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새 한 마리
김수봉
가을도 짙어가는 어느 해질녘, 강가의 버드나무 잎 긴 가지에 물총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고개도 갸웃, 날개도 포르르, 머리 숙여 물속도 이윽히 들여다본다.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내 낚시터의 붕
어를 넘보는 것일까. 그러나 물총새는 작은 물고기를 먹고사는 놈이기에 나와는 무관하다. 푸른 깃털에 잘록한 꼬리, 참새보다도 작을 것 같은 몸매에 부리만 뾰족 길다. 그 푸른 빛은 가을 하늘보다 짙고 번쩍번쩍 빛난다. 그래서 이름하여 비취였을까. ‘비취’란 보석 이름이 먼저였을까.
어느 여름날 시내를 걷다가 물총새 한 마리를 보았다. ‘애조원(愛鳥苑)’이라는 간판이 붙은 가게였는데 금붕어와 열대어 그리고 여러 가지 새들을 파는 집이었다. 물총새는 새장 안에 갇혀, 만들어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금붕어 새끼 한 마리를 담은 작은 어항이 놓여 있었다. 주 인이 물총새의 먹이로 넣어준 것이리라. 그러나 물총새는 결코 금붕어를 찍어 먹을 것 같진 않았다. 어쩌다가 고개를 갸웃, 무엇을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갇혀 있는 것 같은 처지를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좁은 어항에서 작은 지느러미만 하느작거릴 뿐, 꼼짝 않고 있는 금붕어 새끼는 또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어려서 나는 물총새잡이를 해본 적이 있다. 저수지가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물총새의 날개 빛이 그렇게 고왔었다. 나무 위에 앉았다가, 혹은 공중에 떠서 물속의 새끼 고기를 노리다간 쏜살같이 내리꽂혀 고기를 찍어 올리는 기술에 감탄도 했었다. 저수지 무덤 아래 물 괸 곳에는 피라미가 많았다. 손을 움켜 피라미 한두 마리를 잡는다. 이것을 산 채로 두어 발 길이의 실에 묶는다. 물총새잡이 덫을 만드는 것이다. 물총새가 잘 앉는 나뭇가지를 알아놓고 그 아래 물속에 묶은 피라미를 놓아둔다. 한쪽실 끝은 돌멩이에 매달아두고, 그리고는 언덕 밑에 숨어서 머리만 내밀고 언제까지나 물총새가 날아올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물총새가 날아와 그 나뭇가지에 앉는다. 고개를 갸웃 갸웃, 그러나 별로 주의력은 없는 새인 것 같았다. 물속에서 피라미를 발견하고는 곧장 찍어 올린다. 실이 매달린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나, 어떤 때는 덫이 된 피라미를 좀처럼 찍어 올리지 않는다. 아직 보지 못한 건지, 보고도 먹을 생각이 없는 건지, 그러면 나는 안타깝게도 침을 삼키며 기다려야 했다. 피라미를 찍어 올린 물총새는 실이 달린 채 꿀꺽 삼킨다. 피라미가 큰놈이기라도 하면 쩝쩝 고개를 내둘러가며 삼키려 한다. 사람이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꾸역구역 삼키듯이, 결국은 그 좁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내 푸드득 날아가려 하나 돌에 매달린 실은 물총새를 실로 묶어 집에서 기르려 했다. 더 열심히 피라미를 잡아다가 먹이로 주었다. 그러나, 물총새는 잡아다 준 피라미를 먹으려 들지 않았다. 며칠을 먹지 않고 있는 물총새가 안타까왔다. 물총새는 힘이 다 빠진 듯 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잡고 있던 실 끝을 은근히 놓아줘 보았다. 그리고 날아 보라, 날아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멀뚱히 눈을 뜨고 있던 물총새가 처음에는 푸득 푸드득, 이내 훨훨 날아 멀리 숲 속으로 가버렸다. 나는 순간 아깝고 분했으나 이왕 날아가 버린 것 발목의 실이나 아주 풀어줄 걸 하고 후회했다. 그 실이 다시 어느 나뭇가지에 감겨버리지나 않을 것인가. 그러나 하늘의 자유를 얻은 물총새는 그동안의 배고픔도 잊은 채 안간힘으로 날아갔던 것이다.‘애조원’의 장안에 갇힌 물총새는 며칠이나 굶었을까. 주인이 차려주는 화려한 금붕어 식단을 앞에 놓고도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 물총새, 참다가도 언젠가는 찍어 먹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바르르 떨고 있는 것 같은 작은 금붕어의 지느러미 짓.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더 배가 고프면 제놈이 끝내는 먹고야 말 것인가.
요즘 세상엔 보기마저 어려워진 물총새. 도시 속에는 더욱 귀한 애완물이고 감상 물이다. 그 찬란한 푸른 빛 깃털, 흔한 참새를 보는 것보다 몇 곱절 더 특이하고 멋들어지게 생긴 새. 그 물총새가 차려주는 식단의 금붕어를 긴 부리로 촉촉 찍어먹을 때 사람들은 희한해하고 박수치며 기뻐할 것이다. 동물원 우리 안에서 사자에게 던져주는 토끼라도 연상하면서…. ‘애조원’ 주인은 또 잘 훈련된 물총새를 좋은 사람 만나 비싼 값에 흥정도 할 것이고. 그러나 물총새는 결코 금붕어를 찍어먹
진 않을 것 같았다.
내 어린 시절, 덫으로 놓은 물고기는 찍어 먹어도 잡아다 준 피라미는 먹지 않았던 그 물총새는, 자유가 배고픔보다 낫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놈일 것 같으니까. 나는 어려서나 지금이나 물총새가 떼지어 다니는 것을 못 보았다. 언제나 한 마리였다. 그래서 외로와 보이기만 하는 새였다. 그러나, 그 외로움이란 여러 무리로부터 속박을 벗어남인지도 모른다. 완전한 자유, 물총새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새이리라.
『장자(壯者)』에 이런 말이 있다.‘고기를 잡아놓고 물을 조금씩 부어주면 목마름을 적셔주는 고마움
을 알지만 강물에 놓아주면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를 잊어버린다.’ 시혜(施惠)란 베푸는 자가 누리는 자기 기쁨의 특권일 뿐일지, 받는 자의 영원한 즐거움은 결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