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무안 모임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술 한잔 생각에 양주 몇 병 들어있는 장식장을 들어다 보다가 눈에 익은 기념패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기념패를 물끄러미 바라다보니 지나온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서 잠자리를 더욱 설치게 되었지요. 새벽에 일어나서 갑자기 시상이 떠오르는 시인처럼 비몽사몽간에 학교 때 글짓기 시간을 떠 올리며 선생님에게 제출해야하는 시간동안 기필코 써 내야한다는 쫒기는 마음으로 몇 자 써 내려 갑니다.
제목; 재경 성모중학교 8기회 역사의 뒤안길을 뒤돌아보며.....
같은 국민학교를 다닌 친구끼리는 더 오랜 세월이겠지만 우리가 성모중학교에 입학한 해로 계산한다면 서로 만난 지 48년(67년도)이 되었고 졸업한지 45년(70년도)이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 곁을 너무 빨리 떠난 친구들도 많이 있으나 우리는 아직도 건재하게 26년간 재경 성모중학교 8기회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하느님께, 부모님께 그리고 거의 고인이 되셨을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흘러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수도권 모임의 결성 과정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폐결핵과 색맹 때문에 방위훈련조차 받지 못 하였습니다만 우리 머스막들이 군대 생활 할 때쯤 저와 군대 못간 전 재경 그리고 김 옥자, 이 수산나, 이 정희, 임 순, 이 애숙, 김 순주 등이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려고 자주 모여서 봄, 여름, 가을 남이섬 야유회를 가게 되었고 제대 후 수도권에 둥지를 튼 김 향영, 김 동윤, 장 판홍 등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꿈 많았던 20대가 거의 지나갈 무렵 가스낙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여 떠났고 그 자리를 김 향영, 전 재경, 저의 각시들과 김 향영, 전 재경의 고등학교 절친인 김 향석, 임 오엽 등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임은 후일 가족모임이 되어 아직도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대를 하고 수도권에 둥지를 튼 머스막들이 하나둘씩 연줄연줄 연락이 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1982년 경 윤 양진 친구의 결혼식을 계기로 성중 8회 모임을 결성해 보자는 생각으로 장 판홍 친구가 중심이 되고 조 옥우 친구의 노력으로 꽤 많은 머스막들을 참석시켰습니다. 모인 동기는 누구나 그렇듯이 고향이 그립고 흑산도 아가씨 노래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깨벅쟁이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만나서 얼굴보고 한잔 하면서 정담 나누는 정도의 성격이어서 3년 정도는 잘 이루어 졌으나 운영자금 등 이런저런 문제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 하였습니다.
그 후 3년 정도 세월이 흐른 뒤 저는 무너져버린 성중 8기회 모임을 다시 만들어야 겠다 는 결심을 하고 다시 흩어진 친구들을 있는 힘을 다하여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6년 전인 89년도에 이 부족한 사람이 초대 회장을 맡았지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시집간 가스낙들도 끌어 들여 많은 인원이 되었습니다. 많이 모였든 날을 40명이 넘는 날도 있었지요. 요즘은 휴대폰도 있고 단체 문자도 있어서 편리하지만 집에 전화가 없는 시절이라 직장으로 연락할 수 밖 에 없어서 자리에 없으면 또 하고 또 하고 하여 한번 모임에 윗사람 눈치 봐 가면서 두 세 번씩 하는 것이 보통이고 연락이 안 되어 퇴근 후에도 끙끙대는 모습을 보고 집사람이“뭘 그렇게 까지 열심이냐‘고 핀잔을 주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다른 직원 퇴근한 후 몰래 모임안내장 50여장을 복사해 오면 우편 발송 담당을 전담해 주었답니다. 법학도인 전 재경 박사가 회칙까지 꼼꼼히 잘 만들어 주었지만 우리 모임에는 너무 거창해서 그냥 얼굴 보는 모임으로부터 시작하자는 취지로 사용하지 않았었습니다.
누구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라 월 회비 제도가 있었으나 잘 걷히지 않아서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임 때마다 멀리 광주에서부터 거액의 찬조금을 들고 참석한 이 민희 친구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고맙고 또 미안하게 생각되는 것은 회사가 잘못되기 두 달 전까지도 찬조금을 들고 참석하였고 눈치도 없는 이 사람은 그걸 덥석 받았습니다.
