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사
절에서 전하기로는 887년(진성왕 1)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1316년(충숙왕 3)에 덕현(德賢) 스님이 중창하면서 오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에서는 1482년(성종13)에 작성된 「강천사모연문」을 통해 이 해에 절이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모연문은 신말주(申末舟, 1439~?)의 부인 설씨가 적은 글로서 당시 강천사의 중건에 관련된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다. 신말주는 신숙주(申叔舟)의 동생인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는 1470년(성종 1)에 순창에 내려가 오랫동안 있었다고 한다. 이 모연문에 따르면 절은 옛날에 신령(信靈) 스님이 광덕산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그곳에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절이 폐허가 되자 중조(中照) 스님이 서원을 내어 시주를 모아 중창했는데, 부근에 부도가 있으므로 절이름을 임시로 부도암으로 불렀으며, 이 때 절은 비록 자그마한 규모였지만 청정한 수도처로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절은 다시 퇴락되었고, 중조 스님은 설씨의 도움을 얻어 중창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때의 중창은 설씨 부인의 힘이 매우 컸는데,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권위가 사회를 지배하던 당시에 여인의 힘으로 큰 불사를 이룬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모연문에 나오는 절의 창건 부분이 절에서 전하는 내용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중창 내력을 잘 전하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후 절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졌으나 1604년(선조 37)에 소요(逍遙)대사가 중창했다. 한편 1760년(영조 36)에 출판된 『옥천군지』에는 당시 절의 부속암자로 명적암 ․ 용대암 ․ 연대암 ․ 왕주암 ․ 적지암 등 5개 암자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절의 규모가 컸음을 집작케 한다. 이어서 1855년(철종 6)에는 금용(金容) 스님이 중창했다.
강천사 입구 강천문
강천산 등산로에서 바라다본 강천사
강천사 돌담
강천사 전경
강천사 요사채
강천사 요사채
강천사 수조
강천사 부재석
강천사 요사채
강천사오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서 1316년(충숙왕 3)에 덕현(德玄) 스님이 세운 것이다. 후보(候補)한 방형의 대석 위에 초층 탑신을 직접 세운 석탑으로,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1매석으로 구성되었다.
강천사 괘불석주. 경내에 3기의 괘불석주가 있다.
강천사 요사채
강천사 대웅전
강천사 대웅전벽화 십우도
대웅전내 삼존불
강천사 동종
강천사 전경
강천사앞 절의탑
강천사 찾아가는 길
88고속도로 순창톨게이트로 나와서 순창IC삼거리에서 순창 · 전주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경천교를 건너서 좌회전하여 1km정도 주행하면 옥천교사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옥천교사거리에서 24번국도 담양방면으로 좌회전하여 2km정도 주행하면 백산리에 도착하며 이곳에서 793번지방도로 강천산 ․ 정읍방면으로 우회전하여 6.5km정도 주행하여 강천저수지를 지나면 좌측으로 강천산군립공원으로 진입로가 나온다. 강천산군립공원 길을 따라 2km정도 주행하면 강천산군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주차장에 주차 후 강천사이정표 방향으로 1.5km정도 산행하면 강천사에 도착하게 된다. 강천사는 남한의 금강산이라 할 만큼 자연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첫댓글 전북 순창군 강천사
감사합니다. 수정합니다.().
아름다운 곳이네요
강천사는 관음도량입니다. 아홉번째 요사채(좌측) 뒤 대나무와 전나무(?)에 가려진 바위가 관음바위입니다. _()()_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