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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풍경은 그 빛깔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쓸쓸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 눈부심 뒤로 밀려오는 어둠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누구나 겪어야 할 황혼기도 제각각 그 빛남과 아름다움이 다르겠지만, 그 쓸쓸함에 대해서는 우리가 자연에서 맞닥뜨리는 황혼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주 독실한 신앙인이라면 윤회의 아침이나 부활의 봄을 굳게 믿으며 어두운 생각을 걷어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갑자기 날이 추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든 남자의 마음은 무거워집니다. 황혼의 고독을 견뎌낼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래의 '별별다방' 홍마담은 그 못된 친구인 孤獨을 아예 벗으로 삼으라 하네요. 그것만의 황혼의 등불이 되어줄거라면서 말이죠. 참 고마운 조언이지만 냉정하기만 하군요. 저는 따듯한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흔한 말이라 그게 뭐냐고 하실 분이 많겠습니다만, 예수의 말은 나이든 이제서야 나에게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네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저 자신은 물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진실로 따듯하게 사랑하라!
[별별다방] 황혼의 고독 황혼의 고독이 사무치는 이 가을.... 2015월 10월 29일
가을은 언제나 성큼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본 푸른 하늘, 말이라도 걸 듯 달리는 차창에 툭 부딪혔다 떨어지는 낙엽 조각들, 뜨거운 커피를 감싸쥐고 옷깃을 여미는 행인들의 풍경에, 지난 여름의 그 끈질긴 열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습니다.
계절 탓일까요? 별별다방 우편함에 쌓이는 사연들의 색깔도 사뭇 달라졌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려달라는 열띤 하소연의 편지더미 속에, 담담한 자기고백의 글들이 하나 둘 섞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산한 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겨나는 제목의 글들에, 저절로 눈이 가고 손이 가더군요. 바로 황혼의 고독을 고백한 사연들이었습니다. 역시 계절 탓일까요? 담담한 고백의 사연에, 독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습니다.
△2011년 11월 6일, 옥천 향수30리 - Photo by 구포
별별다방에 황혼의 고독과 사랑에 관한 사연이 소개된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사연은 황혼 재혼을 둘러싼 현실적인 갈등과 불화가 주된 내용이었지요. 그러나 이번 사연은 달랐습니다. 홀몸으로 노년을 맞으신 남녀 두 분의 일상적인 고독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팔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살아오신 칠십대 남자분은 ‘밥 먹고, 잠 자고, 숨 쉬며 살아간다는 자체가 고단하고 덧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식구 건사하기도 바쁠 자식들에겐,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말라’고 큰소리치지만, 그 말조차 멋쩍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만큼 자식들은 그에게 무관심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영화 같고 꿈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젊은 시절 꿈꾸었던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가, 한 여인을 만난 겁니다. 열 살 연하의 그 여인과 벗이 되어, 그는 영화도 보고 전시회도 다니며 ‘데이트’를 즐깁니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그의 일상은 잃었던 빛과 윤기를 되찾았습니다. 똑같은 잠자리, 똑같은 식사이건만, 잠도 잘 오고 밥맛도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의 욕심은 내지 않기로 합니다. 황혼재혼의 나쁜 결말을 익히 보아왔기에, 선물 같은 만남 자체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감정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요? 손자를 봐주러 가야한다며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한 그녀. 악수 한번으로 안타까운 작별을 하고, 전보다 더 깊고 커진 외로움을 혼자 달래고 있다는 남자분의 사연에 많은 분들이 위로의 말씀을 보내오셨습니다.
