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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낭(변소) 귀신
전 호준
천지가 개벽 된 지금도 그때 그 버릇이 은연중 남아 있다.
화장실에 갈 때 문을 열고 들어서면 헛기침을 두세 번 크게 한다.
“아이고! 우짜겐노? 아랫마 00띠 할매 돌아가셨단다.”
“식전에 정나 갔다가 넘어져 말 한 매디 못하고 돌아가셨다, 안카나! 뭣이 정낭 귀신이 돌아봤다나?” 동네 샘터에 물 길어 갔다가, 이고 온 물동이를 내리지도 않고 방을 향해서 하는 어머니의 애달픈 목소리다.
“어메! 정낭 귀신이 뭔데?” “니들도 정나 갈 때 조심 하그래이” 정나 들어갈 때 헛기침을 시 번 크게 해 래이~ 그래야 정낭 귀신이 놀래지 않아 암 탈 없다 안카나” “정낭 귀신이 왜? 놀래는데?” “정낭 귀신이 머리를 풀어 빗는데 사람이 갑자기 정 나 아 들어오면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면 머리카락에 맞은 사람은 질(疾)) 본다, 안카나!” 그 옛날, 그 시절 심심찮게 들어온 정낭(변소) 귀신 이야기다.
어릴 적 화장실은 무서움 그 자체였다. 대다수 화장실은 집 뒤쪽 한쪽 구석에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낯에도 어두컴컴하다. 낯에는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밤중에 볼일이 생기면 꼭 보초병이 한 명 붙어야 했다. 작은 것은 방안에 소변기(요강)가 있으니, 걱정 없지만, 갑자기 한밤중 큰 것이 마려우면 성냥불과 보초병이 필요하다.
“오빠! 거기 있제?” 응, “오빠 가지 말고 거기 있어” “알았어!, 어 추워 아직 멀었어?” 응, “조금만 기다려 오빠!” “노래나 좀 부르지,” 열두 살이나 어린 막내 여동생 화장실 행차에 단골 보초병 시절이 생각난다.
어릴 적 귀신 이야기는 왜 그리도 많았던지, 한여름 멍석을 마당에 깔고 모깃불을 피우며 마실 나온 아지매들의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보다 더 오싹한 귀신 이야기에 어머니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귀를 쫑긋해 들으면 한여름 더위에도 몸이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끼곤 했다.
특히 학교 화장실에는 귀신 이야기가 꼭 하나씩 뒤따랐다. 초등학교 화장실은 교사 뒤편 고목이 된 호두나무 아래 있었다. 옛날에 실연한 처녀 선생이 화장실 창문으로 뻗어 나온 호두나무 가지에 목메 죽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우리들 사이에 퍼졌다. 밤에는 처녀 귀신의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 때문에 한낮에도 혼자서 화장실 가기가 무서웠다.
사람이 사는 집에는 가신(家神))이 있다고 한다. 집을 지키는 성주신과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 신, 측간에 사는 측신(정낭 귀신) 등이다.
성주신은 가신 중 가장 으뜸 신으로 길흉화복과 곡식을 관장 한다 하여 항아리에 쌀을 담아 안방 귀퉁이 선반에 올려 두는 성주단지나, 한지를 고이 접어 실로 매고 마루 기둥에 매어놓고 섬기던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조왕신은 부엌을 관장하는 신으로 음식을 잘 만들고 쌀 한 톨도 소홀히 다루지 말며 청결과 정리 정돈을 감시하며 잘못하면 가난을 준다는 신으로 우리 어머니들이 가장 신경 쓰는 가신이었다. 음력 섣달 스무 사흗날 사조일에 목욕재계하고 조왕신에 치성을 드렸다
일명 측도 부인이라 불리는 정낭 귀신은 쉰 댓 자나 되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신(女神)으로 신체가 없는 건궁 이라 별도의 의식(儀式)은 없다. 성격이 포악하여 노여움을 잘 타 두려운 존재로 여겼다. 변소에서 병을 얻거나 사고가 나는 것은 바로 이 정낭 귀신의 소행이라 믿었다.
원래 부엌 신인 조왕신과 처첩 관계로 조왕 할멈을 죽이려다 발각되어 뒷간으로 도망가 목메 자결한 측도 부인이란 이름의 정낭 귀신이 되었다 한다.
조왕신과 정낭 귀신은 원수지간으로 사람들은 집을지를 때 부엌과 측간은 바로 보이지 않게 되도록 멀리 떨어져 지었다. 측간의 돌멩이 하나, 부엌물건 역시 측간에 가져가지 않은 것은 이 때문에 생긴 관습이라 한다.
