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야기 - 숭인동 시간의 사연을 조용히 지켜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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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09.13. 18:56조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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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
숭인동
시간의 사연을 조용히 지켜오다
숭인동은 서울 종로구에 속한 마을로 명칭은 조선시대 동부 인창방과 숭신방에서 유래한다. 조선시대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사연이 담긴 동망봉과 여인시장터 등이 있으며, 동묘시장이 유명한 마을이다. 행정동은 숭인 1,2동으로 나뉘어 있으며 창신동과 함께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선정되어 있다.
창신동과 함께 조선시대 숭신방과 인창방의 이름으로 시작한 마을 숭인동. 숭인동은 낙산자락에 위치한 조용한 주택가 마을이지만 그 안엔 많은 역사와 기억이 담겨있다. 조선시대 한 여인의 사연부터 일제강점기의 아픔, 현대 변화를 담은 벼룩시장, 도시재생의 변화까지... 굵직한 역사의 현장에 일상이란 이름으로 시간을 이어온 조용한 마을 숭인동으로 가보자.
1.숭인동 역사
[골목이야기]낙산에서 이어온 이야기, 숭인동
시간이 남은 모든 사연을 마을 안에서 지켜오다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숭인동은 원래 한성부 동부 인창방과 숭신방에 속한 지역이지만, 낙산 자락에 위치한 까닭에 산으로 더 잘 알려진 마을이었다. 그래서 마을 이야기 역시 낙산 봉우리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낙산은 청룡사, 보문사 등 고려 때부터 이어온 사찰들이 제법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비구니 사찰이었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궁인들이 많이 들어와 '니사(尼舍)' 지역으로 더 알려지게 된다. 이 중 한 여인의 사연은 마을의 역사로까지 자리잡는다.
단종이 삼촌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가게 되면서 그의 부인 정순왕후 송씨 역시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갈곳을 잃은 그는 도성 근처 낙산으로 들어와 청룡사 부근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 한다.
얼마 후 단종이 죽자, 정순왕후는 매일같이 낙산 꼭대기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지아비의 명복을 빌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은 마을 사람들을 통해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고, 그 때부터 낙산 동쪽 봉우리는 '동쪽을 바라본 봉우리'라는 뜻의 동망봉이 되었다 한다. 후에 이 사연을 들은 영조는 바위에 친필로 동망봉을 새기는 동시에 정순왕후가 머문 터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비석을 새워 그를 기리게 했다.
정순왕후의 사연은 마을 곳곳에도 남았다. 단종을 영월로 떠나보내며 이별한 다리는 '영영 건너가 버린 다리'라는 뜻의 영도교(永渡橋)가 되었고, 왕비와 그를 따라 나온 궁녀들이 생계를 위해 천에 물을 들였던 샘은 '자줏빛 물이 나온 샘'이라는 뜻의 '자주동샘(紫芝洞泉)'이 되었다. 또 쫓겨난 왕비를 돕기 위해 마을 여인들이 만든 채소시장은 '여인시장'이 되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그러나 수세기를 이어온 마을의 사연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위기를 맞는다. 낙산의 화강암은 근대 석조 건물의 좋은 재료가 되었고, 일제는 국영 채석장을 만들어 조선은행, 경성역, 조선총독부 등을 짓는데 사용한다. 동망봉 역시 채석장의 하나가 되어 크게 훼손된다.
일제강점기 채석장으로 쓰인 동망봉 ⓒ 김민우PD
하지만 오랜시간 마을을 이어온 사람들은 남은 공간을 활용하며 옛 기억을 이어갔다. 채석장으로 인해 도로가 생기고 인구가 늘어나며 좌우로 나뉜 마을은 옛기억을 더듬어 창신동과 숭인동으로 살려냈다.
또 마을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지난 세월을 지켜냈다. 근대 이후 형성된 골목은 거의 그대로 남았고, 그 덕에 동방봉의 옛 기억부터 근대 도시한옥, 현대 주택의 모습까지 마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숭인동은 다양한 세월을 겪고, 또 변화를 맞으면서도 골목 안 사연만큼은 차분히 모아오고 있다.
숭인동 일대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제공
동망봉 역사
1457년 정순왕후 송씨, 부인으로 강봉
1457년 청룡사 부근에서 기거(추정), 단종사망
1457년 정순왕후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 명복을 빎
이후 마을 사람들이 '동망봉(東望峰)'이라 명명
1698년 단종 추복(追復)과 함께 정순왕후도 추복
1771년 영조 정업원구기 세우고, 동망봉 친필로 새김
1924년 일제, 동망봉에 경성부 직영 채석장 설치
1980년 동망봉일대, 숭인근린공원 조성
2008년 정순왕후 추모 문화제 시작
2. 모두의 핫플레이스, 동묘시장
"레트로 핫플레이스가 궁금해?"…동묘시장을 가다.
조용한 공원에서 모두가 찾는 시장이 생겨나다
동묘 담장을 따라 노점상들이 길게 늘어선 동묘 시장은 중고품과 옛 물건을 찾는 노년층이 많이 주로 찾는 시장이다.