그런데 커뮤니티의 댓글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연령대별로 의견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자녀 세대인 삼사십대는 글쓴이의 고독에 안타까운 공감을 표하며, 어떻게든 그 여인과 인연을 이어가시라고 응원을 보내주더군요. 왜 확실한 프러포즈를 하지 않으셨느냐고 안타까워하는 젊은 여성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글쓴이와 동년배인 분들의 생각은 그와 달랐습니다. 노년이 외로운 건 당연한 일이고, 그 외로움을 혼자서 잘 갈무리하는 것이 바로 노인이 가야할 길이라는 냉정한 댓글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잠시나마 일상의 고독을 달래준 그 여인에게 감사하되, 가는 사람을 굳이 붙잡지는 말라는 게 그분들의 조언이었지요. 감정에 빠져서,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벌였다가는 서로에게 나쁜 결말이 닥쳐오고, 자식들 눈에는 주접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거라는 따끔한 질책까지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의 질책 속에서 뒤틀린 아픔을 엿보았습니다. 과연 그분들이 노년의 고독을 몰라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너무 잘 알기에 감히 나무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고독을 달래기 위한 모험이 더 큰 고독과 후회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셨기에, 글쓴이에게 달콤한 응원만을 보낼 수는 없으셨겠지요. 길지 않은 여생, 덧없는 인연에 얽매이지 말고, 하루하루의 일상을 의미 있게 채워나가라는 그분들의 말씀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에 다름 아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쓸쓸한 주문에, 조금 다른 빛깔의 고독으로 답하는 사연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이십여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씩씩하게 살아오신 일흔 살 여성은 말합니다. 이제 진짜 노인의 나이에 접어드니 내게도 외로움이 저절로 찾아오더라고요. 내 인생의 십자가와 같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두 딸을 시집보낸 후 맞은 혼자만의 생활은 홀가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배우고, 즐기며 여유로운 오십대와 육십대를 보낸 그녀는 모범적인 독거노인이라는 주위의 찬사를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계절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어느 날 문득, 남편을 부르며 혼잣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그녀는 당황합니다. 그렇게 짐스럽던 남편인데, 떠나가던 뒷모습이 제일 어여쁘던 사람인데, 일흔 살의 나는 마흔 살 즈음의 내가 되어 ‘개똥이아빠’를 애타게 찾습니다.
그러나 외로움에 지쳐 새로운 인연을 찾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그녀. 다시 못 올 길 외롭게 떠나보낸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만 나날이 깊어진다는 그녀. 그녀가 뒤늦게 맞닥뜨린 고독한 일상은 또 어떤 의미로 채워져야 할까요?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의미 있게 채워오던 일상이 어느 날 무너진다면, 그 곁엔 누가 남아 있을까요?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고독, 누군가의 곁에서 혼자 앓는 고독, 그런가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무도 원하지 않는 생의 마지막 고독. 고독의 무게와 부피 앞에, 지금껏 너무나 쉽게 황혼의 사랑을 응원해온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황혼의 재혼에 적극 찬성하는 고마운 젊은이들 속에 실은 저도 늘 끼여 있었지요. 그러나 노년의 아픔과 고독을 마음 깊이 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막상 내 부모의 일이 되면, 현실적인 손익부터 따지고 들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고독을 벗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과 벗할 수 있겠지요. 세상의 벗을 향해 마음을 여는 동시에, 내 안의 고독과도 오랜 벗이 되는 지혜만이 황혼의 등불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지혜를 노년층에 주문하기 전에, 그분들의 깊고 막막한 고독에 한번쯤 공감해보는 10월이면 좋겠습니다. 신선한 가을 초입에서 만추의 시린 풍경을 미리 그려보듯...
홍여사는 누구? '별별다방'의 여주인. 천성적으로 남 얘기 듣기 좋아하고, 남의 일 거들지 못해 안달이다. 학위는 없지만 상식은 누구 못지않다. 자격증은 없지만 시간은 남아돈다. 대관절 홍여사가 누구냐고? 별별다방의 여주인으로만 알아주시고, 그저 홍여사라고만 불러주시길. 그의 낡은 수첩에는 멀쩡하고도 근사한 남녀들이 털어놓은 온갖 유치하고 소심한 고민들이 넘쳐난다. 고민 있으세요? 인터넷 조선일보(chosun.com)에서 '별별다방'을 찾으세요. 고민 상담 이메일은 mrshong@chosun.com 손 편지나 엽서를 보내실 분은 중구 태평로 1가 61번지 조선일보 문화부 '별별다방'담당자 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