나중에 사정을 알게 되어 모금운동을 벌여 몇 푼 안 된 위로금을 전달하였지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우리 모임의 성격은 회장, 총무가 감투가 아니고 심부름꾼입니다. 현 회장님을 비롯하여 역임하신 모든 회장님, 총무님의 노고로 인하여 8기회의 역사가 하루하루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마와 싸우다가 먼저 떠난 친구들의 병원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모금 운동을 여러 차례 실행하여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마음을 전달한 것도 회장단의 헌신적인 노고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고구려 시대의 가장 찬란했던 광개토대왕 장수왕 시대를 찾으라고 한다면 이구동성으로 김 장식, 박 삼옥 전 회장님을 떠 올리지 않은 자는 없을 것입니다. 김 장식회장님은 정체되어 있던 조직을 저변 확대로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친구들을 끌어 모아 졸업후 몇 십 년 만에 만나게 하는 쾌거를 이뤄주셨고 전국모임의 전기를 마련하여 주었으며 동문회 회장 역임시 모교 장학금 제도까지 만들어 우리 8기회의 위상을 세워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박 삼옥 회장님은 퇴임 후 침체되어가는 8기회가 위기에 처해있는 모습을 보고 발 벗고 나서서 유일무일 하게 그 힘든 회장직을 두 번 역임한 회장님입니다. 제가 회장 시절입니다만 우리 학창시절부터 보아온 고 이 기복 선생님의 절룩거린 다리인공수술 때 우리 회원들은 수술비 지원과 가끔 병문안 정도 밖에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마산에서 상경하여 동생과 같이 개원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려운 시기에 박 삼옥 회장님과 동생 박 옥선 후배님은 몇 달 동안 그 이상의 모든 뒷바라지를 다 하셨습니다. 수술 후 더 좋지 않았다는 항간의 루머에 시달려 마음고생도 하였지만 우리 8기회의 똘똘 뭉친 힘이 아니면 그 누가 감히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며 박 삼옥 회장님과 박 옥선 원장이 없었다면 우리 또한 꿈도 꾸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기에 열거하지 못한 업적이 수 없이 많은 두 회장님인데 그 흔한 감사패 하나 못해 드린 것이 못내 아쉽고 제 기념패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 한이 없습니다.
또 각 지역에서 열심히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오늘 같은 성중 8기회 전국모임이 매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라도사람 무시하는 적지에서 영남 권 8기회 부부모임을 만들어 보란 듯이 꿋꿋이 살아가는 우리 친구들이 없었다면 경상도는 보리 문딩이들 만 득실거리는 곳으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 이였을 것입니다. 그 주축 돌 역할을 하신 박 형재 회장님을 비롯하여 모두에게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허리가 튼실해야 힘을 쓰듯이 몇 안되는 인원으로 똘똘 뭉쳐서 좋은일 궂은일 마다않고 쫓아다니는 중부 권 8기회 회원님들께도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영동 권에서 오롯이 돗대로 살면서 “경상도보다 강원도가 전라도 사람 괄시 정도가 훨씬 심해야”하면서 속엣 말을 쏟아내던 김 옥자 친구는 서러워서 친구가 더 그리웠던지 먼 길 마다않고 애경사와 모임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지만 고속버스비 단 한 번도 보태주지 못했고 혼자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아픕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좋은 자리를 마련 해주시고 고향을 끝까지 지키면서 고향을 찾는 친구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뜨끈한 고향소식을 전해주며 수도권 등의 애경사에도 빠지지 않은 호남 권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왼쪽 팔이 부러져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연자방아에서 놀고 있는데 6학년 재수한 친구가 뒤에서 갑자기 밀어서 부러진 것입니다. 중학교 입학시험 응시를 할 수 없어서 부득히 6학년 재수를 한 탓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치게 한 친구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지요. 제대로 진학했으면 7회 졸업생이 되어 지금쯤 외로운 인생을 살고 있을 테니까요.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옛말과 같이 우리 모두는 깨벅쟁이 친구이기 때문에 26년이라는 8기회 역사를 이루어 냈으며 앞으로도 족히 30년은 더 지속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친구들에게 두 가지를 제안 하고 싶습니다.
그 첫 번째는 10여 년 전에 고향 흑산도에서 전국모임을 하였습니다만 먹고 사는 것이 바빠서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 못 했었습니다. 몇 년 후 거의 모두 일손을 놓았을 때쯤 따뜻한 계절에 고향모임을 재추진합시다. 우리가 공부하고 뛰어놀던 성모중학교교정도 둘러보고 각자의 종교는 다르지만 신부님께 특별히 부탁하여 이 명식 친구가 복사를 맡은 미사를 중학교 때처럼 다함께 참석하여 미사를 드리고 걸어서 이미에서 시작해서 대목, 청재미, 사촌, 심촌, 여티미, 꼴끼미를 거쳐 배낭기미에서 자리를 잡고 10여 년 전처럼 전복, 소라, 장어 등을 구워 먹어가며 세상이 떠나갈 정도의 큰 소리로 산다이를 하는 2박 3일 정도의 일정으로 재추진 해 봅시다.
두 번째는 24년 후인 2039년도는 재경 성모중학교 8기회 결성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들 나이는 86세가 되지요. 그 해에 저를 회장에 또 다시 임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때 지금처럼 참석하려면 우리 모두가 담배는 당장 끊고 술은 조금씩 줄이며 반면에 운동은 조금씩 늘려서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허세의 조끼는 벗어던져버리고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항상 즐거운 생각으로 생활하며 즐길 수 있을 때 즐긴다는 마음으로부터 여유로운 생활을 하려고 노력합시다.
우리 모두가 무쇠 같은 건강으로 100세에도 모여서 성모중학교 8기회모임을 기네스북에 올려 봅시다.
우리 친구들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2015년 5월 30일
김 섭
역대 역임 회장단
1대 김 섭 2대 정 명환 3대 이 철우 4대 김광석 5대 김 장식 6대 박 삼옥 7대 이 상혁
8대 박 삼옥 9대 박 환성 10대 김 향영 11대 조 용근 12대 최 승남
첫댓글 기억을 더듬어 작성하였으나 5월 30일 발표한 내용이 부실한 부분이 있어서 장 판홍 친구의 기억을 빌려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