원래 동묘는 임진왜란 시기 명에 의해 만들어진 사당으로, 나라를 지키는 무의 상징 관우를 모시는 공간이다. 동쪽에 설치했다 하여 '동묘'로 불렸는데 이후 북묘, 서묘는 사라지고 동묘만 남았다.
무속신앙적인 성격이 강한 까닭에 조선 이래로 동묘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된다.
그러다 1976년 문화재 복원 작업으로 동묘공원이 조성되며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지만 당시에도 '문화재'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한다.
6,70년대 진행된 청계천 복개 이후, 청계천 주변으로 상권이 형성되면서 동묘 주변에도 상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때가지만 해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에 불과했던 동묘 일대는 청계천 복원과 함께 다시 변화를 맞았다.
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과 함께 청계천 일대 상인들이 자리를 잃게 되면서 공터와 다름없었던 동묘공원 앞 일대에는 많은 상인들이 들어와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기존에 있던 상권과 결합하며 '동묘시장'으로 이름을 알린 것이다.
동묘공원이 있어 주로 어르신들이 모였기 때문에 수요에 따라 중고품을 주로 내다 팔았는데, 그것이 하나의 차별점이 되어 ‘어르신들의 홍대’라는 별칭까지 생겨났다.
어르신들의 홍대, 동묘시장ⓒ김민우PD
다양한 중고품, '레트로 감성'을 만날 수 있는 동묘시장 ⓒ김민우PD
최근 '레트로 열풍'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옛 물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제 동묘시장은 신세대들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는다. 실제 시장 곳곳에서는 옷을 노년층과 청년층을 모두 볼 수 있다. 이같은 변화에 따라 시장에는 젊은 상인들도 유입되며 ‘복고’ 중심의 문화 시장으로도 자리를 잡게 된다.
지난 시간 숭인동이 그랬던 것처럼 동묘 역시 큰 변화를 없이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이 오가는 독특한 골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할 수 있다.
동묘시장 변화
1601년 동관왕묘(東關王廟), 동묘 건립
1973년 청계천 복개공사 완료
1976년 동묘 보수공사하며 동묘공원 개관
이후 청계천일대 상권 형성
1980년대 동묘시장 형성
2005년 청계천 복원, 청계천 주변 상인 이주
2008년 청계천 주변 상인 대거 동묘시장에 유입
2010년대 동묘시장 '구제시장'으로 대중에 각인
2018년 '레트로 열풍'과 함께 청년층과 외국인이 찾는 관광지
3. 골목에서 꽃피는 마을 이야기
[골목이야기]낡은 것에서 찾은 의미…숭인동이 사는 법
마을의 변화보단 도시재생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다
낙산자락 동망봉에서 시작해 많은 이야기를 이어온 숭인동은 그 시간 덕에 일반적인 현대도시와는 다른 이야기를 골목 안에 품고 있다.
먼저, 낡은 주택들이 주를 이룬 숭인2동 골목은 한 노화가의 재능기부로 색다른 의미를 얻었다. 7,80년 대 주로 유럽에서 활동한 김용기 화백이 자신이 30여 년간 살아온 골목에 직접 벽화를 그린 것이다. 그는 지난 2012년 종로 65길 일대 11개소에 자신의 화풍 그대로 그림을 그렸고, 아이들도 일부 그림에 참여하면서 주민들이 함께 만든 벽화 골목을 만들었다. 낙후된 공간으로 여겨졌던 골목이 노화가의 시간과 만나며 새 의미를 얻으며 하나의 예술공간이 된 것이다.
지난 시간을 살린 공간은 한옥에서도 이어졌다. 보문동, 안안동과 더불어 대규모 도시한옥 단지를 이뤘던 숭인2동 지역은 도시개발 과정을 거치며 신축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한옥이 설자리를 잃게 되자, 마을은 원래 식당으로 쓰였던 한옥을 매입해 마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했다. 한옥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낡고, 불편한 점은 개선해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지난 2014년 개관한 '도담도담 한옥도서관'은 아이들에게는 한옥이라는 새로운 추억을, 어른들에게는 지난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한옥을 리모델링해 도서관으로 만든 '도담도담 한옥도서관' ⓒ김민우PD
숭인1동 지역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창신동과 함께 지난 2014년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선정된 이 마을은 '도시재생'의 의미를 담아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공간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회의를 통해 낙후된 골목길은 개선하면서 마을에 필요한 주민공동시설을 만들기로 했고, 지난 2018년 주민공동이용시설인 '수수헌'을 설립했다. 설립부터 운영과 이용 모두 주민들이 직접 맡아 진행하면서 숭인동에도 이웃끼리 자연스레 어울리는 문화가 생겨났다. 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필요한 부분은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골목은 사람 사는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이처럼 숭인동은 지난 시간은 살리면서도 새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간의 공존을 통해 마을과 사람의 이야기를 차분히 이어가고 있다.
도움주신분
유양순 종로구의회 의장
문무현 종로구 골목길 해설사
양영한 전국노점상총연합회 동묘지역장
이영만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이사
손경주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이사
조성희 도담도담한옥도서관장
자료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특별시 항공사진 서비스
서울연구원데이터서비스
시사TV코리아 권대정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도담도담한옥도서관
[네이버 지식백과] 숭인동 - 시간의 사연을 조용히 지켜오다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