아이들이 변소에 신발을 빠뜨렸거나 사람이 실수로 변소에 빠졌을 때 떡을 해 놓고 측 신에 빌고 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측 신이 노하여 탈이 난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현대 문명에 밀려 살아진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현대 상식과 의학적으로 검증된 일리가 있는 말들이다. 중풍이라 불리는 뇌경색과 뇌출혈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되어 일어난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방안에서 갑자기 나와 바깥 화장실에서 하의를 내리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혈관은 수축한다. 이때 항문에 힘을 주면 나이든 고혈압 환자는 뇌동맥이 압박을 받아 큰 것이 터지면 곧장 사망, 실핏줄이 터지면 혼수상태로 깨어나도 반신불수가 된다. 지금은 의술의 발달로 혈압을 측정하고 약을 먹어 조절한다.
뇌출혈이 발생해도 급히 병원에 가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는 혈압이 무언지도 잘 모르고 병원도 멀고 귀하니, 침묵의 살인자라는 이름같이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화장실에서 쓰러지니, 귀신의 소행이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 같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헛기침을 하는 것은 자던 뇌를 활성화하는 역할도 하지만 노-크 를 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옛날 시골의 화장실은 대개 문이 없었다. 입구에 흙 담을 쌓아 사람이 앉는 자리는 밖에선 곧장 보이지 않게 달팽이 식 구조로 만들거나, 화장실 문은 짚을 엮어 발 모양으로 늘어놓았다. 헛기침하는 것은 안에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화장실과 부엌이 멀리 떨어진 것은 위생 때문이다. 한여름 벌 통시는 집집이 다를 바 없었다. 바글거리는 구더기며 파리 때 코를 찌르는 악취 사돈댁과 화장실은 멀면 멀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그 져 나온 말이 아니다.
화장실에 신을 빠뜨리거나 빠졌을 경우 깨끗이 씻고 떡을 해 화장실에 빌고 먹는 것은 그 불결하고 냄새나는 화장실이 사실 장래 곳간을 채워줄 비료 공장으로 신성시 여겨왔기 때문이다.
비료가 없던 시절 인분은 인류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거름의 역할을 했다. 격한 냄새와 불결함을 떠나 불경한 짓에 대한 사과의 표시였다.
사실 우리가 먹은 맛있는 음식이 소화 과정을 거치면서 심한 암모니아 냄새를 풍길 뿐이지 그 원료는 우리가 날로 먹는 맛있는 성찬의 찌꺼기다.
원시 농경시대에는 산에서 나는 황금과 사람이 만드는 황금이 쌍벽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돈을 들어 처리해야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학교 화장실은 과수원집이나 대농가에서 수의 계약으로 돈을 받고 대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장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래전 고인이 된 친구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2.3학년쯤일까? 친구들과 어울려 구슬치기를 하다가 이 친구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찾는다. 놀던 집 친구네 화장실도 있고 건너편 우리 집 화장실도 있다고 하자, 자기 집은 너무 멀고 같은 값이면 우리 삼촌 집 화장실에 간다며 오십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뛰어가던 친구가 오늘날까지 잊혀 지지 않는다. 누런 것은 모두가 황금으로 보였을까? 어린 마음에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 시절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2017. 10. 31
첫댓글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는 글입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땀흘린 세대들의 노력을 그들은 모르겠지요.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예전 우리집 화장실이 생각합니다 . 우리동네 어르신 한분은 매일 화장실의 똥을 퍼서 아침에 똥장군을 지게에 지고 밭으로 가지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분은 농촌의 중요한 거름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련한 어린 시절, 시골에서 야간에 용변을 보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믐날 화장실이 무서워 못 볼 땐, 거름 무더기에 용변을 보기도 했지요. 글을 통하여 다양한 가신에 대하여 새롭게 공부하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변소 귀신 아련히 기억이 납니다. 우리 어머니는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장독대나 부엌에서 냉수를 떠놓고 손을 삐삐며 간절히 빌고 비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당시로서는 일리가 있고 정성을 기울리는 처방이라 여겨 집니다. 어릴때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젊은 세대에겐 정말 전설같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사랑방 좌담에서나 듣는 것 같은 구수한 얘기입니다. 경상도 아지매 사투리가 더 구수하게 느껴집니다. 성주신 조왕신 얘기 얘기도 그렇고, 이웃나라 동화를 읽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조왕신과 정낭귀신이 처첩간이며 원수지간이라는 야담을 처음듣습니다. 설화를 만들어 낸 우리조상님들의 지혜도 과학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엌과 정낭은 떨어져야 한다고 한것은 세균감염도 떨어지면 아무래도 덜할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재미있고 구수하게 잘 읽었습니다.
정낭부터 화장실까지 그 변해 온 모습대로 체험을 해온 세대이긴 합니다만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선조들의 지혜와 살뜰함을 배웁니다. 화장실이란 글제를 가지고도 황금빛 구수한 이야기가 태어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