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karma)의 법칙에 관한 대부분의 글들은,
우리의 행위와 그 결과들 간의 밀접한 일치성을 확실시하며,
업의 행위와 그에 따른 결과를 절대적인 법칙으로 강조라고 있다.
이러한 강조가 적절한 반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업이 작용하는 또 다른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며, 본질적으로 명백한 주제로서 강조되고 논의될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업을 경감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업을 결정하는 그 법칙이 유연성이 없이 기계적으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고,
결과가 이루어지는 그 안에서 아주 광범위하게 경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업의 행위가 항상 일정불변하게 그에 상응하는 동일한 크기로만 결과들을 낳는다면,
그래서 그러한 업의 결과가 경감되거나 해소되는 것이 배제된다면,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 이유는 소진되지 않는 과거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장애물의 결과인 불선한 업을
분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한 악업을 소진시키고 경감할 수 있는 길은 지금부터 선업을 행하는 길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붓다의 말씀을 잘 숙고해 보라:
”만약 한 컵의 물에 한 숟가락의 소금을 탄다면,
그 물을 마시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한 숟가락의 소금을 갠지스 강에 탄다면,
그 강물에 영향을 주기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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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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