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7]큰처남考 “내년에도 밥 사줄 게”
주민등록은 임실 삼계이지만, 사는 곳은 전주인 큰처남(1951년생)의 전화다. “최서방, 톱하고 조선낫 좀 빌려줘. 글고 점심 거하게 살게” 그저 반가운데 그깟 점심이 대수인가. 농민수당을 받으러 올 겸 태양광밭 주변 나무 좀 쳐야겠다는 것이다. 처남의 고향(나의 처가)은 우리집을 거쳐 가야 하는, 기차도 안다니는 두메산골이다. 처남은 마을앞 밭에 태양광을 설치, 한 달에 200만원은 고정수입으로 들어오니 해피한 편이다. 요즘 200이 어디인가? 가끔 예초도 해줘야 하지만, 그것도 안해서야 되겠는가.
농민수당은 1년에 한번 요맘때쯤 30만원짜리 카드 두 장으로(1가구 1수당) 지급되는데, 군내에서만 써야 한다. 최근 군소재지에 제법 비싸서 그렇긴 하지만, 럭셔리한 식당 <한우명품관>이 생겼는데, 아무튼 좋은 일이다. 추석 직후 서울에서 친구부부가 내려와 갈비탕을 먹었는데, 15000원치고 먹을만 했다. 메뉴판도 신식,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노트북으로 주문을 한다. 세련됐다. 6인이 앉을 수 있는 입석 방이 12개 있는데, 방이름이 재밌다. 군내 면의 이름(청웅방, 임실방, 삼계방, 오수방, 운암방, 강진방, 신평방, 신덕방, 관촌방, 지사방, 성수방, 덕치면)을 땄다.
이 양반은 상당히 재밌어 ‘인간탐구’대상으로 충분하다. 익산의 한 중소기업 중역으로 은퇴한 후 집주변 도서관이 제2의 삶의 ‘직장’이라고 한다. 그동안 읽지 못한 책들을 읽는 재미에 쏘옥 빠졌다. 거개 잊어버린 한자도 배우기 시작해 내년부터는 사서삼경 등 고전을 읽겠단다. 잘될지 모르지만 포부가 대단하다. 6남매의 둘째로 1년에 최소 서너 번은 만나는데, 나에게 무심한 듯해도 관심이 있다. 식당에 앉자마자 “가실일이 끝났을테니 올 농사는 땡이지? 욕봤다는 의미로 쏘는 거야. 내년에도 요맘때 농민수당 받아 쏠게”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디인가. 어느 누가 가실일 끝나 애썼다고 비싼 소고기로 점심을 쏘겠는가. 살풋 감동이다. 등심세트(420g) 65000원. 둘이 먹기에 맞춤이다. 전주에서는 250g이 35000원이라니 조금 싼 편인가. 명품 VOP세트메뉴가 14만9000원(3인분?). 한우韓牛의 이름이 ‘참예우’란다. 멋진 이름이다.
커피타임까지 1시간 30여분 동안, 서로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의 부부생활과 노후의 삶이 주요 화제였다. 처남은 나라에서 ‘졸혼卒婚’을 아예 제도화해야 한다고 해 웃었다. 여성들이 60을 넘으면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와 갈수록 드세진다는 것인데, 물론 처남댁이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주변을 살펴보니 일반론이더라는 거다. 그 말을 들으니 그 말도 맞을 것같고, 월말부부인 나로서는 졸혼과 마찬가지인 듯해 또 웃었다.
결혼 40년이 넘으면 옆지기를 알만큼 알텐데도 상대방에 대한 ‘마음 비우기’가 잘 안되는가 보다. 나는 노년의 부부는 ‘운명공동체’라는 말로 맞섰다. 누구라도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나면 단 둘만 남는데, 무엇을, 누구를 위해 옥신각신 젊은 날처럼 의견충돌을 한단 말인가. 운명공동체, 백 번 좋은 말이다. 오누이처럼 의좋게 살아도 부족할 터인데, 서로 조금만 이해하고 양보하면 싸울 일이 뭐 있겠는가(이 말을 들으면 나의 친한 친구들은 ‘서천소가 웃겠다’며 입을 삐죽거릴 게 뻔하다. 하하).
이 양반, 도서관에서 문학서적이나 교양서도 읽겠지만, 몰두하는 게 나하곤 정반대이다. 미국 주식시장을 늘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쪽 방면은 완전 문외한으로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미국증시로 일반 직장인 연봉(1년 3천여만원)만큼은 번다는데, 정말 ‘재주가 메주’이다. 대단한 특기이지만 조금도 부럽지는 않다. 세상을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처럼 자기 취미대로 살아가며, 어지간한 일엔 무심하고, 무심해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수십년 동안 ‘골프홀릭golfholic’(업무관계 등 1주일 두세 번)이었는데, 어느 순간 칼로 무 자르듯 끊어버린 강단의 소유자인 것도 희한하다. 하여, 처남의 호를 ‘무심無心’으로 지어줬더니 맞춤이라며 좋아한다.
나도 그 형님처럼 책이나 글을 하루 아침에 딱 끊어버릴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할 듯하다. 어쨌든, 농촌에서는 언제든 누구라도 오면 손에 금세 쥐어줄 수 있는 게 있어 좋다. 끝물 가지와 막 크고 있는 무 몇 개를 뽑아줄 수 있어 다행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오라버니, 인척(姻戚, 아니 처남까지는 친척일 듯도 하다)과 인간적인 정情은 1년에 서너 번 만나 밥도 먹으며 이렇게 이어지고 깊어가는 것인가. 내년 요맘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공짜점심?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