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92]콩, 콩, 콩… 피, 피, 피…나락, 나락, 나락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 한창 황금빛으로 변한 우리집 논이 그랬다. 피와 나락이 ‘반반’이라니, 정말로 체면이 안서는 일. 콤바인으로 수확하는 데는 아무리 많아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내년 농사를 생각해서라도 이대로 둘 수 없는 일이거니와 일단 나부터 보기가 싫었다. 하여, 그제 가위를 들고 논고랑을 더트며, 보이는 족족 윗부분을 잘라 푸대에 담았지만, 완전 역부족이었다.
할 수 없다. 도저히 못해먹겠다. 얼마 전 베트남노동자 2명을 고용해 하루종일 뽑는다고 뽑았지만 중과부족은 불문가지, 택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악의 씨’는 이렇게 지독하다. 어지간히 약을 한다해도 7년은 간다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방법은 단 하나. 올해는 그만두고 내년 모를 심고나서 사흘이내 물을 찰랑찰랑 가둔 상태에서 ‘마세트’라는 농약을 뿌리라는 것이다. 피의 특효약이라니, 그것을 기대할 수 밖에. 피, 피, 피, 질렸다.
또 하나, 600평 논에 옥수수를 베어내고 백태(메주콩)을 심었다. 옥수수 포기 사이에 심으니, 당연히 구멍은 6천여개. 혼자서 비 맞아가며 사나흘 걸려 심었는데, 믿어지지 않지만 60여개만 솟아났을 뿐이다. 어찌된 일인가? 내 잘못이었다. 쇠대롱으로 구멍을 뛰어다니다시피 하며 콩, 콩, 콩 뚫고(그러니 깊이가 30cm는 족히 되었을 터) 심었으니, 긴 장마비에 콩이 모두 곯은 것이다. 손으로 깔짝깔짝 심든지, 콩 심는 농기구로 심었으면 아무리 비가 많이 왔어도 이런 낭패를 보지 않았을 터. 저지러진 일을 어이 하랴. 말 그대로 완전 폭망. 문제는 가로세로 80m, 25m, 멀칭비닐 고랑이 모두 29개. 내년 무엇을 하든 비닐을 벗겨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사이 포기 사이에서 무성하게 솟아난 풀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비닐이 도저히 벗겨지지 않을 게 뻔한 일.
일단 풀약(제초제)을 했다. 모두 마르고 시들시들 죽어갔지만, 옥수수 뿌리들을 감싸고 자란 ‘바라구’라는 풀은 지독했다. 아무튼 한 고랑의 비닐을 벗기는데 30분이 걸릴뿐더러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그것을 아침저녁으로 7번에 걸쳐 2-3시간씩 했더니, 완전 파김치. 지금껏 해온 어떤 노동보다 가장 힘들었다. 오 마이 갓! 비명이 절로 나왔지만, 아무 재미도 없는 일을 마치니 내 자신이 용하게 느껴졌다. 누구의 도움도 요청할 수 없는, 어차피 나 혼자 할 수 밖에 없는, 폭삭 망한 콩농사의 똥치우기 작업은 마침내 끝이 났다. 오죽했으면 새벽마다 ‘아이고, 허리야’하며 끙끙 앓았을까? 내년에 이모작하면 성을 갈겠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멀칭비닐으로 재배하는 작물은 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최근에는 작물 수확 후 저절로 녹아 토양에 흡수되는 친환경 비닐이 나왔다지만, 나는 싫소.
어쨌건, 긴 장마와 폭우를 견디고 태풍 한두개까지 맞으면서도 나락이싸드락싸드락 영글어,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몇몇 집은 홍명나방으로 인한 잎말이병과 깨씨무늬병으로 시커멓게 먹어들어갔아도, 다행히 우리집 논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조생종 벼인지라 참새들이 나락을 좀 훑어먹었지만, 그것이야 무슨 대수랴. 추석 명절 이전에 나락을 벨 수 있게 되어 좋다. 품종은 ‘해담벼’. 올해 처음 지어보는 품종, 네이버에서는 밥맛이 아주 좋다던데, 나는 모를 일이다. 올해는 3필지(3다랭이, 1800평)이지만, 내년엔 이모작을 포기했으니 4필지에 벼를 심을 것이다. 일단 2필지 수확물은 베자마자 곧바로 정부에 RPC라는‘물수매’를 하면, 저들이 알아서 건조하고 등급을 매겨 통장에 돈을 보낸다. 1필지는 건조하여 방아를 찧는다. 식구끼리 노놔먹고, 좀 남은 것은 지인들에게 실비로 팔기도 한다. 직불금이 얼마 나오면, 3필지 임대료를 세 분 형들에게 줘야 한다(1필자 80kg 3가마값). 내 인건비는 차치하고, 농기계(이앙기,콤바인) 값과 3번의 드론농약값 그리고 볍씨 육묘값 등을 제하면, 1마지지(200평)에 20만원의 소득도 안된다며 많은 농민들이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게, 바로 바로 ‘농자지천하대본’이라는 쌀농사인 것을.
아무튼,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일이 아니건만, 어찌하겠는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해도 우리는 벼를 심거나 비닐하우스로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며 먹고사는 ‘운명’인 것을.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또다른 의미로는 인간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순진한’ 나는 생각하곤 한다. ‘자식들 손톱 밑에 흙이 끼게 하지 않겠다’는 평생의 목표로 이제껏 총생들을 뒷바라지한 우리 늙은 아버지의 바람을 나는 무참히 어겼지만, 노동을 모른대서야 될 말인가, 라고 늘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상당한 보람도 있었다. 앞으로는 어찌할지 모르지만, 10년만 더 전에 귀향했다면 욕심내 볼 농사도 많지만, 초로가 된 마당에 아무 생각없이, 거의 다 기계로 하는 판이어서 논농사는 비교적 아주 수월하니까, 한 세월을 유유자적 보낼 생각이다.그 나저나 내년엔 시기를 놓치지 않고 그 몹쓸 놈의 피, 피, 피가 자리를 못잡게 농약을 퍼붓고, 지금쯤, 논바닥에 온전히 나락, 나락, 나락으로만 넘실거리게 해야겠다. 나의 꿈이 얼마나 소박한가?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