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야 자청한 일이니 후회될 일 바이없고 병고는 하늘의 뜻이라 부끄러울 게 없다 오히려 옷소매에 피는 보푸라기꽃이 아름다워 오늘도 꽃밭 사이에 서보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가끔은 두렵고 고개가 저어지기도 하지만 왜? 하고 되돌아보기도 하지만 결국 내 앞의 풍경을 사랑하는 나에게 지고 만다 기어이 일어서는 나에게 밀리고 만다 누가 이기든 지든 면류관을 나에게 돌리는 그대
수경아, 아침이다 들길로 나가자 사람들은 사람들이고 나는 나다 내가 가는 길을 나는 간다*
보푸라기꽃 발길 옮길 때마다 향기 피워 올리고 눈썹처럼 떨리는 꽃잎들 제 몸을 안은 채 걸어가면 길은 만방으로 퍼져 나발을 분다 꽃 속의 숨어 있는 꽃 보푸라기꽃 오늘도 따뜻한 향기 소매 끝에 흔들리누나
* 니시다 기타로〔西田畿多郞〕의 말.
1960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1987년 창작과비평사의 『창비 1987』에 「김포」외 1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함. 현재『시힘』 동인.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밤거리의 갑과 을』『새의 전부』『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험준한 사랑』『불을 지펴야겠다』『작은 산』 제12회 백석문학상 수상