게 남지 않은 여생을 편안히 쉴 수 있는 여유조차 국가가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국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OECD에 가입한 국가가 된지도 어언 16년. 사할린 동포뿐 아닌 재외동포에 대한 지원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태도는 아직 미온적이다. 국제사회에서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재외동포들을 보듬고 소통하여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맞춤형 지원정책이 절실하다.
할머니가 받기 힘든 지원금이 아닌 작은 노인복지회관의 설립을 요청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이런 주름진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이 고인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 밖에 없었다. “곧 해결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부디 건강하세요.“ 할머니가 그동안 국가에게 건 기대가 물거품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솔직한 고백과 반성 없는 일본
사할린 현장방문이 끝나자마자 2차 대전 후 사할린 한인이 일본에 의해 대량 학살되었다는 러시아 정부의 보고서가 입수되었다는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이는 그동안 문서상의 기록이 없어 학살사건을 많이 밝혀내지 못한 우리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계속되어 나오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도 이를 부인하고 왜곡하려는 일본 측의 태도는 심히 우려된다.
일본인이 중시하는 체면과 예의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사과했을 때 다시 세워질 수 있다. 체면만을 중시하여 버티다가는 한.일 간의 신뢰는 쉽게 무너져 내릴 것이며 체면은 이때 손상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사할린 한인 문제는 인권적인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에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문제이며, 일본 측의 명확한 진실 규명과 함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한다.
영국이 부러웠던 이유
런던올림픽이 개최되는 것을 보면서 난 아름다운 건축물과 뛰어난 문화를 가진 영국이 부럽기도 했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영국의 자유는 물론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해 힘쓴 사람들을 잊지 않고 기린다는 사실이었다. 신분과 지위의 차이를 막론하고, 테러로 희생된 무고한 외국인들조차 깊이 새겨 기억하고자 하는 영국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런데 우리는 대한민국의 성립과 발전 과정에서 힘쓰고 희생된 사람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에는 난 사할린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중앙아시아 쪽에 있는 지명이라고 생각했었고, 독도와 위안부 문제만이 ‘일본으로부터 사과 받아야 할 문제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위 두 문제의 동시다발적인 해결을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은 사할린 한인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가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겠다고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가 결코 성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아픈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 길이 눈 감은 사할린 한인들을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작은 보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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